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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투쟁 홍범도 장군 모시는 일이 의정활동과 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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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투쟁 홍범도 장군 모시는 일이 의정활동과 배치?"

[인터뷰] "의정활동 전념? 내가 아니면 누가 이 일 하나"

홍범도 장군(1868~1943). 항일 독립운동 최초의 전승 '봉오동 전투'(1920년)의 영웅을 모르는 사람 없다. 그해 김좌진 장군과 함께 항일 무장투쟁 사상 최대 전과인 '청산리 대첩'도 이끌었다.

1963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됐지만, 한동안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홍범도의 행적을 담은 기록을 찾기가 어려웠다. 연해주에서 비참한 말년을 보낸 탓에 그의 업적을 제대로 알릴 후손이 한국에 없었다. 그보다는, 이념의 시대가 홍범도에게 덧씌운 좌익 혐의가 더 큰 이유였다.

2005년 출범한 '홍범도장군 기념사업회'가 그나마 홍범도의 업적을 세상에 알리는 일들을 해왔다.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의원이 지난해 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아 홍범도 탄생 150주년 기념행사를 처음으로 국회에서 치렀다.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 이종찬 전 의원이 우 의원에게 이 일을 권했다. 임시정부 법무부 비서국장을 지낸 독립운동가 김한 선생이 우 의원의 외조부다. 신간회 사건으로 일제의 검거를 피해 국외로 간 김한은 연해주에서 생을 마감했다. 스탈린의 고려인 강제이주 사건으로 비극적 말년을 보낸 홍범도와 겹친다.

우 의원으로서는 홍범도 기념사업회를 맡아달라는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다.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돼 비참한 말년을 보내다 돌아가신 홍범도 장군을 위한 사업이야말로 스탈린의 한인 강제이주 정책에 저항하다 처형된 독립운동가 김한 선생의 후손인 제가 맡아야 할 소명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우 의원이 요즘 곤혹스러워졌다.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자문위원회가 그의 홍범도 기념사업회 이사장 활동에 제동을 건 탓이다. 국회법 제29조 '겸직 금지' 조항을 근거로 우 의원에게 이사장직 사직을 권고했다. 재심을 요청해 놓았지만, 자문위 결정이 달라지지 않으면 우 의원으로서는 큰 부담이다.

상식적으로 보기에도 이익충돌 소지가 없는 대외 활동에 윤리위가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다.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다.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장을 맡았던 안민석 의원은 이 조항 때문에 자리에서 물러난 뒤 민주당 의원들 단체 카카오톡 대화방에 "백혈병 아이들 돕는 일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겸직 금지 조항은 황당하다"고 하소연한 적도 있다. 최근 '5.18 망언' 의원들에 대한 징계 논란과 맞물려, 하란 일 안하고 괜한 일 트집 잡는 윤리위로 비친다.

20일 우 의원을 만나 저간의 사정을 들어봤다.

▲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의원 ⓒ프레시안(최형락)

"최고의 항일무장 투쟁 하신 분 모시는 일이 의정활동과 배치?"

프레시안 : 어쩌다 윤리위로부터 사직 권고까지 받게 됐나?

우원식 : 외부위원들로 구성된 국회 윤리심사자문위원회가 의원들 겸직 문제를 심사하는데, 거의 대부분 겸직을 못 하도록 한다. 국회법 29조 겸직 금지규정이 있다. 의정활동에 전념하고 이해관계가 충돌되는 일을 사전에 예방하자는 취지다.

그 취지를 이해 못 하는 바 아니다. 내가 과거 대한장애인보치아연맹 회장을 10년간 했었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단체인데도 활동을 그만하라더라. 의원들 전체적으로 체육경기 관련 단체에 관여하지 말라는 취지를 이해해서 그만뒀다. 축구 같은 인기 종목은 이해 충돌이 있을 수 있지 않나.

하지만 홍범도 장군 기념사업회에서 손 떼라는 건 정말 납득이 안 된다. 이건 굉장히 중요한 의정활동 아닌가? 냉전시대에 아무도 돌아보지 않았던 분이다. 소련의 한인 강제 이주 등 우리 민족이 과거에 겪었던 큰 아픔도 그분 삶에 녹아 있다. 우리로서는 숙제를 안고 있는 일이다.

이 일이 의정활동에 방해되거나 배치되나? 더구나 나는 그 사건과 직결돼 있는 독립유공자의 후손이다. 영리 목적도 아니고 이해충돌이 되는 것도 아니다. 자문위가 너무 편협하게 국회법을 적용했다는 생각이다.

프레시안 : 재심에서도 사정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우원식 : 권고사항이기 때문에 내가 고집하면 할 수는 있다. 하지만 국회의원이 국회 윤리위 권고를 거부하는 것은 큰 부담이다. 그 이전에 납득을 못하겠어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다.

프레시안 : 최근 '5.18 망언' 관계자들 징계 문제를 대하는 윤리위의 태도와 달리 매우 엄격해 보인다.

우원식 : 국회의원으로 구성된 윤리위는 의원들 잘못에 너무 관대해서 문제인데, 외부 인사들로 구성된 윤리심사자문위가 혹시 너무 단편적이고 기계적인 판단으로 국회의원이 해야 할 일을 막는 것 아닌가 하는 문제의식은 있다. 전후 사정을 잘 따져보면 자문위도 이해를 할 것으로 믿는다. 이해충돌은 피해야겠지만, 정말 헌신하겠다고 하는 일을 못하게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프레시안 : 홍범도 장군 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어떤 경위로 맡게 됐나?

우원식 :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 예산 문제로 몇 차례 만난 적 있는 이종찬 전 의원이 작년에 찾아와 맡아달라더라.(우 의원 전까지 이종찬 전 의원이 기념사업회 이사장이었다. 편집자)

을지로위원회 일도 많아서 피하고 싶었지만, 이 의원 말을 들어보니 이건 내가 맡아야 할 일이었다. 홍범도 장군이 내 외조부(김한 선생)와 같은 경우이고, 이 문제는 국회에서 힘 있게 다뤄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다.

홍 장군과 내 외조부는 일제 하에서 초기에 항일 운동을 하셨던 분들이다. 외조부는 일본 법정대학 출신으로 변호사가 돼서 우리 임시정부의 법무부 비서국장을 하셨다. 국내에선 의열단을 하셨다. 김상옥 의사의 종로경찰서 폭탄투척 사건 때 감옥에 들어갔다. 신간회에도 참여하셨고, 일제의 눈을 피해 연해주로 건너가셨다. 강제 이주에 반대하는 독립운동가들을 스탈린이 체포해서 모스크바에서 처형하는데, 그때 외조부도 처형당했다.

홍범도 장군도 독립운동을 열심히 하다가 그 후 끌려가서 중앙아시아로 옮겨져 고려인으로 산 것이다.(무국적자 취급받던 홍범도 장군이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것은 지난 2009년에 이르러서였다. 편집자) 그렇게 보면 강제이주 사건으로 한 분은 끌려가셨고 한 분은 처형당한 것이다.

스탈린의 강제이주 사건, 고려인 문제에 대해선 그 피해를 당한 외조부 후손으로서 나는 기회가 되면 그 문제를 다뤄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홍범도 장군이 딱 그 문제의 당사자니까 '아, 이건 내가 숙명적으로 할 수밖에 없는 일이구나' 하고 맡게 된 것이다.

프레시안 : 외조부와의 인연이 아니더라도, 홍범도에 관한 제대로 된 평가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선 의미 있는 일인데?

우원식 : 1920년 봉오동 전투에서 홍범도 장군이 대첩을 한다. 이를 쓸어버리려고 일본 대군이 온다. 그래서 홍범도 부대와 김좌진 부대가 합작을 한다. 두 분이 같이 해서 이긴 전쟁이 청산리 대첩이다. 그런데 김좌진 장군만큼 홍범도 장군이 예우를 받지는 못했다.

이유는 이렇다. 김좌진 부대에 있던 이범석 장군이 처음 쓴 책에서 홍범도 장군을 좀 폄하해 기술했다. 이범석 장군이 그렇게 평가를 한데다, 홍범도 장군이 서민 출신이고, 코민테른과 관련이 있어 레닌도 만나고 그랬다. 그런 좌익 이미지 때문에 저평가된 게 아닌가 싶다.(15살까지 머슴을 산 홍범도는 이후 종이공장 노동자, 광산 노동자 등을 전전했다. 1922년 레닌이 주도한 코민테른집행위원회가 주최한 극동민족대회에 조선인민대표단 일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편집자)

홍범도 장군은 서민 출신으로 정말 어렵게 살았던 분이다. 나라의 도움을 한 번도 못 받았다. 신계사에서 식객승도 하고 백두산 근처에서 포수 생활도 했다. 그런 사람이 온전히 나라를 위해 나섰다. 우리나라 최고의 항일 무장투쟁을 한 분이 홍범도 장군이다. 부인은 고문으로 죽었고, 두 아들은 병사하거나 전사했다. 그런 분을 우리가 잘 기려야 하지 않겠나.

▲홍범도 장군 ⓒ국가보훈처

프레시안 : 기념사업회가 주로 하는 활동은?

우원식 : 5년 단위로 기념사업을 한다. 작년이 홍범도 탄생 150주년, 사망 75주년이 되는 해였다. 그때 내가 이사장직을 맡으면서 처음으로 국회에서 행사를 했다. 관계된 분들이 그 자리에서 울었다. '드디어 홍범도 장군이 국회로 들어왔다'고. 변방으로 쫒겨다니고 고통만 당하시다가 국회로 처음 들어왔다'고.

프레시안 : 연해주에 계신 홍범도 장군 외손녀(김알라 여사)도 궁핍하다 들었다.

우원식 : 연해주 우스리스크에 계신다. 아직 뵙지는 못했지만, 어렵다고 해 안쓰럽다.

프레시안 : 기념사업회가 계획하고 있는 일은?

우원식 : 연해주에 묻힌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 문제를 검토해야 한다. 아직은 고려인 사회의 중심이기 때문에 고려인들이 힘을 모아서 무덤도 관리하고 상도 세웠다. 그런데 그쪽 이야기 들어보니 고려인 2, 3세로 넘어오면서 관리가 어려워졌다고 하더라. 그쪽 분들은 홍 장군 유해를 본국으로 봉환하기를 원하시더라.

쉬운 일은 아니다. 홍범도 장군 고향이 평양이다. 활동 무대도 백두산이었다. 그래서 우리보다 북한에서 더 영웅이다. 봉환할 적지는 태어나신 평양인데, 막상 평양에 봉환하면 그동안 기렸던 남쪽 분들이 못 가니까 섣불리 추진을 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한반도 평화가 이번에 좀 더 공고해지면 남북한이 함께 하는 사업으로도 굉장히 중요한 사업이 될 수 있다. 민족의 정통성을 같이 생각하면서 만들어볼 수 있는 사업이 홍범도 사업이다. 홍범도 장군 봉환 문제를 남북이 함께하는 민족적인 일로 만들어낼 필요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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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구

2001년에 입사한 첫 직장 프레시안에 뼈를 묻는 중입니다. 국회와 청와대를 전전하며 정치팀을 주로 담당했습니다. 잠시 편집국장도 했습니다. 2015년 협동조합팀에서 일했고 현재 국제한반도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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