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이 다니고 있는, 다녔던 학교의 모습은 어떤 모습인가? 지난 수십 년간 우리 사회의 모습은 여러모로 변화해 왔지만 학교의 모습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당신이 한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당신이 접한 학교의 모습과 그 안에서 겪은 경험들은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한쪽에 복도를 끼고 줄줄이 늘어선 교실들. 교단을 향해 빼곡히 들어찬 책걸상에 모두가 같은 옷을 입고 앉아 있는 학생들. 학생들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선 학생들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교사들.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변하지 않는 권위적이고 획일화된 학교의 모습과 그 안에서 학생들이 겪는 억압과 통제는 서로 맞물려 있다.
학교는 학생들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국가권력은 학생들을 정해진 교육을 주입받을 대상, 국가가 원하는 인간상에 맞추어 교정되어야 할 대상으로만 간주한다. 학생들을 감시와 통제의 대상으로 보는 시선은 국가와 사회 모두가 동일하다. 대부분의 국민들에게 교육은 거의 유일한 신분상승의 수단이었고, 자신들의 자녀가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공부 잘해서 출세하기를 원했다. 그 결과 학생들은 자유의지를 박탈당한 채 틀에 박힌 일과와 학사일정에 따라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받고 통제당해 왔다. 학교는 학생들의 자발적인 학습의지를 고취시키거나 쾌적한 환경 따위를 조성하는 대신 소수의 교사들이 보다 더 많은 학생들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데 최적화된 공간이 되었다.
군대를 본 따 만들어진 학교
전국 어디를 가도 초·중·고 학교의 모습은 다 비슷하다. 해당 학교를 처음 찾은 외부인도 어디에 무엇이 있을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학교 건물은 한쪽에 커다란 운동장을 끼고 길게 배치되어 있다. 건물 중앙과 양쪽 끝엔 현관과 계단이 있다. 교무실은 대부분 1층 중앙 현관 근처에 있고, 교사들이 주로 이용하는 중앙 계단은 때때로 학생들의 통행이 금지된다. 길게 이어진 건물 한편에는 복도, 다른 한 편에는 교실들이 나란히 배열되어 있다. 교실들은 하나 같이 똑같다. 교실마다 붙은 몇 학년 몇 반이라는 표지판 외에는 각 교실을 구별할 방법이 없다. 학년과 교실이 바뀌는 새 학기 첫날엔 교실을 잘못 찾아 들어가는 일도 흔하다.
이와 같은 학교의 공간 구조는 군대 병영의 구조를 본 따 만들어진 것이다. 과거 일제는 유사시에 학생들을 군인으로 이용하려고 했고, 학교에 수용인원의 관리와 통제를 목적으로 하는 군대의 공간 구조를 그대로 이식했다. 편복도 옆으로 똑같은 교실들이 줄지어 있는 구조는 복도에 누가 나와 있지는 않은지 한 눈에 보고 감시하기 좋은 구조이다. 학년별 교무실이 복도 중앙에 있기까지 하다면 완벽하다. 쉬는 시간이 끝나도 교실로 들어가지 않거나 수업 시간에 복도에 몰래 나오기라도 하면 대번에 눈에 띌 수밖에 없다. 감시와 통제에 최적화되어 있는 학교의 이 같은 공간 구조는 비슷한 형태를 가진 교도소나 병영 등과 근본적으로 같은 공간 구성 방식이다.
학교마다 커다랗게 딸려 있는 운동장은 군대의 연병장에 대응된다. 학생들의 체육활동 그 자체보다는 아침조회 같은 이런저런 행사 때마다 전교생을 죄다 불러 모아 사열시키기 위한 공간이다. 때문에 학생들의 체육활동에 있어서는 비효율적이다. 과거엔 그저 모래바닥에 양쪽에 축구 골대 하나씩만 덩그러니 있어서 몇 명이 축구 골대에서 공을 차면 남는 공간은 어찌 활용하기 힘들었다. 실내 아침조회가 보편화된 최근에는 주차장을 만들거나 인조잔디를 깔고 제대로 된 축구장이나 트랙을 조성하기도 하지만 정작 다수의 학생들이 제대로 이용할 수 없다는 문제점은 여전하다. 주차된 차들이 파손된다는 이유로 공놀이를 못하게 하기도 하고, 본질적으로 단일한 운동장에서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학교와 같이 다수의 학생들에 의한 다양한 공간적 수요가 있는 곳에서는 하나의 커다란 공간보다는 보다 작게 다양한 기능으로 나뉜 공간이 필요하다. 탁구, 테니스, 배드민턴, 배구, 농구 등등. 굳이 축구가 아니더라도 보다 작은 공간에서 여럿이서 어울려 할 수 있는 스포츠는 많다. 보다 다양한 운동을 접하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은 공공교육의 책무이기도 하다. 오직 축구 말고는 활용하기 힘든 대형운동장의 기능은 학교 바깥의 공공체육시설로 넘기고 학교 안의 체육시설은 다양한 기능을 가진 공간으로 나누어 실내외에 분산 배치해야 한다.
왜 학교는 변하지 않을까
시대가 변하고 사회가 변했다지만, 물리적 학교의 모습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그 이면에는 1962년에 의무화된 학교 표준설계도가 있다. 표준설계도에는 건물의 배치, 교실의 크기, 복도의 폭, 창문의 크기, 천장의 높이 등 학교 건축에 필요한 세세한 모든 사항들이 규정되어 있다. 학교 부지와 학생 수만 정해지면 곧바로 건축이 가능할 정도다.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대부분의 학교들은 바로 이 표준설계도에 따라 붕어빵 찍어 내듯 지어진 것들이다. 표준설계도 의무 적용은 1992년에 폐지되었지만 학생들을 통제하기 편하고 건축비도 싸다는 이유로 아직까지도 대부분의 학교들은 표준설계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형태로 지어지고 있다. 기존의 1자형 건물 형태가 ㄱ자나 ㄷ자, T자 형태 정도로 변형되었을 뿐, 일선의 공무원들은 여전히 표준설계도를 기준으로 학교 설계를 평가하고 허가를 내준다.
아무리 건축가가 바뀐 교육 환경과 학생들의 자율성 등을 고려한 설계도를 가져가도 공무원들은 선례가 없다는 이유로 건축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 구청이나 시청 등 관공서는 매번 유례 없이 비싸고 화려하게 잘도 지으면서 유독 학교 건축에 대해서는 인색하다. 공공기관 건축에 필요한 건축단가는 관행적으로 정해져 있다. 그런데 과거 표준설계도를 바탕으로 하여 매겨진 학교의 표준 건설비는 공공기관들 중에서도 굉장히 낮은 편이다. 건설 단가가 교도소보다도 낮다. 학교 시설물의 제곱미터당 평균 건축단가는 152만 원에 불과한 반면 교도소는 194만 원, 주차장 시설은 199만 원이다. 청사 건물은 217만 원에 달한다.(〈2017년도 공공건축물 유형별 공사비 분석〉, 조달청)
때문에 학교 건물은 표준설계도에서 조금만 설계를 바꾸거나 고급 자재를 써도 건축단가를 맞추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 건축비가 많이 나온다는 이유로 또 건축 허가가 나지 않기 때문에 결국 표준설계도 의무 적용이 폐지되었다 하더라도 학교의 모습은 표준설계도의 획일화된 모습에서 벗어날 수 없다. 결국 이 사회가 인식하는 학교라는 공간의 가치, 교육의 중요성이 딱 그 정도인 것이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이와 같은 여러 '현실적인' 기준에 맞추다 보니 학교 안에서 학생들을 위한 공간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활동은 공간을 필요로 하지만 학교 안에서 교실 외에 학생들에게 주어진 공간은 전무하다시피 하다. 배정된 동아리방 하나 없는 학내 동아리가 제대로 활성화되는 것은 불가능하며, 회의할 수 있는 학생회실 없는 학생회가 뭔가 제대로 된 일을 하기도 어렵다. 학교 안의 매점은 대부분 구멍가게 수준으로 학생들은 작게 뚫린 매대 앞에서 쉬는 시간마다 길게 줄을 서곤 한다. 이마저도 편히 앉아서 먹지도 못하고 급하게 서서, 때로는 교실로 뛰면서 먹는다. 매점 음식을 먹으며 쉬거나 친구들과 담소를 나눌 수 있는 학생 휴게실이 있는 학교가 과연 얼마나 될까? 학생들이 정해진 수업 시간 외에 학교 공간을 보다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학교는 얼마나 있을까? 학교라는 공간은 결코 학생들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학교는 변해야 한다. 그 안에서의 생활도, 변화한 생활을 담아내는 공간도 변해야 한다. 2015년 건축된 경기도의 어느 고등학교는 학교 부지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전형적인 1자형 학교가 아닌 삼각형 형태의 학교 건축을 시도했다. 난색을 표하는 교육청 공무원들과 학교 관계자들을 건축가가 설득하는 지난한 과정을 거치는 동안 설계에서 시공까지 보통은 아무리 길어야 2년 안에 끝나는 과정이 5년이나 걸렸다. 하지만 결국 성공적으로 완공된 학교는 각종 건축상을 수상했다. 그 이유가 해당 학교가 단순히 미적으로 뛰어나다거나 효율적인 공간 설계를 보여주었다거나 해서는 아닐 것이다. 기존 학교들에 비해 이례적인 형태로 건축된 해당 고등학교의 수상은 새로운 학교의 모습을 바라는 우리 사회의 요구를 보여준다.
교육은 국가권력으로부터 보다 자유로워져야 하고, 입시경쟁을 위해 학생들을 통제·관리하는 방식으로부터도 벗어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학교 공간 역시 필요하다. 무엇이 정말 학생을 위한 것이고 보다 나은 교육 공간은 어떤 것인지 고민을 담아 설계되고 지어지는 학교의 모습은 분명 지금까지와는 다를 것이다. 새로운 학교의 모습을 상상하자. 새로운 학교에 대한 고민과 상상은 학교에서의 생활상을, 우리 사회 교육의 모습을 바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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