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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이 브라질을 '형님'으로 모시는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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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이 브라질을 '형님'으로 모시는 사연

경제위기 이후 '역사적 앙숙 ' 에서 '동반자'로 관계 변화

지난 2000년말 국제축구연맹(FIFA)이 인터넷투표에 의해 ‘20세기 최고의 선수’로 펠레와 마라도나를 공동선정하자 브라질 축구팬들은 “마약에 찌든 패륜아 마라도나가 어떻게 펠레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느냐”면서 격분했다.

이에 맞서 아르헨티나 축구팬들은 “FIFA가 펠레에게만 상을 주고 싶은데 뜻대로 안되자 공동선정이라는 궁여지책을 썼다”며 비아냥댔다.

남미의 ‘영원한 앙숙’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은 이처럼 사사건건 충돌해왔다. 사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각각 남미 1,2위의 대국이며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웃나라이면서도 같은 점보다는 다른 점이 더 많았다. 우선 아르헨티나 국민 대다수가 유럽계 백인인 반면 브라질은 인디오 등 유색인종이 국민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또 90년대 이후 아르헨티가 미국의 처방에 따라 대달러 고정환율제(peg) 채택과 대대적 민영화 등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경제개혁을 추구해온 반면 브라질은 경제정책면에서 상대적으로 자주성을 유지해 왔다. 또 브라질은 대통령선거때마다 좌파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예상될 정도로 진보성향이 강한 편이다.

이 때문에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브라질 사람들을 “더운 나라의 나태함에 빠져 마냥 빈둥거리는 열등민족”이라고 경멸해 왔으며 브라질 사람들은 아르헨티나 사람들을 가리켜 ‘건방지고 지나치게 격식을 따진다’며 달가워 하지 않았다.

그런데 경제가 국민들의 의식을 결정하는 것일까. 한때 세계 7위 경제대국에서 지난해말 국가 파산상태가 된 아르헨티나 국민들 사이에 최근 ‘브라질 열풍’이 불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5일 “브라질도 파산 위기에 몰리고 있긴 하지만 국가운영에서부터 라이프스타일에 이르기까지 브라질로부터 본받을 만한 점이 많다고 생각하는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점점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아르헨티나에 브라질 열풍’(Braziliian wave)이 불고 있다는 증거는 도처에서 발견된다. 브라질식 이름을 딴 술집과 나이트클럽이 첨단유행으로 자리잡고 브라질 음악, 브라질춤이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것.

브라질 공용어인 포르투갈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급증했는데 여기에는 브라질에서 일자리를 구하려는 목적도 있다. 브라질 TV 프로그램이 케이블 TV를 통해 방송되기도 한다. 심지어 브라질의 전통종교 사찰을 운영하는 사람, 이곳을 찾는 사람들도 자부심 강한 아르헨티나 백인들이다.

브라질을 6번이나 가본 적 있다는 아르헨티나인 수의사 구스타보 테데스코(38)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브라질 사람들은 아르헨티나 사람에 비해 보다 온화하고 삶에 만족해 한다. 또한 유쾌하고 개방된 성격을 가졌으며, 자신의 피부색에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서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좀더 진솔하고 덜 잘난 체 하는 태도를 그들에게서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여자친구 루치아나 카사노바(22)도 “브라질 사람들은 우리보다 삶을 즐기는 법을 잘 알고 있어요. 달러에 주눅들지도 않고요. 그들도 나름대로 문제는 있지만 그것 때문에 우리처럼 우울증에 빠지지 않아요”라고 덧붙였다.

사실 아르헨티나의 브라질 열풍은 지난 해 경제 위기 이전부터 불기 시작했다. 브라질에 대한 고정관념이 파괴된 주요 요인은 1990년대 브라질 관광붐이라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들의 견해다. 아르헨티나 페소화를 미국 달러와 똑같은 가치로 인위적으로 고정시킨 환율정책 덕분에 아르헨티나 서민들도 해외여행을 브라질로 여행을 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 브라질 정부통계에 따르면 브라질을 방문한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1990년 25만명에서 2000년 1백75만명으로 급증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 역사상 최악의 경제위기가 닥치면서 브라질 열풍은 더욱 거세게 확산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이 아르헨티나에 대한 지원을 거부한 뒤 브라질은 아르헨티나의 입장을 앞장서서 옹호하고 이들의 모범이 되고 있는 것이다.

브라질 관광이 급증하기 전까지 아르헨티나인들에게 브라질은 ‘먼 나라’에 불과했다. 그러나 브라질을 가본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브라질이 발전한 국가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브라질인들에 대해 가졌던 인종적 편견들도 놀랄 정도로 감소했다.

1991년 남미공동시장이 발족된 이후 경제교류를 통한 양국간의 일체감과 협력관계가 증진되면서 아르헨티나는 브라질을 남미공동체의 선임파트너로 인정하려는 움직임도 있어왔다. 아르헨티나의 경제전문가들은 브라질의 인구와 경제규모가 아르헨티나의 5배나 되기 때문에 브라질이 남미의 맹주가 돼야 한다는 대세를 거스르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

심지어 아르헨티나의 외교정책에 대해 여러 권의 저서를 낸 카를로스 에스쿠데는 “미국 국기의 별 중 하나가 되기보다는 브라질 국기의 별이 되는 것이 낫다는 주장에 대해 반발하는 사람들이 적어졌다”고 말한다.

아르헨티나의 파산과 브라질의 경제위기로 무역거래가 차질을 빚고 있지만 양국은 단일통화를 위한 협상을 계속하고 있다.

에두아르도 두알데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브라질을 가리켜 ‘성공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경제대국’으로 거듭 추겨세웠다. 특히 1999년 달러에 대해 고정환율제를 포기하고 브라질 헤알화의 평가절하를 의미하는 변동환율제로 전환한 결정을 높이 평가했다.

두알데 정부의 경제각료들은 아미니오 프라가 브라질 중앙은행 총재 등 브라질의 경제각료들에게 정례적으로 자문을 구하고 있다.

아르헨티나 전 문화부 장관으로 마르코스 아기니스는 “브라질은 올바른 결정을 내려온 반면 우리는 실수만 연발했다”면서 “브라질은 창의적인 기업인재가 풍부하고 튼튼한 산업경제를 구축하고 있는 반면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는 후안 페론이 남긴 폐해를 극복하느라 아직도 허덕이는 반면 브라질은 독재자 게툴리오 바르가스(1930~40년초 집권)의 포퓰리즘을 청산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아르헨티나의 짝사랑에 대해 뜨악한 시각도 존재한다. 남미 경제가 아르헨티나 사태로 촉발된 ‘도미노 붕괴’에 빠져들지 않을까 우려되는 시점에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양국의 우호적인 관계가 형성된 것은 최소한 ‘역사적 앙숙’으로 반목을 계속하다가 공멸하는 운명은 피하고 보자는 절박감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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