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교통부가 전남 목포와 김대중 대통령의 생가가 있는 하의도를 비롯한 신안군 주요 섬들을 20개의 다리로 연결하는 2조원대의 초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해온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 큰 물의를 빚고 있다.
이같은 초대형 연육교 건설계획은 지난 몇년간 전남지역 최대 쟁점이었던 목포로의 전남도청 이전 문제 등과 어우러져 권력이 시대착오적인 '성역화'를 추진했던 게 아니냐는 강한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건교부, 쉬쉬 하며 2조원대 신안군 연도교 계획 추진**
13일 건교부에 따르면, 건교부는 지난해 8월 총 1천2백67km의 국도건설 대상지를 확정하는 과정에 전남 목포에서 신안군의 압해도 사이에 연육교를 건설한 뒤 이어 압해도-암태도-비금도-도초도-하의도-상태도-장산도-안좌도 등을 연도교로 잇는 78km의 국도 2호선 연장계획을 포함시켰다. 신안군의 20개 섬을 잇는 이번 연도교 공사에만 최소한 1조8천여억원이 필요하며, 섬안의 지방도 공사까지 포함시킬 경우 전체 비용이 2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건교부는 99년 11월 이 계획을 수립해 국토연구원에 발주를 주었으며, 용역결과에 따라 지난해 8월 유관부처간 협의를 거쳐 이를 관보에 공시했다. 이 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오는 2005년부터 정식예산을 편성해 단계적으로 건설할 계획이다.
건교부 관계자는 13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지난해 8월 관보를 통해 확정고시되었던 사항은 단순히 노선을 지정한 단계에 불과하다"며 "아직 구체적인 사업계획이 추진된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그는 그러나 "이러한 확정고시 내용을 별도의 보도자료로 배포하진 않았다"고 밝혔다. 이는 통상적으로 확정고시 내용을 보도자료로 내던 관례와 다른 것이어서, 은폐 논란을 낳고 있다.
건교부 관계자는 또 "신안군 도서지역을 도로로 잇는 사업은 신안군에서 여러 차례 요청한 데 따른 것이며 이같은 사업은 전국일주도로 계획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전국 일주도로를 연장해 주요 섬들을 연도교로 연결하는 이같은 노선지정의 예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답변하지 못했다.
***'성역화'를 시도한 것인가**
이같은 건교부의 신안군 일대 20개 섬을 잇겠다는 연도교 공사는 투입비용 대비 효용성 측면에서 강한 '지역 특혜'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2조원의 천문학적 예산이 투입되는 이번 연도교 건설로 직접 혜택을 보는 신안지역 주민은 3만2천명 정도로, 대도시의 1~2개 동 인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국내에는 아직까지 이처럼 수조원의 거액을 들여 섬과 섬을 잇는 대형 연도교 공사가 시행된 적이 없다.
옆나라 일본의 경우 90년대 들어 이같은 연도교 공사가 진행된 예가 상당수 있긴 하다. 그러나 이는 장기불황으로 도산위기에 몰린 지방 건설사들을 돕기 위해 '경기부양' 정책 차원에서 진행된 공사로, 지금도 일본에서는 몇몇 부실건설사들을 돕기 위해 천문학적 국민세금을 낭비한 게 아니냐는 특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신안군 연도교의 경우 일본의 경우처럼 공사 시행시 지방 건설사들에게 큰 이득이 돌아간다는 측면외에, 다리로 잇는 섬들 가운데 한 곳인 하의도에 김대중대통령의 생가가 있다는 사실로 인해 집권세력이 일종의 '성역화'를 추진하려 한 게 아니냐는 강한 의혹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전남도청 이전문제로 광주 민심 흉흉**
성역화 의혹이 제기된 것은 유감스럽게도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김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광주와 태생적 고향인 목포를 '소지역주의'로 갈라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전남도청 이전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오늘 허탈감과 상실감을 넘어 배신감과 함께 끓어오르는 분노의 심정으로…(중략). 그렇게도 기대했던 김대중 대통령에 의한 정권교체 열망은 어느새 절망감으로 바뀌었고 당당하게 의사표시를 할 수 있었던 탄압과 억압의 군사독재 시절보다, 입이 있어도 벙어리 냉가슴 앓듯 말을 할 수 없는 지금이야말로 차라리 혀를 깨물고 싶은 심정뿐이다.(후략)"
2000년 광주지역 인사 3천여 명이 발기인으로 참여해 출범한 '전남도청 이전 반대 및 광주·전남통합추진위원회'(이하 통추위)의 결성선언문의 한 구절이다. 이 선언문에는 또한 "도청 이전 문제가 국민의 정부에 의해 제기된 문제가 아니라 할지라도 처리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들을 강건너 불보듯 하고 있는 김대중 대통령의 저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이 지역 상황은 김대중 대통령이 과연 퇴임 후 지역민의 열렬한 지지와 사랑 속에 고향 방문을 할 수 있을지, 아니면 달걀세례나 받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는 원망의 소리로 가득차 있었다.
전남도청 이전을 둘러싼 논란의 발단은 YS정부 출범초기인 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특별담화를 통해 전남도청 자리에 5·18기념공원을 조성하는 대신, 도청은 전남 관내로 이전하겠다고 밝혔다. 우여곡절 끝에 최적 후보지로 전남 무안군 삼향면 일대가 선정됐다.
도청 이전은 그러나 광주시와 시의회의 반대, 정부의 무응답 등으로 지지부진하다가 DJ정부 출범 얼마뒤인 지난 99년 5월의 행정자치부 승인과 99년 6월의 전남도의회의 조례안 의결 등을 거쳐 2004년말 입주를 목표로 지난해말부터 공사가 진행중이다.
전남도청 이전사업은 신청사 건립과 함께 인구 9만명 규모의 '남악 신도시' 건설을 동반하고 있기 때문에 2조6천여억원이 투입되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이에 광주시민들 사이에서 "가뜩이나 경기가 좋지 않은데 도청마저 빠져나가면 광주지역 도심 상권이 급속히 쇠퇴하고 인구 감소와 함께 도시 전체가 경제적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위기감이 확산되었다. 특히 도청을 중심으로 한 광주 충장로와 금남로 등 구도심권은 유동인구 감소와 심리적 위축으로 부동산 가격하락과 인쇄·음식업 쇠퇴 등 80년대이후 진행중인 도심공동화가 가속화할 것을 우려했다.
99년 6월6일 오후 광주 망월동 5·18 묘역에서 5·18 단체의 한 회원이 국민회의 한화갑 당시 전남도지부장에게 인분을 던진 사건은 당시 광주 민심이 어떤 것인지 상징적으로 보여준 상징적 사건으로 회자되고 있다. 지난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때 한화갑 민주당 대표가 예상밖으로 3위밖에 못하며 결국 대권을 포기한 것도, 이 지역에서는 도청 이전에 따른 민심이반이 한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또한 지난 4일 치러진 민주당 광주시장 및 전남지사 경선에서 현직 고재유 시장과 허경만 지사가 모두 낙선되는 이변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목포 민심도 '탈DJ'**
광주 민심의 반발을 무릅쓰면서까지 목포를 배려한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정작 목포의 민심도 그리 호의적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1일 치러진 민주당 전남 목포시장 경선에서 전태홍 목포상공회의소 소장이 김대중 대통령의 장남 김홍일 의원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김흥래 전 행자부 차관을 물리친 것은 최근 목포의 민심을 잘 보여준 사례로 꼽힌다 .
목포는 김대중 대통령과 여권실세였던 권노갑 전 고문의 고향이라는 상징적 의미가 크다. 게다가 김흥래 후보는 불공정시비가 일 정도로 홍일씨로부터 유·무형의 지원과 공개적인 지지표명까지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목포지구당 위원장인 김홍일 의원은 지난해 12월 김전차관이 출마를 선언하자 "전남도청이전 및 무안반도통합 등 과제가 산적한 상황에서 정부부처의 도움도 필요한데 중앙정부 경험이 있는 김전차관 정도면 괜찮겠다"며 사실상 지지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태홍 후보에게 패한 것은 지역정서를 무시한 당 실세의 오판이 부른 결과라는 것이 현지여론의 분석이다. 특히 김홍일 의원의 '제왕적 태도'가 이런 지역 반발을 심화시킨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반DJ나 반민주당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탈DJ' 분위기는 있으며 이는 '노풍'의 배경이기도 하다는 분석이다.
김대중대통령이 퇴임후 일하려던 아태재단이 최근 비리 의혹에 휘말리면서 지난달 사실상 폐쇄됐다. 신안군 일대 섬들을 이으려던 연도교 공사도 그 실체가 드러남으로써 사실상 실현가능성은 전무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시대착오적 계획이 어떻게 그동안 수면 밑에서나마 추진될 수 있었는가이다.
이런 발상은 애당초 '애향심'과 무관한 것이다. 고향의 믿음을 배반하고, 고향에 누를 끼치는 권력의 탐욕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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