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의 이름이 호명됐다. 손바닥만 한 영정으로 가득 찬 천막은 한참만에야 빈 벽을 드러냈다. 먼지 쌓인 사진들이 하나씩 상자에 담겼다.
참사 3개월만인 2014년 7월, 희생자 가족들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광장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단식과 삭발, 수많은 집회와 행진을 거듭하며 특별법을 이끌어 냈다. 촛불시위 때는 광장의 구심이 됐고, 교황 방문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숱한 오해와 루머를 견뎌야 했고, 일부 몰지각한 집단으로부터 참기 힘든 모욕을 받는 일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5년 가까이 천막이 유지된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아이들이 허망하게 떠났을 때 부모들은 이 사회가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아이들의 희생이 허탈한 것이 되도록 둘 수 없었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고 싶다고 했다. 광장의 천막은 그 의지의 상징이었다.
세월호 천막이 철거됐다. 4년 8개월 동안 같은 자리를 지켜온 천막은 17일 이안식을 치르고 18일 완전히 해체됐다. 서울시의 광화문광장 정비계획에 맞춰 유가족이 결정했다. 이 자리에는 사회적 재난을 기억하는 '기억·안전 전시 공간'이 조성된다. 비록 천막은 철거됐지만 진상 규명을 위한 노력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가족협의회는 전했다. 이안식과 철거하는 날, 빈 광장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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