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명(壽命)은 생물의 목숨, 사물이 사용될 수 있는 기간을 말한다. 생물은 수명을 다하면 죽고, 사물은 수명이 다하면 폐기된다. 생물의 수명은 알 수 없지만, 사물의 수명은 결정된다. 그리고 사물의 수명은 대부분 사람이 결정한다. 사물은 오래되고 고장 났거나 때론 유행이 지나서 폐기되기도 한다. 또한 어떤 사물이 환경과 사람의 안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거나 미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폐기되어야 한다.
석탄화력발전소와 관련해 최근 수명 연장 논란이 일었다. 정부가 석탄화력발전소 성능개선사업을 추진 중이고 이는 석탄화력발전소의 수명을 연장하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석탄화력발전소는 전기를 생산하는 중요한 기능을 하지만 미세먼지와 온실가스를 다량 배출해 환경과 사람의 안전에 중대한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수명을 다하거나 필요하면 그 이전에라도 폐기되어야 한다. 하지만 설계수명 기간이 만료된 후 계속 운영하려면 정부 허가가 필요한 원자력발전소와 달리 석탄화력발전소에는 정해진 수명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해진 수명이 없다면 수명 연장이라는 말도 논리적으로는 맞지 않는다. 발전설비의 수명은 설비의 안전성, 경제성 및 신뢰성을 유지하면서 본래의 설계목적에 부합되는 기능을 다하기까지의 시간을 말한다. 이 기준에 비춰볼 때 석탄화력발전소의 수명은 몇 년일까. 통상적으로 30년을 말하지만, 이 또한 명확하지 않다. 문제는 명확한 수명의 설정이 아니라 폐기의 명확한 조건과 법적 근거다. 미세먼지와 온실가스를 다량 배출하는 석탄화력발전소를 폐기하거나 연료전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법적 제도가 필요한 것이다.
최근 국회에서는 석탄화력발전소 준공일부터 25년 이상 됐으며, 대통령령으로 정한 기간이 지난 발전소가 환경과 국민 안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거나 미칠 우려가 있을 때 정부가 사업허가를 취소하거나 6개월 이내에 정지할 수 있도록 하는 전기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됐다. 이에 따라 허가가 취소된 발전사업자가 연료를 다른 연료로 전환해 발전사업을 하려는 경우 산업부 장관이 비용의 일부를 지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미세먼지를 30% 줄이겠다는 정부의 공약을 달성하려면 석탄화력발전소를 몇 기나 폐기해야 할까. 정부의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고, 더 나아가 파리협약의 2℃ 목표와 IPCC의 1.5℃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또 어떻게 해야 할까. 단기적으로 신속하게 노후 석탄화력발전소를 조기 폐쇄하는 것도 중요하고 필요하다. 하지만 확실한 건 지금의 정부 정책으로는 장기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정부의 목표를 넘어 파리협약과 IPCC가 제시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탈석탄로드맵'이 필요한 이유다. 탈석탄로드맵에 따라 석탄화력발전소를 얼마나 어느 시기에 폐기할 것인지를 결정하고 이를 위한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정부는 올해 말까지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이전에 탈석탄로드맵을 시급히 마련해 이를 제9차 전력계획에 담아내야 한다. 전기요금 개편안과 에너지세제 개편의 영향 등에 대해서도 정부가 가야 할 목표를 명확히 제시하면서 국민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야 할 것이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칠레 다음으로 초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국가이며, OECD 도시별 집계에서는 대기질이 가장 나쁜 100개 도시에 국내 44개 도시가 이름을 올렸다.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초미세먼지 등 대기오염이 인간의 수명을 평균 2.2년 단축시키며 이로 인해 전 세계에서 한해 880만 명이 조기 사망한다. 석탄화력발전소의 수명을 단축해야 사람의 수명이 늘어난다. 문재인 대통령의 "사람이 먼저다"라는 슬로건을 실천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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