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 했는데, 반전은 없었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1명 미만으로 나타났다. 3분기 합계출산율이 0.9명대, 4분기 합계출산율이 0.8명대로 나타날 때 예견된 사태였다.
1명 미만의 합계출산율은 OECD 회원국(평균 1.68명)은 물론이고 세계 최저 기록이다. 중국의 특별자치구인 홍콩과 마카오, 인구가 경기도의 절반인 싱가포르 등을 제외한 통상적인 국가 규모에서 전쟁과 내란이 아닌 시기에 0명대로 떨어진 것은 사상 초유라고 할 수 있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0.98명으로 통계 작성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출생아 수는 2017년 35만 7800명에서 3만 900명이 감소한 32만 6900명으로 나타났다. 전쟁이나 내전의 시기가 아닌데 출생아 수가 3만 명씩 줄어드는 것은 흔한 현상이 아니다. 서울은 2017년 0.84명에서 0.76명으로 속락했고, 부산과 대전도 전국 평균보다 낮았다.
1982년부터 지난해 2월까지 전국에서 3752개 학교가 폐교됐다. 전남 816개교, 경북 714개교, 경남 564개교, 강원 454개교, 전북 323개교 등으로 주로 농촌과 중소도시에 집중됐다. 최근에는 어지간한 규모의 도시에서도 학교와 새롭게 조성되는 주거지역이 격리되면 새로운 학교를 짓고 기존 학교는 폐교되는 현상이 늘고 있다. 출생아 수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면서 아동의 편재(偏在)가 도시와 농촌의 차이를 넘어 도시 내부로 파급되는 양상이다.
이러한 인구변화에 대해 일본과 한국은 다르게 대응하고 있다. 일본 사회와 정부는 몇 년 전에 '지방 소멸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였지만, 한국 사회는 지난 십 수 년간 투입된 예산을 거론하면서 '백약(百藥)이 무효(無效)'라는 반응을 보인다. 저출산·저출생을 불치의 병으로 묘사해 책임을 전가하거나 누군가(?)를 질책하려는 뉘앙스마저 담겨 있다. '그렇게 많은 돈을 썼는데 왜 아이를 낳지 않느냐'는 것이다.
일본 사회가 '지방 소멸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인 것은 젊은이들이 지방을 떠나 대도시로 가지만 그곳에서 아이를 낳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농촌으로 돌아올 사람 자체가 사라지는 '인구 소멸'이 시작된 것이다.
반면에 '백약이 무효'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앞세운 한국 사회는 위대한 전환(?)을 택했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화위원회는 정책 초점을 '출생'에서 '삶의 질'로 전환했다. 1명대 붕괴가 유력한 상황에서 예방주사를 놓을 필요도 있었고, 임기 중에 지표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정치적 판단이 작용했다는 합리적 의심을 거둘 수 없다.
정말로 백약이 무효인가? 아니면 통계당국의 관측처럼 합계출산율 1명 미만이 '82년생 김지영' 이후 태어난 여성의 수가 일시적으로 적어지면서 나타난 단절적 현상이기 때문에 저절로 회복될 것인가?
지난해 출산한 여성의 평균연령이 32.8세인데, 이는 1993년 당시 27.5세보다 5세가 높아진 것이다. 30대 초중반의 여성들이 직장생활을 하면서 가정 및 출산을 준비하는 것이 사회적 대세이지만, 직장문화는 가정친화적·출산친화적이지 않기 때문에 해당 연령대의 여성들이 다소 늘어도 반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업무에 종사하는 간호사·보육교사 등이 가정과 출산에서 불리하고 열악한 조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공무원이 많은 세종시의 합계출산율이 전국 최고를 지속하는 현상이 지속된다면 반전이 아니라 심화가 예정된 길이다.
한국 사회는 백약을 쓰지도 않았고, 좋다는 약을 쓰지 않았고, 그나마 선별의 늪에 빠져 행정 비용이 더 드는 경우도 있었다. 주요 국가에 비해서 수 십 년 이상 지체된 아동수당은 그 대상과 금액을 지속적으로 확대할 것으로 보이지만, 21세기에 태어난 아동(아동복지법상 0세~17세)의 절대다수가 지속적으로 배제된다. 17세 이하부터 거꾸로 접근했다면 수많은 소년소녀들이 적어도 몇 년은 아동수당을 경험하고 성년이 될 수 있었다.
초미세먼지와 인구변화는 저절로 생긴 자연현상이 아니고, 아무도 책임질 수 없는 초자연적 현상도 아니다. 사회적 실패이자 정부의 실패라는 측면이 있고, 근본적으로는 사회적 자본과 사회적 책임의 수준도 작용하고 있다. 다자녀의 전통이 강한 나라에서 이주한 여성들이 국내 여성보다 출산이 적어지는 현상에는 사회적 자본의 취약성이 작용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3.1운동 및 임시정부 100주년에 맞이하는 '0.98명의 탄생'은 그분들이 꿈꾸던 조국의 미래와는 거리가 멀다. 압축 성장과 민주화의 과정에서 사회적 자본과 사회적 책임을 갉아먹은 '내부의 적(敵)들'이 공모한 총체적 결과의 한 측면일 것이라는 의구심을 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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