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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죽어도 벌금으로 해결되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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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죽어도 벌금으로 해결되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

산업재해로 자식 잃은 부모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재정 촉구

자식을 잃은 부모는 늘 자책한다. '애초 그 기업에 보내지 않았다면', '이전에 사고가 발생했을 때, 강하게 지적했다면'. 끊이지 않고 '만약에'를 생각한다. 하지만 한 번 떠난 자식은 돌아오지 않는 법. 그나마도 자기 자식과 비슷한 죽음을 뉴스 등을 통해 접하게 될 경우, 억장이 무너진다. 죽음의 이유, 그리고 배경과 상황 등이 자기 자식 사례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자식이 죽고 나서도 변하지 않는 사회에 절망하는 부모다.


"아들이 죽고 난 뒤, 그렇게 제도를 개선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런데 쉽지가 않더라고요. 지쳤죠. 그러다 아들이 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000공장에서 아들과 똑같은 사망사고가 발생했어요. 그 사고를 접하고 절망했죠. '내가 좀더 열심히 했다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자책하고 또 자책했어요."


20일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연대가 주최하는 '유가족과 함께 하는 기업처벌법 이야기마당'에 참여한 고(故) 이민호 군 아버지 이상영 씨는 답답함을 호소했다. 이 씨 아들은 2017년 11월 제주도 음료회사에서 현장실습 도중 사망했다. 한국에서는 사업장에서 안전 시설과 조치가 미비해 사고로 노동자가 죽어도, 기업은 큰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 '안전 비용'보다 '사람값'이 싸니 사고는 반복된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필요한 이유다.


▲ 20일 오후 서울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유가족과 함께하는 기업처벌법 이야기 마당에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으로 숨진 고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가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들 죽은 후,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달라진 건 없다"


이 씨의 아들이 세상을 떠난 뒤, 1년도 되지 않는 시기에 같은 이유로 제주도 음료공장에서 또다시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30대 노동자는 작업 도중 기계가 멈추자 센서 오류로 판단하고 기계 안으로 들어갔으나 이내 다시 작동해 기계에 목이 끼어 사망했다. 고인에게는 100일 된 아기가 있었다.


이민호 군도 그렇게 사망했다. 이상영 씨는 "자식이 죽고 나서 노동부, 교육청, 청와대 등 안 가본 곳이 없다"며 "아들 죽음의 원인과 사망 발생한 원인 해결을 촉구했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이 나라는 기업하기 너무 좋은 나라입니다. 일하다가 사람이 죽어나가도 벌금으로 해결이 됩니다. 말 잘 듣는 고등학생들을 기업에 값싼 노동력으로 제공해주는 용역회사인 교육당국도 있습니다. 노동부는 관리·감독 할 여력이 없다면서, 사고가 나야만 사업장에 간다며 사고를 방치하고 있습니다. 민호가 떠난 후,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고, 다시는 민호와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랐는데 1년이 채 되지 않아 제주도 삼다수 공장에서 똑같은 사고로 30대 노동자가 사망했습니다. 기업을 강력하게 처벌하는 법이 있었다면 민호의 사고 이후, 전국의 생수, 음료 등을 생산하는 공장에는 자체적인 변화가 있었을 것입니다. 삼다수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민호 군 사고가 난 업체 사장에 대한 1심 선고가 올해 1월에 있었다. 여느 산재 관련 재판과 마찬가지로 사업주에게 실형이 아닌 집행유예(징역 2년, 집행유예 3년)가 선고됐다. 사람이 죽었지만 처벌은 솜방망이인 셈이다.


이 씨는 "결국, 모든 아픔과 잘못은 부모 책임으로 돌아간다"며 "아들의 죽음에 대해 책임질 사람들이 확실히 책임지는 사회가 되어야 민호의 죽음이 헛되지 않고, 제2의 민호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기업을 없애는 방법은 하나입니다. 회사가 기사회생을 못하도록 막대한 벌금을 때리던지, 아니면 사업주를 감옥에 넣어 최소 5년형을 살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안전한 공장을 만들지 않겠습니까. 나만 아니고, 내 새끼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하는 게 지금의 우리나라 기업들입니다. 이것을 바꾸지 않으면 여전히 아이들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이 죽을 경우, 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워야 한다"


다른 유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날 자리한 고(故) 황유미 씨 아버지 황상기 씨는 "사람이 죽을 경우, 기업이 감당하기가 어려워야 한다"며 "노동자 한 명 죽으면 1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게 아니라 그 기업에서 운영하는 이익의 몇%를 내는 식이든가, 아니면 기업 총 책임자가 법정 구속을 당하는 정도의 처벌이 있어야 노동자를 귀하게 여긴다"고 말했다.


고(故) 김용균 씨 어머니 김미숙 씨도 "우리 사회는 안전장치보다 사람 목숨값이 더 싸다"며 "일하다 사람이 죽어도 사업주는 실형을 살지 않는다. 평균 500만 원도 안 되는 벌금을 내면 끝이다"며 "영국의 경우, 사람이 죽으면, 사업주가 4~5년 이상 실형을 받거나 회사 이익의 10분의 1 이상을 벌금으로 낸다고 들었다"라고 말했다.


김미숙 씨는 "그 결과, 거기는 안전사고가 많이 방지됐다고 들었다"며 "우리나라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만들어 안전하지 않아 다치거나 죽는 사람이 줄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용균이가 일하던 곳을 아들이 죽기 전 한 달 전 검사했는데 다 합격 판정을 받았습니다. 가보지도 않고 합격을 내린 듯합니다. 지난 8년 동안 그곳에서 12명이 죽었습니다. 계속 그런 식으로 해온 것으로 보여집니다. 11명째 노동자가 죽었을 때, 제대로 했다면 우리 아들은 죽지 않았을 겁니다. 기업과 정부, 정치인이 합세해서 비정규직을 만들었고, 그들에게 최소한 임금만을 주고는 최대한의 이익을 뽑았다는 것을 지난 두 달 사이 알게 됐습니다. 두 달 전에는 서민들이 나라에 의해서 안전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두 달 동안 어두운 곳을 알게 됐습니다. 앞으로는 아이가 원하는 것을 행하고 살고자 합니다."

ⓒ프레시안(최형락)


"사용주를 처벌할 수 없는 게 현 법안의 구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심각한 재해를 유발한 기업 책임자는 물론 기업 자체도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골자다. 현재의 산업안전보건법은 산재사망이 발생해도 직접 책임이 있는 관리자만 처벌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프레스에 끼어 노동자가 사망한 경우, 그 프레스의 안전점검을 하지 않은 누군가를 처벌하는 식이다. 결국, 처벌은 죽은 노동자의 동료이거나 현장소장, 확장하면 공장장 정도가 된다.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대표이자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연대 집행위원장은 "실질적인 사용주를 처벌할 수 없는 게 현 법안의 구조"라며 "아무리 처벌조항을 강화해도 이를 넘을 수 없다"고 현 산업안전보건법의 한계를 설명했다.


이 대표는 "경영책임자를 처벌하려면 경영책임자가 프레스 작동에 직접적으로 개입했다는 정거를 제출해야 하는데, 복잡한 대기업 결정 과정에서 이를 찾아내기란 매우 어렵다"며 "결국 모두 빠져나가는 식이 된다"고 지적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프레스 안전책임자 등 직접적 책임이 있는 개인뿐만 아니라, 경영책임자에게도 처벌할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있다. 이 대표는 "경영책임자가 처벌에서 빠져나가는 것은 경영책임자를 특정해 안전보호의 책임을 지우지 않기 때문"이라며 "경영자에게 이를 부여하고 이를 다하지 않을 때, 책임을 지우도록 하는 게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조치"라고 설명했다.


"한국 기업은 매출이 늘어나면 노동자의 사망도 늘어난다"


이 대표는 그렇게 강력한 법적 조치, 즉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필요한 이유를 두고 '재발 방지'라고 설명했다.


"한국 사회 내에서 산업재해의 특징은 △ 후진적이고 △ 대기업도 예외가 아닐 뿐더러 △ 반복성을 가진다는 점이다. 이를 종합하면 결국, 기업은 아무 것도 안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건설업에서 사망사고가 매우 자주 발생한다. 그런데 어떤 건설회사에서 많이 나느냐를 따져보면 그해 매출이 얼마냐에 비례한다. 매출이 늘어나면 산재사망도 비례해서 늘어나는 식이다. 사업을 하면서, 노동자가 죽지 않게 하는 예방 조치를 전혀 안 한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구조가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


이 대표는 "물론, 산재를 줄이기 위해서는 처벌만으로는 줄지 않는다"며 "정부의 감시, 노동자 당사자의 권리 주장 등이 보장되고 확대되는 게 재발 방지의 필수조건이다. 그 일환으로 처벌 강화도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혹자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부과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하지만 이는 유럽에서 이미 결론이 난 이야기다"라며 "기업은 인센티브로 바뀌지 않고 처벌하거나 망신을 줘야 바뀐다는 게 실질적 연구와 경험으로 확인됐다. 그런 점에서 기업처벌법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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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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