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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축구계의 이단아' 차범근의 멋진 컴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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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한국축구계의 이단아' 차범근의 멋진 컴백

전문성,경험,애정이 조화 이룬 차범근 해설 화제

"사람이 변한 것인지, 아니면 원래 '숨겨진 끼'가 있었던 것인지, 차범근이 많이 바뀐 것같다."

요즘 축구해설자로 나선 차범근 전 국가대표팀 감독을 보는 이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다. 비아냥이 아닌 칭찬이다. 그만큼 최근 차범근씨가 보여주는 축구해설자로서의 전문성과 진행 솜씨가 단연 발군이라는 게 지배적 평가다.

차범근 해설위원은 최근 들어서는 엔터테인먼트 프로로까지 활동영역을 넓히고 있다. 지난주말에는 MBC TV 오락프로그램인 '일요일 일요일 밤'에 출연해 유연한 말솜씨와 드리블 동작, 조크로 시청자들을 경탄케 했다. 엔터테이너의 숨겨진 끼까지도 감지케 하는 대목이다.

한국축구를 대표하던 선수이자 감독이던 차범근씨가 제2의 인생을 멋지게 출발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차범근 해설'과 국내 해설의 수준차**

월드컵이 시작되면서 방송 3사도 '시청률 전쟁'에 돌입했다.

현재 선두주자는 MBC TV이다. MBC가 이처럼 KBS, SBS 등 강력한 라이벌들을 제치고 선두로 나설 수 있었던 데에는 차범근씨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이번 방송 3사의 경쟁조건은 동일했다. 각자가 FIFA에 5백억원씩을 내고 월드컵 경기 방영권을 따냈다. 경기마다 동일한 화면을 내보내야 했다. 따라서 유일한 차별화 수단은 앵커와 해설자의 '실력'이었다.

최근 인터넷에는 차범근씨의 탁월한 전문성을 보여주는 일화가 돌아다니고 있다. 월드컵 개막직전 우리 대표팀과 프랑스 대표팀간의 평가전 중계방송때 일화다.

평가전을 시작한 지 얼마 안돼 프랑스의 간판스타인 지단이 허공으로 손을 돌렸다.

이를 지켜본 차범근 해설위원이 "지단이 어딘가 몸이 불편한가 봅니다. 감독에게 교체해 달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 같습니다"라고 해설했다.
같은 시간 방송을 하던 다른 방송사의 해설위원은 "지단이 심판의 판정에 불만이 많은 것 같습니다. 심판이 돈 게 아니냐고 어필을 하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얼마 뒤 지단이 교체돼 벤치에 나와 앉았다. 지단이 무언가 약 비슷한 것을 받아 삼키는 장면이 TV 화면에 비쳤다.

이 장면을 지켜본 차범근 해설위원이 "부상이 생각보다 심한 것 같습니다. 진통제를 먹는 것 같군요"라고 해설했다.
같은 시간 다른 방송사의 해설위원은 "역시 세계적인 스타는 다르군요. 영양제를 먹으며 몸을 관리하는 것 같습니다"라고 해설했다.

이 일화는 해설을 하는 데 '전문성'과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극명히 보여주고 있다.

차범근 해설위원은 오랜 기간 국가대표 선수활동을 한 데 이어 독일 분데스리가로 건너가 10년동안 98골을 넣으며 맹활약했고, 그후에는 귀국해 현대프로축구팀과 국가대표팀 감독, 이어 중국 프로팀 감독을 역임한 말 그대로 한국축구의 간판이다. 지금도 많은 후배들이 외국 프로팀에서 뛰고 있으나 아직까지 '차붐'의 신화를 뛰어넘은 후배는 없다. 차 위원의 풍부한 경험이야말로 명해설의 자양분인 것이다.

***차범근의 귀중한 자산, '인적 네트워크'**

해설자로서 차 위원의 빼어남은 그의 해설 곳곳에서 읽힌다.

차 위원은 해설을 할 때 아무리 선수들이 큰 실수를 해도 결코 그들을 야단치지 않는다.

프랑스와의 평가전때 선제골을 내주자 차 위원은 "아직 선수들의 긴장이 풀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럴 때는 경기도중 선수들끼리 말을 많이 해야 합니다. 특히 선배들의 역할이 중요합니다"고 애정어린 조언을 했다. 10일 미국전에서 첫 골을 먼저 먹었을 때도 해설을 통해 선수들을 다독거렸다.

차 위원은 또 선수들이 골대를 한참 벗어난 이른바 '홈런 볼'을 찼을 때도 야단 대신에 칭찬을 한다.
"잘 했습니다. 비록 골이 안들어가기는 했지만 이런 슛을 많이 쏘아야 상대방이 긴장합니다. 잘 날린 슛입니다."

곳곳에서 선수에 대한 이해와 애정을 읽을 수 있다.

차범근 해설의 또다른 묘미는 그의 풍부한 '인적 네트워크'이다.

차 위원은 월드컵 중계 동안 '앉아서만' 해설을 하지 않았다. 그는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외국팀 감독들과 만나 인터뷰 내용을 방송했다. 우리팀의 감독인 거스 히딩크를 비롯해 프랑스, 중국 등 월드컵의 관심국가 감독들과 스스럼없이 만나 인터뷰를 함으로써 시청자들에게 남다른 지적 재미를 전해줬다.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10년간 선수로 활약하며 맺은 인적 네트워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중국에서 감독생활을 한 경험도 해설에 활용됐다. 중국팀 선수들 가운데 "저 선수는 제가 있을 때 발굴한 선수입니다.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대단한 선수입니다" 하는 식으로, 차 위원의 풍부한 해외경험은 해설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프랑스가 2차전때 레드카드를 받아 앙리 선수가 그라운드에서 쫓겨났을 때에는 "어휴, 지금 감독 심정 이해가 갑니다. 저도 프랑스 월드컵때 하석주 선수가 퇴장 당하자 한동안 멍하니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습니다"라고 동변상련의 정을 표현했다.

차범근 해설이 근래에 보기 드문 '명해설'로 평가받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국을 대표하는 영원한 축구인 차범근**

차 위원은 축구선수나 감독으로는 시쳇말로 한물 간 '올드 스타'이다. 국내 축구계의 생각은 특히 그러하다.

그러나 팬들의 생각은 다르다.
여론조사잡지인 월간 VOX(복스)가 월드컵 개막전인 지난 4월말 전국의 10~20대 남녀 5백96명을 대상으로 "세계에 자랑하고 싶은 한국인이 누구냐"고 물었다. 그 결과는 모두의 예상의 뒤엎고 차범근 전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다.

차 위원은 전체의 24.1%를 차지, 소프라노 조수미(23.7%), 김대중 대통령(18.4%)를 제치고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차 위원을 기억하지 못할 줄 알았던 젊은 세대들까지도 아직 그를 잊지 않고 있는 것이다.

차범근 위원은 선수시절 많은 신화를 세웠다. 그 중에서도 아직까지 팬들의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 지금으로부터 26년전인 지난 76년 가을 제6회 박스컵 대회에서의 신화적 활약상이다.

한국팀과 말레시이사팀과의 개막전. 이날 한국팀은 졸전을 거듭, 4대1로 경기가 끝나는가 싶었다. 전광판에 남은 시간은 정확히 7분. 그러나 이때부터 기적이 시작됐다. 차범근 선수는 사자처럼 상대방 골문을 향해 돌진, 연속으로 3골을 집어넣었다. 믿기지 않은 장면을 목격한 국내팬들은 열광했고, 상대방 말레이시아 팀은 넋이 나갔다. 한국축구 1백년사에 영원히 기록될 명장면이었다.

78년 차범근 국가대표선수는 기득권을 보장해주는 대표팀 옷을 스스로 벗고, 서독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당시 세계축구의 중심이던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뛰기 위해서였다. 프랑크푸르트팀에 들어간 그는 현지의 냉대를 극복하고 그후 10년동안 98골을 넣는 맹활약을 펼쳤다. '차붐' 신화의 탄생이었다.

***한국 냄비근성의 희생양, 차범근**

10년간 분데스리가에서 선수생활 및 지도자 수업을 마친 차범근은 그후 국내로 귀국, 현대 프로축구팀의 감독을 맡았다. 국내축구를 선진축구로 끌어올리기 위한 오랜 소망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국내에서의 감독생활은 수난의 연속이었다. '축구계 40대 기수론'의 선두주자였던 그는 얼마 뒤 현대팀에서 성적 부진을 이유로 쫓겨났다.

국가축구대표선수 출신인 유재성 현대투신 법인본부장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한마디로 차범근식 선진축구를 이해하는 이들이 국내에 없었다. 한 예로 차범근 감독은 지든 이기든 경기가 끝나면 반드시 선수들을 모아놓고 미팅을 하며 그날 경기내용을 상세히 분석하곤 했다. 선진축구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게 문제였다. 어느날 경기에서 패한 뒤 한창 미팅을 하고 있을 때였다. 한 선수가 손을 들고 "감독님, 차라리 화끈하게 '빳따'를 쳐 주십시오. 그게 차라리 속이 편합니다"라고 말했다. 죽자사자 뛰고 들어와 파김치가 된 판에 무슨 놈의 강의냐는 식의 반응이었다."

차범근 스타일은 이처럼 곳곳에서 충돌을 빚었다. 당시는 전반전 경기상황이 나쁘면 하프타임때 선수들 라커룸에서 퍽퍽 빳따 치는 소리가 들리던 시절이었다. 이른바 전술이나 체력 등과는 달리 '정신력'이 강조돼던 개발연대였다.

차범근 스타일이 결정적으로 국내축구계와 충돌한 것은 98년 프랑스 월드컵이었다. 차감독은 주변의 질시속에 월드컵 대표팀 감독에 발탁됐다. 당연히 그에게 거는 일반국민과 언론의 기대가 컸다.
그러나 98년 프랑스 월드컵 성적은 기대 이하였다. 두 게임에서 연속으로 져 16강 탈락이 확정되자, 비난여론이 들끓었고 이에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은 세번째 경기를 남겨둔 상태에서 차감독을 전격 경질했다. 차감독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지독한 모욕'이었다.

차감독은 그후 중국 프로팀의 초청으로 한국을 떠났다. 이에 앞서 그는 한 시사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승부조작까지 일삼는 국내축구계의 어두운 이면을 폭로, 국내 축구계로부터 완전히 '미운 오리새끼'가 돼버렸다. 차감독은 더이상 국내 축구계에 발을 들여놓아서는 안될 '아웃사이더'로 낙인찍힌 것이다.

***"차범근의 화려한 컴백을 축하한다"**

이처럼 그 누구보다 영광과 회한이 얽힌 축구인생을 살아온 차범근이기에 그의 성공적인 해설위원 등극은 그만큼 팬들에게 반가운 일이고 멋진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 축구전문가는 차범근의 성공적 컴백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의미를 부여했다.

"거스 히딩크 감독과 차범근 전 감독은 여러모로 좋은 비교가 된다. 히딩크 감독이 지난해 네덜란드, 프랑스 등과의 경기에서 5대0으로 패하자 국내 축구계 등 여론은 즉각 그를 바꾸라고 난리였다. 그때 히딩크 감독이 한 말이 '골드컵을 원하면 골드컵 수준에 맞춰주고 월드컵을 원하면 월드컵 수준에 맞춰주겠다'는 명언이었다. 아마 당시 국내축구계 말대로 히딩크 감독을 교체했다면 요즘같이 우리 대표팀의 역량이 월드컵 수준으로까지 발전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차범근 감독에 대해서도 4년전 결코 그렇게 돌팔매질을 해선 안됐다. 차 감독이 무슨 마법사인가. 동네 축구 수준인던 국내 축구를 국제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것이 그렇게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월드컵 대회 기간중 한국을 대표하는 국제축구스타인 그를 전격경질하다니, 한국의 냄비근성을 여지없이 보여준 부끄러운 사건이었다.

그런 면에서 과거의 치욕을 딛고 일어나, 한국 축구해설계의 수준을 선진수준으로 끌어올린 명해설가로 다시 태어난 데 대해 더없이 반갑지 않을 수 없다. 해설자로서 멋진 재출발을 한 차범근 감독에게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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