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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태재단, 문은 닫았으나 '인맥'은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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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아태재단, 문은 닫았으나 '인맥'은 살아있다

아태인맥 요직에서 활동중, DJ 아태재단서 탈퇴해야

김대중대통령 차남 김홍업씨가 최고책임자인 부이사장으로 있는 아태평화재단이 18일 잠정폐쇄됐다.

아태재단은 17일 김홍업 부이사장 및 재단 주요 간부들이 최근 사태와 관련된 대책을 논의한 결과 김대통령 퇴임때까지 잠정적으로 폐쇄하기로 결정했으며, 18일 이사회를 열어 이를 공식결정했다. 재단은 한두명의 관리직원만 남기고 모든 공식일정을 중단키로 했다.

***아태재단과 권노갑 사무실, 동시 폐쇄의 역사적 의미**

아태재단의 급작스런 폐쇄 결정은 최근 '3홍 비리'로 아태재단을 바라보는 여론의 시선이 따가운 데다가, 이명재 검찰이 김홍업 비리를 조사하며 아태재단을 옥조여 오는 데 따른 대응책으로 해석되고 있다. 아태재단은 이수동 상임이사 구속에 이어 홍업씨 친구인 김성환씨의 2백억원대 차명계좌를 둘러싸고 의혹이 계속 증폭돼왔기 때문이다.

아태재단의 잠정폐쇄 결정은 이날 동교동계 구파 대부격인 권노갑 고문이 마포당 사무실을 폐쇄하고 외유를 떠나기로 한 대목과도 깊은 연관이 있어 보인다. 권고문 역시 최근 '최규선 게이트'가 터지면서 권고문 사위 이름이 흘러나오는 등 점차 비리의혹의 소용돌이에 휘말려드는 위기에 봉착했었기 때문이다.

김대중대통령의 양대 권력축이라 불리던 아태재단과 동교동계의 사무실 폐쇄. 이는 여론의 따가운 눈총을 피하기 위한 일시적 고육책 성격이 짙으나, 한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음을 알리는 의미있는 신호이기도 하다.

***아태재단은 시작부터가 정치집단이었다**

아태재단(http://ns.kdjpf.or.kr)은 외형상 학술단체다. 그러나 여느 학술단체와'격'이 다르다. 현직 대통령이 재임기간중 깊숙이 관계한 단체이기 때문이다.

아태재단은 지난 94년 1월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 ▲한반도와 아시아의 민주 발전, 공동 번영 그리고 안전 보장 ▲세계의 평화와 협력 등에 대한 이론과 정책의 연구 개발을 설립 목적으로 내걸고 출범했다. 아태재단의 김대중 초대이사장은 재단 개막식에서 땅을 팔아 재단 설립을 도와준 부인 이희호여사에게 거듭 감사를 표시하며 "비로소 1년여만에 실업자 신세를 면하게 됐다"고 조크를 던지기도 했다.

김이사장의 말은 그러나 단순한 조크가 아니었다. 실제로 아태재단은 92년 대선에서 김영삼후보에게 패한 뒤 정계은퇴 선언을 했던 김대통령의 정치복귀 토대로 만들어진 단체였기 때문이다. 김이사장은 아태재단을 발판으로 국내정착에 성공했고, 95년에는 국민회의를 만들어 정치일선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아태재단은 이 과정에서 김대중 이사장의 정치 사조직 역할을 톡톡히 했고, 지난 97년 대선과정에는 김대통령의 선거캠프이자 싱크탱크로서 맹위를 떨쳤다.
정치권에서는 아태재단을 동교동계와 함께 김대통령의 양대 권력축으로 지목했다.

아태재단은 김대중 대통령이 대통령으로 당선되기 전까지 4년1개월동안 이사장 직을 맡았고, 지금은 차남 김홍업씨가 부이사장으로 사실상의 이사장 일을 보고 있다. 이사장 자리는 김대통령 당선후 이문영(경기대 석좌교수), 오기평(세종재단 이사장) 등이 맡다가 2000년 11월 오기평 이사장의 사임이후 김대통령 퇴임후를 대비해 지금까지 공석으로 비워놓은 상태다.

아태재단은 영어명칭을 'The Kim Dae-jung Peace Foundation'으로 정했을 만큼 김대통령의 분신이라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아태재단은 지난 94년 설립 당시부터 세간의 큰 관심을 모았고, 특히 김대중정부 출범후인 98년부터는 관심이 한층 커졌다.
이사장이 공석인 재단에서 가장 높은 자리인 부이사장에는 차남을 앉히고 동교동 집사 출신인 이수동씨를 상임감사에 앉히는 등 내로라하는 대통령 일가와 현직 장관, 민주당 의원들이 이곳에 관계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태재단이 결코 단순한 학술단체가 아님을 보여주는 대목들이다.

***아태재단 사람들**

김대통령 당선후 당연히 '아태재단 사람들'은 최우선적으로 중용됐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김대중대통령 지근거리에서 국정요직을 맡고 있다. 비록 아태재단은 눈물을 머금고 문을 닫았으나, 아태재단 인맥은 그대로 살아있는 셈이다.

얼마전 대통령특사 자격으로 평양을 갔다오는 등 현재 남북대화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임동원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는 아태재단 사무총장 출신이다.

최근 김홍걸 비리에 연루돼 구속된 최규선 미래도시환경 대표가 구속전에 구명성 전화를 걸었다고 해서 구설수에 오른 신건 국정원장은 아태재단 서울지부장을 지냈다.

사실상 민주당의 대통령후보로 확정된 노무현 후보의 핵심측근인 천정배 민주당의원은 현재 아태재단 감사이다. 천의원은 노후보가 고립무원의 처지에 있을 때부터 홀로 노후보를 지지했으며, 오늘날의 노후보가 있기까지 가장 큰 공을 세운 측근중 측근이다.

청와대 수석을 지내던 남궁진 현 문화관광부 장관도 아태재단 출신이다.

DJ정부 출범초기 안기부(국정원의 전신) 1차장을 지낸 나종일 영국대사와, 김상우 국제안보대사 등도 아태재단 연구원 출신이다. 민주당의 이강래, 최재승, 설훈, 정동채 의원도 아태재단 출신이다. 최재승 의원은 현재 아태재단 후원회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이밖에 한상진 정신문화연구원장, 박태영 전 산자부장관, 이문영 경기대 석좌교수, 오기평 세종연구소 이사장, 김삼웅 전 대한매일신문 주필, 백경남 전 여성특위위원장, 박금옥 청와대 총무비서관, 장성민 전 의원, 이동진 전 의원, 오유방 전 의원 등도 아태 출신이다.

한 때 빛을 발하다가 지금은 뒤안길로 밀려난 이들도 적잖다.

그런 대표적 예가 민주당 대선후보에 도전했다가 현재는 수뢰혐의로 옥중에 있는 유종근 전북지사이다. 그 역시 아태재단 출신으로, 이곳에서 사귀게 된 현재부인과 결혼을 하기까지 했다.
환경부장관에 임명된 직후 모스크바 공연 촌지 스캔들에 휘말려 낙마한 연극인 손숙씨도 아태재단 멤버다.

***권력의 크기에 비례해 커진 아태재단의 부패**

절대권력은 절대부패하는 법이다.
김대통령의 양대권력축 가운데 하나로 지목돼온 아태재단에는 오래 전부터 많은 이들이 들끓었다.

뒤구린 자금문제와 관련해 아태재단 이름이 가장 먼저 드러난 것은 지방자치선거가 처음 실시되던 지난 95년의 일이다.

95년 9월 서울지검 공안1부는 서울시의회 김기영 부의장 등 2명을 제3자 뇌물요구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검찰은 입건 사유를 "교육위원 후보 50명 중 32%인 16명이 교육위원 선출 직전에 아태재단 후원회에 본인 또는 배우자 명의로 10만∼1천만 원을 내고 가입한 사실이 확인됐다"며 "교육위원 후보들이 8월21일 선출을 앞두고 7월21∼8월18일 사이에 집중적으로 가입했으며 후원회 납부 총액은 6천10만원"이라고 발표했다.

DJ정부 출범이후에도 아태재단을 둘러싼 비리의혹은 계속됐다.

99년 5월 광주지검 특수부가 아태재단 후원회 중앙위원이었던 김영래씨를 사기혐의로 구속했다. 그가 전남 장흥군청의 김모과장에게 "국민회의 장흥군수 후보로 공천받게 해주겠다"며 3천만원을 받은 혐의였다.
99년 7월에는 경기은행 퇴출을 막아주겠다며 경기은행으로부터 1억원을 받은 혐의로 이영우 아태재단 미주지부의 전 이사가 인천지검에 구속됐다.

권력누수가 시작된 지난해부터는 아태재단의 거물들이 본격적으로 법망에 걸려들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에는 아태재단 후원회 사무처장이었던 황용배 마사회이사가 구속됐다. 구속사유는 지난해 6월 주가조작 혐의가 드러난 코스닥 등록업체 S상사로부터 사건 무마를 해주겠다며 3차례에 걸쳐 진승현씨로부터 2억5천만원을 받은 혐의였다. 96년 후원회 사무처장을 맡았던 황씨는 김 대통령 취임 후인 98년 아태재단과 공식적인 관계를 정리했지만 99년 옷로비의혹 사건 수사 당시 신동아그룹 최순영 회장 부인 이형자씨에게서 남편 구명요청을 받고 이희호 여사에게 선처를 부탁할 만큼 대통령 일가와 친분이 두터운 인물이다.
아태재단을 떠난 후 마사회 상임감사를 거쳐 문화관광부 산하 모 골프장 사장을 지낸 황씨는 대통령 가족과 서울 C 교회를 같이 다닌 인연으로 70년대부터 대통령 가족들의 비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태재단 비리의혹을 결정적으로 증폭시킨 인물은 이수동 상임고문이었다.
이수동 아태재단 상임이사는 현재 금감원 조사를 무마해 달라는 청탁과 함께 이용호씨로부터 5천만원을 받은 알선수뢰 혐의로 검찰에 구속돼 수사를 받고 있다.

부이사장인 김홍업씨가 일주일 한번만 아태재단에 나오는 까닭에 사실상 아태재단 살림을 도맡아온 이수동 상임고문은 뇌물을 받은 것외에 한국전자복권의 제주도 인터넷 관광복권 독점을 위해 우근민 제주도지사에게 전화를 거는가 하면, 수사 과정에 그의 방에서 언론대책 관련문건, 군 인사 관련문건 등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와 아태재산이 사실상 막후에서 국정을 농단한 게 아니냐는 강한 의혹도 받고 있다.

김대웅 광주고검장이 이수동 이사에게 "형님은 괜찮소?"라며 수사기밀을 누출시켰다는 혐의로 소환을 앞두고 있는 등 시간이 흐를수록 아태재단 비리 의혹은 증폭되고 있다.
아태재단이 18일 서둘러 문을 닫기로 한 것도 이런 급박한 상황전개 때문인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대통령, 아태재단에서 탈퇴해야**

아태재단은 18일 문을 닫으면서 내년에 김대통령이 퇴임하면 다시 문을 열겠다고 했다. 김대통령 퇴임후 이 재단을 세계적 수준의 학술단체로 키우겠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 발언은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는 게 지배적 여론이다.

아태재단은 이미 학술단체로서의 '권위'를 상실한 집단이다. 정치권력의 중심축 역할을 해왔으며, 부패 혐의에 깊게 연루된 집단이 어떻게 순수 학술단체로서 다시 태어날 수 있단 말인가.

더욱 지금 아태재단은 검찰 수사대상이다.
이때 김대통령이 도와줄 수 있는 일은 단 하나다. 아태재단에서 탈퇴하는 것이다. 이명재 검찰이 느끼고 있을 무형의 짐을 덜어줘야 할 의무가 김대통령에게 있기 때문이다.

성역없는 수사를 보장하기 위해서라도 김대통령이 내려야 할 시급한 결정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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