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체육의 총본산인 대한체육회 회장에 2002 한·일 월드컵축구대회 한국조직위원회(KOWOC)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연택(66)씨가 29일 선출됐다. 또한 체육회 대의원 총회 직후 열린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총회에서도 이 회장을 만장일치로 KOC 위원장에 추대했다.
이로써 대한체육회는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에서의 실언과 장기집권에 대한 체육인들의 반발로 김운용 전 회장이 지난 2월28일 사퇴한 이래, 장장 석달간의 진통끝에 후임 회장을 뽑게 됐다. 이연택 신임 회장은 전임 회장의 잔여 임기인 2005년 2월까지 회장직을 맡게 된다.
'김운용 시대'가 가고 새로이 '이연택 시대'가 열린 것이다.
***특정지역 연고로 DJ정부 출범후 국민체육공단 이사장 역임**
이 회장은 전북 고창 출신으로, 전주고를 나와 동국대, 고려대 대학원을 졸업한 이래 국무총리실에서만 23년간 근무하고 노태우정부 말기와 김영삼정부 초기에 총무처 장관(90~91), 노동부 장관(92~93) 등을 역임했던 정통관료 출신이다.
그후 민자당 전주·완주 지구당 위원장, 중앙대 교수, 광주방송 회장 등을 맡으며 잊혀진 인물처럼 지내다가, DJ정부가 출범하면서 '지역적 특수성'을 연으로 정부조직개편심의위원회, 규제개혁위원회 위원 등을 거쳐 98년 6월부터 2000년 10월까지 문제의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을 지냈다. 그 이후에는 2002년 한·일 월드컵 한국조직위원회 공동위원장으로 활동해왔다.
이 회장은 29일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대한체육회 임시대의원총회에서 결선까지 가는 혼전 끝에 총 47표 중 33표를 획득, 14표에 그친 김정행 회장 직무대행을 따돌리고 회장에 당선됐다. 1차 투표에서는 이연택 회장이 19표, 김정행 직무대행이 10표, 박상하 부회장과 엄삼탁 국민생활체육협의회장이 각각 8표, 최만립 전 대한올림픽위원회(KOC) 부위원장이 2표를 얻어 아무도 과반수를 넘지 못하자 상위 1,2위 득표자가 결선투표를 벌여야 했다. 상당히 치열했던 혼전이었던 셈이다.
대부분의 단체장 선거가 그러하듯, 이번 선거과정에도 뒷말이 많았다. 선거 당시 "이 회장은 정부가 밀고 있으며, 김정행 부회장은 경기인출신 후보로서 김운용 전회장이 막후에서 밀고 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혼전에도 불구하고 이 회장이 이길 수 있었던 배경과 관련, 체육계에서는 정부의 지원 사격외에 이 회장이 국민체육진흥공단 시절에 맺어둔 두터운 '인맥' 덕분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회장 선거는 48개 가맹경기단체 대의원의 투표로 결정된다. 무기명 비밀투표와 출석 대의원 과반수 득표자로 선출되는 완전 자유경선 방식이라 각 경기 단체 또는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인사들을 얼마만큼 확보하느냐에 당선이 좌우된다.
국제대회 '메달박스'로 일컫는 종목단체들은 각 후보들의 '고정표'로 분류된다. 반면에 소외된 군소 경기단체들은 '부동표'에 해당된다. 따라서 소외된 경기단체들의 예산지원에 결정적 역할을 해온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 출신이라는 점이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이 회장, "타이거풀스와 나는 무관하다"**
그러나 체육복표사업 시행자인 국민체육진흥공단의 이사장 출신이라는 대목이 앞으로는 이연택 회장의 행보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게 체육계 안팎의 일반적 분석이다.
이 회장은 체육복표사업 입법화 및 사업자 선정과정을 둘러싸고 로비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시점인 지난 98년 6월부터 2000년 10월까지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을 맡았다. 때문에 이번 선거 과정에 그를 밀던 것으로 알려지던 문화관광부 이홍석 차관보가 체육복표 사업 수뢰혐의로 구속되자, 일각에서는 이 회장이 경선에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관측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이 회장도 이같은 주변의 의구심어린 시선을 의식한 듯, 당선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나는 체육복표 사건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명쾌하게 말할 수 있다"며 "내 후임인 최일홍 진흥공단 이사장이 연루된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운 일이지만 나와는 전혀 무관한 일이기 때문에 체육인들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체육복표 사업 관련자들의 시선은 아직 이 회장의 말을 1백% 신뢰하지 않는 분위기다.
스포츠토토의 고위관계자는 "송재빈 스포츠토토 대표가 98년부터 체육복표사업과 관련한 국민체육진흥공단법률 개정안을 만들어내기 위해 공단 고위관계자들과에 대한 로비를 시도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당시 이사장이 이연택씨 아니었느냐"고 의혹을 제기했다.
또한 국민체육진흥공단에 따르면, 최근 5백만원 뇌물 수수혐의로 여러차례 검찰에 소환된 문화관광부 체육국장 출신인 S상무이사도 이연택 회장의 공단 이사장 재직시 영입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S상무는 공단에서 이사장 다음의 2인자로 군림해 왔다. S상무와 함께 5백만원 뇌물수수혐의로 함께 조사받고 있는 L감사도 미국에서 오랫동안 사업가로 활동하다가 현정부 출범후 여권실세와의 친분을 앞세워 공단에 들어왔으며 사업자 선정 과정에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연택 이사장의 후임인 최일홍 현 이사장도 타이거풀스 시스템통합과 관련해 대주주인 LG CNS의 하청업체로부터 1억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30일 구속됐다. 최 이사장은 이밖에 타이거풀스가 사업자로 선정되기 직전인 지난해 1월 송재빈 타이거풀스회장(구속수감중)과 체육복표사업과 관련해 수시로 만난 정황이 포착돼 검찰이 이를 수사중이다. 체육복표사업의 주무부서인 문화관광부 이홍석 차관보도 이미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됐다.
공단 안팎의 인물들이 속속 쇠고랑을 차고 있는 형국이다.
***"이제는 누구도 무관하다고 자신할 수 없다"**
스포츠토토의 고위관계자는 "최일홍 이사장 같이 상당히 깨끗한 것으로 알고 있던 분도 뇌물을 받았다니 충격이 크다"고 놀라워 했으며, 공단 관계자도 "최 이사장이 구속된 만큼 이제는 공단의 누구는 무관하다고 말할 자신이 없다"고 개탄했다.
이연택 회장은 지난해말 정몽준 월드컵조직위원회 공동위원장과 갈등 끝에 사의를 표명하는 등 물의를 빚기도 했다. 이연택 공동위원장이 정회장을 견제하기 위해 정부측에서 심어놓은 사람이라는 인식 때문에 정 회장이 철저하게 무시하는 행동을 계속하자, 이를 참지 못한 이 위원장이 반발했다는 게 당시 정설이었다.
결국 체육계는 '김운용 장기집권'을 타파하기 위해 경선을 도입해 새 회장을 뽑긴 했지만, 그 결과가 과연 '일진보'인지 여부는 아직까지 속단하기 힘든 상황인 셈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