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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심재판부는 김지은에 '피해자다움'을 요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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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심재판부는 김지은에 '피해자다움'을 요구하지 않았다

피해자 진술 신빙성 인정하고 '위력' 폭넓게 해석...'성인지 감수성' 강조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결국 '성폭력 가해자' 선고를 받고 법정구속됐다. 2심 재판부는 피해자 김지은 씨 진술의 신빙성을 받아들여 안 전 지사의 '위력에 의한 간음'을 인정했다. "담배를 문 앞에 뒀으면 간음은 없었을 것"이라며 피해자 탓을 하던 1심과 달리 '성인지 감수성'을 적극 반영한 판결이라는 평이 나온다.

서울고법 형사12부(홍동기 부장판사)는 1일 피감독자 간음,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강제추행 등의 혐의로 기소된 안 전 지사에게 징역 3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에서 구속했다. 4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와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에 5년간 취업제한도 명령했다.

재판부는 안 전 지사가 저지른 10차례의 성폭행 범행 가운데 단 한 번을 제외하고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하고 '위력'에 대해 폭넓게 해석하면서 1심과 180도 다른 판결을 내놓았다.

재판부는 선고 초반, 판결 취지문을 낭독하는 가운데 "성폭행, 성희롱 사건을 심리할 때는 양성 평등, 성인지 감수성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우리 사회의 가해자 중심적인 문화와 인식, 구조 등으로 인해 피해자가 성희롱 사실을 알리고 문제를 삼는 과정에서 오히려 부정적 반응이나 여론, 불이익한 처우 또는 그로 인한 정신적 피해 등에 노출되는 피해를 입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성범죄 사건에서 피해자의 진술이 사소한 부분에서 다소 일관성이 없거나 최초 진술이 다소 불명확하게 바뀌었다 해도 그 진정성을 함부로 배척해선 안 된다고 했다.

▲2심 선고공판에 출석하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 ⓒ연합뉴스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는 주장에 대해서도 "정형화한 피해자 반응만 정상적인 태도로 보는 편협적 관점"이라며 "피해사실에 대한 김 씨 진술의 신빙성이 인정된다"고 거듭 밝혔다.

앞서 안 전 지사의 변호인들은 김 씨가 피해를 당한 이후 동료들에게 장난을 치는 내용의 문자를 보내고, 안 전 지사에게도 이모티콘을 사용했다며 김 씨가 '피해자답지 않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평소 피해자가 문자를 이용하던 어투나 표현, 젊은이들이 이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점 등을 고려하면 특별히 동료나 피고인에게 친근감을 표시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1심 재판부가 인정하지 않은 '위력'의 범위도 폭넓게 받아들였다. "김 씨가 신분관계상 안 전 지의 지시에 순종하고 내부적 사정을 드러낼 수 없는 점을 이용해 범죄를 저질러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는 것이다.

10번의 간음 혐의에 대해 "안 전 지사는 수행비서 김씨의 의사에 반해 4차례 간음하고 1차례 추행했고 또 4차례 걸쳐 강제추행을 했다"고 판단 내렸다. 2017년 8월 안 지사 집무실에서의 강제추행 혐의만 제외된 것이다.

재판부는 안 전 지사에 대해 "범행기간이 상당하고 (범행이) 반복적으로 이뤄진 점 등을 볼 때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고 비판했다.

이어 "피해자는 성폭력을 호소하고 얼굴과 실명을 드러내 생방송 뉴스를 하는 극단적 선택을 했는데, 매우 극심한 충격과 고통을 겪은 것으로 보이고 이후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도 근거 없는 내용이 유포돼 추가 피해를 입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은 도의적, 정치적, 사회적 책임은 있지만 법적 책임은 이유 없다며 범행을 부인하고 그로 인해 피해자가 당심까지 출석해 피해사실을 회상하고 진술해야 했다"고 했다.

1심 재판부인 서울서부지법 형사11부(재판장 조병구 부장판사)는 지난해 8월 안 전 지사가 김 씨의 자유의사를 제압할 위력을 지녔음을 인정하면서도, 그 권력을 남용하지는 않았다고 판결한 바 있다.

당시 재판부는 안 전 지사에 대해 "권위적이거나 관료적이지 않고 참모진과 소통하는 정치인"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안 전 지사가 차에 탈 때 김 씨를 조수석이 아니라 자신의 옆 좌석에 앉게 하거나 모든 일정에 함께하라고 지시한 데 대해서 "업무를 원활히 하거나, 김 씨의 위상을 격상한 조치의 일환"이라고 봤다.

반면 김 씨에 대해서 "김 씨가 업무 초기에도 안 전 지사의 객실 방문 앞에 물건을 두고 오는 경우가 있었다"며 "담배를 안 전 지사 방문 앞에 두고 문자메시지를 보내기만 했어도 담배를 가져다주는 업무는 지시대로 수행하되, 간음에는 이르지 않을 수 있었을 것으로 보임에도 그리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피해자 잘못이라는 논리다.

2심 재판부는 그러나 이를 모두 뒤집고 '피해자 중심주의'에 입각해 판결을 내렸다.
▲안 전 지사의 유죄를 주장하는 시민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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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어리

매일 어리버리, 좌충우돌 성장기를 쓰는 씩씩한 기자입니다. 간첩 조작 사건의 유우성, 일본군 ‘위안부’ 여성, 외주 업체 PD, 소방 공무원, 세월호 유가족 등 다양한 취재원들과의 만남 속에서 저는 오늘도 좋은 기자,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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