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타운도 있는 탕그랑에서 현지 공장 노조 간부들을 상대로 단체교섭 교육을 하는데, 인도네시아 섬유노조연맹 간부가 브카시에 있는 공장에 가야 한다고 고집했다. 브카시는 자카르타 동부에 소재한 인도네시아 최대의 공업도시로 한국으로 치면 울산 같은 곳이다.
뭐 때문에 그러냐 물으니, 한국인 사장이 월급을 떼먹고 도망가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몇 달째 농성하고 있다며 국제 노조 활동가이자 사장과 같은 한국인인 네가 농성장을 방문해 사정을 들어 보란다.
출장 일정상 따로 시간을 낼 수 없어 사흘짜리 교육 마지막 날 강의를 현지 강사에 맡기고, 기차를 타고 브카시로 갔다.
농성 중인 노동자들에 따르면, 종업원 4000명 중 여성이 3800명. 이들 중 상당수가 '싱글맘'이다. 최저임금 수준인 월급은 노동시간이 아니라 목표량을 달성해야 지급되는데, 목표량은 하루 10시간에서 12시간 넘게 일해야 겨우 맞출 수 있었다. 연장근무 수당은 지급되지 않았고, 주문량이 많을 때는 토요일은 물론 일요일도 나와 일해야 했다. 물론 무급으로.
아침 7시 30분이 공식적인 작업 시작 시간이지만, 노동자들은 7시까지 기계 앞에 있어야 했다. 낮 12시에 시작되는 점심시간은 고작 30분. '식당'이라 불리는 건물에선 점심이 제공되지 않는다. 노동자들은 공장문 밖 노점에서 자기 돈으로 밥을 사서 공장 안팎 공터에서 식사를 한다. 점심시간 30분에는 화장실 가는 시간과 신에게 기도하는 시간이 포함되어 있다.
낮 12시 30분 시작되는 오후 작업은 한국인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정한 목표량을 달성해야 끝난다. 보통 저녁 7시에서 8시 사이, 또 어떤 이는 저녁 9시를 넘겨야 일이 끝난다. 공장 일을 마친 노동자는 공장 밖 사유지에 있는 오토바이 주차장으로 가서 자기 돈으로 주차비를 정산한 뒤, 집으로 돌아간다.
귀가하면 저녁 9시가 넘는다. 밥하고, 청소하고, 애들 챙기고, 밤 11시쯤 눈을 붙인다. 집이 공장에서 가까운 이는 새벽 5시, 먼 이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출근을 준비한다. 대부분 아침 6시 전에 집을 나서는데, 아침 7시까지는 공장 기계 앞에 서서 작업을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침 6시에 집을 나서 밤 8시나 9시가 되어야 집에 돌아오니, 출퇴근 시간을 포함한 실질 노동시간은 하루 14시간이 넘는다.
그렇게 일해 받는 월급은 최저임금 390만 루피아, 우리 돈 30만 원. 얼마 전부터 한국인 사장은 회사가 어려우니 330만 루피아만 주며 밀린 임금은 나중에 주겠다고 했는데, 한국인들이 하나 둘 공장에서 사라졌다.
사장님으로 추정되는 '미스터 킴'은 2018년 9월 6일 공장에서 사라졌고, 8명의 한국인 중 마지막으로 남은 '미스터 리'는 10월 27일 공장에서 사라졌다. 한국인들이 인도네시아 노동자 4000명에게서 떼먹은 임금은 970억 루피아, 떼먹은 건강보험료는 70억 루피아.
병원도 가지 못하고, 애들 학비 못 내는 건 다반사고, 할부로 산 오토바이도 금융회사가 빼앗아 갔다. 1990년 공장이 처음 들어섰을 때 스물넷 아가씨로 입사해 청춘을 공장에 바치고 이제 쉰셋, 아줌마인지 할머니인지 모르게 늙어버린 노동자는 빼앗긴 돈도 서럽지만 한국인들이 말 한마디 없이 사라진 현실이 더 기가 막힌다.
한국인들이 기계까지 빼돌릴까 싶어 공장 식당에서 24시간 농성하고 있다고 노조위원장은 말했다. 식당을 둘러보니, 필자의 어릴 적 집 뒤에 있던 돼지우리와 다를 바 없었다.
노동자 4000명이 쓸 수 있는 '식당'이 여기 한 군데 밖에 없느냐는 질문에 노동자들은 깔깔거리며 웃었다. 고개를 들어 둘러보니, 공장 부지와 각종 시설이 도저히 4000명이 일하는 시설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좁고 열악했다.
노동자들의 사정을 듣고 나서 공장 시설을 둘러봤다. 기계가 있는 건물은 모두 자물쇠로 잠겼다. 창문으로 들여다보니, 봉제 기계가 가득했다. 사시사철 여름인 나라에 에어컨도 없고, 환풍기도 없다. 송풍기와 천장과 벽 사이 빈 공간이 작업장 안의 열기를 밖으로 뽑아내는 유일한 장치다.
화장실이 어디냐 물으니, 공장 후미 구석지고 어두운 곳으로 안내했다. 소나기가 내린 뒤라 화장실로 가는 길에 빗물이 고였다. 질퍽거리며 걸어가는데, 저 앞에 수천 명의 여성 노동자들이 사용하는 화장실이 보였다.
더럽고 더러워 구역질이 나는 화장실도 남녀 구분은 있어, 뒤쪽 세 칸이 남자용이란다. 그곳을 지나니, 기도실로 올라가는 계단이 나왔다. 누추하고 남루하기 그지없는 곳에 신을 향해 기도하는 공간이 있었다. 신이 자물쇠가 채워진 기도실 앞에 덩그러니 놓인 주인 없는 의자에 힘없이 앉아서 기도실 계단을 오르는 나를 내려 보는 듯했다. 왜 이제 서야 왔느냐며….
계단을 내려와 영어로 '소셜 오디팅(social auditing)'이라 불리는, 브랜드가 파견한 노동조건 점검단의 지적을 받고 개선했다는 화장실로 갔다. '화장실'이라는 한글 팻말이 붙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여기가 소셜 오디팅 점검단의 지적 이후 개선된 곳이 맞느냐고 재차 물으니, 그렇단다.
한국인 8명도 이 화장실을 썼느냐 물으니, 그들만을 위한 화장실은 실내에 따로 있다고 했다. 그곳은 열쇠로 문이 잠긴 건물 안에 있어 둘러볼 수 없었다. 소셜 오디팅을 통해 개선했다는 화장실을 보며 쓴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농성장인 '식당'으로 되돌아가 내부를 찬찬히 둘러보니, 팻말이 붙어 있다. 통역에 물으니 '식당을 깨끗하게 사용하라'는 경고문이란다. '부로꾸(ブロック, 벽돌)'로 쌓아 올린 공장 건물과 시설들은 페인트로 도색된 적이 없어 황량했다. 불현듯 평양 거리의 빌딩들이 페인트도 바르지 못해 황량하기 짝이 없다 비웃던 한국 언론이 생각났다.
농성 노동자들에게 뭘 원하느냐 물으니, 한국인들이 빼돌린 밀린 월급을 받고 싶단다. 한국은 민주적인 대통령이 다스리는 민주적인 나라라고 뉴스에서 봤는데, 한국 정부가 나서 주면 해결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감도 내비쳤다.
내가 근무하는 국제 노조에 보고하고 현지 노조연맹 조직들과 해결책을 찾아 보겠으나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하는 데 가슴이 아렸다. 공장 문으로 들어오는 나를 반기던 얼굴이 기대감에 들떠 밝았는데, 이들 앞에 닥칠지 모를 차디찬 현실을 이야기하니 얼굴이 어두워졌다.
정 안 되면 '미스터 킴' 어글리 코리안(비열한 한국인)의 이름과 얼굴을 공개라도 해야겠다 다짐하면서, 월급 떼먹고 도망간 한국인의 명단과 사진을 이메일로 보내 달라 부탁했다. 다음 출장길에 시간을 따로내어 꼭 들리겠다고 하니, 그제서야 환한 얼굴로 웃는다. 이들이 원하는 건 빼앗긴 월급만큼이나 공감과 존중이라는 걸 느꼈다. 이윤 창출에 도움이 안 되면, 말 한마디 없이 버려지는 기계가 아니라 희로애락을 함께 느끼는 같은 사람이라는….
공장 문을 나서는데, 노조위원장이 배웅하며 자신의 두 어깨를 툭툭 친다. 조합원 1000명과 종업원 4000명의 생계를 짊어진 어깨라며 씩 웃는다. 귀로에 같이 일하는 인도네시아 변호사에게 물으니, 임금을 떼먹은 사장을 형사범으로 처벌할 수 있단다. 이 공장 건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라 지시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별 세 개짜리 호텔방 침대에 누우니, 낮에 본 식당과 화장실이 어른거린다. 농성하며 밤을 지새울 노동자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다. 한국 뉴스를 검색하니, 아세안을 향한 '신남방경제' 어쩌고 하는 기사가 뜬다.
한국인들이 도망간 브카시의 회사 이름을 검색하니, 노동자들이 공장 '부로꾸'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 보인다. 환하게 웃는 청년 여성 노동자들의 얼굴 표정에서, 국적도 다르고 성도 다르지만, 첫 양복을 입고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더 나은 내일로의 꿈으로 충만했던 한국 청년 노동자 김용균의 얼굴이 떠오른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용균의 부모가 좋은 만남을 가졌다는 소식을 들으며, 잘 됐다 생각하는 마음 한구석이 먹먹하다.
기계보다 못한 대우를 받으며 한국 기업에서 일하는 인도네시아의 '김용균'들은, 신남방경제 아세안의 '김용균'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가슴이 새까맣게 녹아버린 인도네시아와 아세안의 '김용균' 부모들은 또 어떻게 해야 하나. 상념과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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