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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가 선택한 주적은 DJ 아닌 '이회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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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가 선택한 주적은 DJ 아닌 '이회창'이었다

<손광식의 '1997 비망록'> (42) 두 정적의 악수

***42. 두 정적의 악수**

이튿날 이회창후보는 긴급기자회견을 갖고 모든 비자금은 철저히 수사해야 하며 김영삼대통령은 신한국당을 떠나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총재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이 싸움은 낡은 정치에 도전하는 ‘성전’이라고 선언하고 집권당의 모든 기득권을 버리겠다고 말했다. YS는 탈당 요구를 즉각 거부했다. 누가 주인인데 셋방 입주자가 주인보고 나가라는 소리냐고 비주류측은 YS를 ‘호위’하고 나서면서 이총재에게 십자포화를 퍼 부었다.

모든 신문들은 이를 계기로 신한국당은 분당 위기에 들어섰다고 관측 기사를 ‘빼다시로’(검은 바탕에 흰 글씨를 뽑는 것- 자극적 편집기법)로 대서특필하고 나섰다. 정국은 바야흐로 대혼란의 기류속으로 몰려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를 계기로 잠행하던 신한국당의 ’후보교체론’, ’반DJ 연합‘ ’반 DJP연대‘ ’신당창당‘, ’제3후보옹립‘ 등 합종연횡의 대난전이 지표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신한국당의 이회창총재의 긴급기자회견장. 이한동대표, 서정화 전당대회 의장, 이해구 정책위 의장 ,신경식 총재비서실장등이 배석했다. 이총재는 상기된 얼굴로 미리 준비해 온 발표문안을 읽어내려갔다.

"우리는 타락한 3김정치를 청산하고 새로운 미래를 여느냐, 아니면 또다시 3김정치에 휘말려 21세기 문턱에서 좌초하느냐의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부정한 돈으로 자신들의 정치세력을 유지하고 국민과의 약속도 헌신짝처럼 저버리며, 선거에 이기기 위해 지역감정을 동원하는 작금의 부패한 정치구조로는 위기에 처한 우리 경제의 회생도, 우리 사회의 도덕성 회복도 불가능하다. 돈을 정치로부터 떼어놓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은 부끄러운 2류 국가에 머물고 말 것이다.

우리 당이 김대중총재의 비자금 축재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것은 ‘구시대 부패정치구조의 청산 없이는 나라의 미래도 없는’ 절박한 사명감에서였다. 검찰이 ‘당당하게 수사하겠다’고 밝혔다가 하루만에 선거 이후로 연기한다고 발표한 것은 검찰 스스로가 국가 공기관으로서의 권위와 책무를 포기하는 행위이며, 3김정치의 압력에 굴복해 구시대 정치의 검은 실체를 감추고자하는 것이라고 의심받아 마땅하다. 나는 다시한번 검찰이 조속히 수사에 착수해 줄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이에 대한 명쾌한 해명이 있지 않을 경우, 우리는 차기 정부에서 또다시 정치지도자의 부정축재와 관련된 불행한 역사를 반복하게 될 것을 우려한다.

3김정치의 부패구조를 청산하려면 먼저 나와 우리 신한국당부터 거듭 태어나야 한다. 모든 것을 다 바쳐 3김정치의 부패구조를 깨트리기 위한 성전에 앞장 서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다음과 같이 밝힌다.

첫째, 이제 비자금 수사에는 여야가 따로 없고 성역이 있을 수 없다. 나의 경선자금은 물론 지난 92년 대통령 선거자금에 관한 의혹도 불법이 있다면 이번 기회에 검찰에서 철저하게 조사해 줄 것을 요청한다.

둘째, 당장 이번 대선에서부터 ‘돈 정치, 돈 선거’를 뿌리 뽑겠다. 우리 당은 정치자금법에 의거하지 않는 어떠한 정치자금도 받지 않겠다. 철저하게 법정선거비용 한도를 지킬 것이며, 지정 기탁금제도 전면 폐지하겠다.

셋째, 그동안 집권 여당이 누려 오던 권력의 기득권도 과감히 포기하겠다. 야당과 똑같은 입장에서 국민심판을 받겠다.

나는 우리 당의 명예총재인 대통령이 당적을 떠나 공정하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이번 선거를 관리해 줄 것을 요청한다. ‘정권교체’라는 명분으로 3김정치를 연장시키려는 세력에 대해 단호히 맞서겠다. ‘제대로 된 정치’가 있어야 ‘제대로 된 경제, 제대로 된 사회’를 만들 수 있다."

낭독이 끝나자 그는 기자들의 질문도 일체 받지 않고 충남 목천에 있는 독립기념관으로 직행했다. 스스로 ‘성전’으로 격상시킨 이 싸움을 선현들에게 고하는 모습의 연출을 위해서...... .

새로운 사태는 경제쪽에서도 일어났다. 정부는 기아자동차에 대한 산업은행의 대출금 3천억원을 자본금으로 바꾸고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일방 4천억원 이상의 협조융자를 해 주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동안 형식적으로는 채권은행단에 맡겨 놓은 기아사태 해결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 이같은 결정을 내렸다. 외유중이던 기아의 김선홍회장은 급거 귀국, 화의신청 수용만이 기아를 살리는 길이라는 주장을 재 천명하고 기아노조도 파업으로 정부결정을 반대하고 나섰다.

이 조치가 발표되자 주가는 하루 만에 600선을 회복하는 폭등세로 돌아섰다. 그러나 이 주가는 하루를 지탱하지 못하고 다시 큰 낙폭으로 주저 앉았다. 홍콩 도쿄 뉴욕 등 세계 주요 증시의 주가폭락을 반영한 외에 신한국당의 내분 격화가 장외 기류를 다시 바꿔 놓았다.

이회창의 ‘대반격’에 대해 YS는 ‘대응’의 길에 나섰다. 정치쟁투는 그의 본령이며 그는 정치 9단이라 일컬어져 왔던 ‘고수’의 면모를 과시할 기회를 찾은 것이다. YS는 조홍래 정무수석을 각 정당의 우두머리에게 정치특사로 보내 연쇄회담을 갖는다는 청와대 방침을 전달했다. 대선관리 등 국정전반에 걸친 현안을 논의한다는 것이 표면적인 명분이었지만, 대선정국에서 자신의 정치적 지분을 행사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그리고 반격의 표적은 물론 자신을 신한국당으로부터 탈당하라고 요구하고 나선 이회창임은 두말 할 것도 없었다. 적어도 강삼재 신한국당 사무총장이 돌연 사표를 제출한 것은 바로 이 반격전의 일환임을 어렵지 않게 짚어보게 하는 대목이었다. 예의 ‘DJ 비자금’을 폭로하고 이회창 캠프를 전면에서 독전하고 나섰던 강총장은 ‘이회창 선언’이 발표되자 곧바로 총장직을 집어 던졌다.

그의 사퇴만도 당의 균열을 가져오는 사건일 터인데 한걸음 나아가 이회창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당 고위정책회의에서 그는 DJ비자금 발표는 이회창총재의 지시에 따른 것이고, 문제의 자료는 이총재의 구기동 자택에서 받아온 것이라고 폭로했다.

10월24일 YS와 DJ는 청와대에서 조찬회동을 가졌다. 최대의 정적이었던 두 사람의 회동은 이제는 미묘한 협력기류로 바뀌고 있었다. YS로서는 임기 말에 차기 대통령으로 가장 유력한 야당후보와 공조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고, DJ는 현재의 대선기류를 자신에게 불리하게 바꾸는 어떤 시도도 집권당 출신의 현직 대통령이 차단한다는 보장을 받아냈기 때문이다. 그것은 두 사람 사이의 언약이나 ‘좋은 그림’을 만들어 낸다는 정치산술에서가 아니라 여당의 내분에 따른 상황전개에 따른 현실적인 선택의 결과라는 점에서 매우 미묘한 상황의 산물이었다.

같은 시간 이회창 총재는 여의도 신한국당 당사에서 ‘정치혁신 지지 결의대회’를 갖고 YS와 DJ의 청와대 회동은 정치적인 야합이라고 주장하고 자신에게 배정된 11월1일자 청와대 회동을 거부했다. 그는 이날 매우 격앙된 목소리로 “검찰의 수사가 느닷없이 유보되고, 대통령이 국민회의 김총재와 단독 회담을 하면서 사건이 이상한 방향으로 왜곡되고 있다. 정치적인 야합으로 끝내려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많은 국민이 갖고 있다.”고 공박했다.

이총재는 김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한 배경에 대해 “대선의 엄정관리를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김총재 비자금 사건을 둘러싸고 두 사람간에 야합했다는 오해가 있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이번 대선은 김대통령의 재신임을 묻는 선거가 아니라 진정한 개혁을 위한 새로운 정권을 창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이같은 발언은 김대통령을 청산과 극복의 대상으로 삼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었다.

이회창캠프는 이날 지지대회에 참석 또는 참석의사를 표시해 온 사람들의 명단을 언론에 배포, 세력판도를 가르는 언론 플레이를 했다. 참석 또는 참석의사 표시 현역 의원은 총 89명이며 불참자는 68명이었다. 숫적 우세를 과시하려는 신한국당 주류측의 계산은 일단 효과를 거두었다.

정치와 경제가 계속 혼미상태에 들어간 가운데 미국의 신용평가기관인 S&P사(스탠더드 앤드 푸어스)는 한국의 신용등급을 1단계 더 떨어트렸다. 대기업 부도와 금융기관 부실화와 대선을 앞둔 정국불안 등이 그 이유였다.

이회창의 YS에 대한 반격은 일응 실패로 돌아간 듯 했다. 조선일보사와 MBC가 한국갤럽과 공동으로 조사한 유권자의 반응조사에서도 이총재는 지지도가 하락하는 추세로 나타났다. 검찰의 DJ 비자금 수사유보, 이에 따른 이회창캠프의 반격, 김영삼대통령의 신한국당 탈당요구등 일련의 ‘독자노선 강화’에도 불구하고 그는 유권자 지지율 16.1%로 여전히 3위에 머물러 있었다.

이회창 후보가 여론조사에서의 상대적 열위로 인해 붕괴 도미노에 몰려있는 것에 비해 하위권에 있으면서도 JP는 ‘소가 대를 먹는’ 정치게임을 성공하는 것 같았다. 그는 혼자서는 대권 레이스에서 까마득한 위치에 있었지만 자신의 지분을 던질 경우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케스팅 보트를 장악하고 있어 행복한 얼굴이었다. 더욱이 그는 자신이 대권에 연연한 것이 아니며 정치의 선진화를 위해 순수내각제라는 정치제도의 발전만 이룩하면 흔쾌히 정계를 떠나겠다고 여유마저 보였다. 이런 자세는 그의 로맨티스적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심진송이라는 무녀가 예언했던 바대로 정치적 꿈을 이루는 환경과 조건과 때를 맞은 것인지도 몰랐다.

10월의 마지막 주, 도하의 각 신문들은 ‘DJP 구도’라는 것을 크게 보도하고 나섰다. 이미 양측 실무진의 합의까지 거친 것으로 알려진 DJP 공동정권 창출 내용은 이러했다.

"첫째, 대통령후보는 국민회의 김대중총재로 하고 집권후 공동 정부의 국무총리는 자민련 김종필총재로 한다.
둘째, 차기 정부의 각료구성등은 동등하게 균분하고 양당 동수로 공동정부 협의기구를 구성한다.
셋째, 공동정부 출범과 함께 개헌추진위를 발족하고 대통령이 주도적으로 개헌안을 발의, 99년 말까지 개헌안을 완료한다.
넷째, 대통령은 간선으로 선출하고 수상이 국정 전반을 책임지는 순수 내각제로 한다. 독일식 불신임제를 채책한다.
다섯째, 내각제 개헌 후 초대 대통령과 수상의 선택은 자민련이 우선권을 갖는다."

10월26일 JP는 동작동 국립묘지로 가 DJP연합을 박정희 대통령에게 고유했다. 바로 박대통령이 피살된 지 18년째가 되는 이날 그의 묘소에서 있은 추도식에는 많은 인사들이 참석했다. 박정희는 자신의 사후 JP라는 혁명동지를 통해 자신이 가장 박해했던 최대의 정적과 간접적이나마 악수를 하게된 것이다. 시간이 가져다 준 엄청난 변화인가, 정치권력의 법측은 항시 그런 결말인가.

같은 시간. 한강강변에 있는 서울 올림픽 펜싱경기장에서는 민주노총과 전국연합이 주축을 이룬 ‘국민승리 21’이 창립대회 및 대통령 선거운동본부 결성식을 가졌다. 언론노조 출신의 권영길을 이미 후보로 추대한 이 진보세력은 이날 창립 선언문에서 "참된 개혁과 진보의 정치를 펼 때 정권교체와 세대교체를 뛰어넘는 진정한 ‘세력교체’를 이룰 수 있으며 앞으로 진보적 대중정당 건설에 앞장 서겠다"고 선언했다. 개발독재세력과 한때는 그 세력들에 의해 박해받던 민중세력이 정치라는 공동무대를 향하여 이제는 한강가에서 징소리를 높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날 저녁 사람들은 또다시 TV앞에 모여들었다. 월드컵 예선 전인 일본과 아랍 에미리트와의 도쿄경기를 시청하기 위해서였다. 일본과 아랍 에미리트의 경기결과는 한국의 4연속 월드컵 진출을 가름하는 한판이어서 시정의 관심이 집중된 것이다. 결국 두 팀이 비김으로서 한국은 그 위업을 달성하게 되었다. 정치에 멍들었지만 축구는 국민들에게 대단한 위안이었다. 대표팀 감독 차범근은 이미 국민적 영웅이 되어 있었다. 정치가 빚어 놓은 갈등구조 속에서 스포츠가 희망으로 떠 오르는 것은 그래도 국력신장의 결과라고 할 수 있었다. 현실적으로는 정치나 경제에 대한 실망감으로 집단적 인페리오리티(열등감)에 빠져 있긴 했지만.<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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