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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의 최대뇌관, 한국전자복권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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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여권의 최대뇌관, 한국전자복권 의혹

김현성·우근민·이수동·이용호·모 실세 등 줄줄이 연결

한국전자복권(주)이 마침내 정-경 유착의 핵심 폭풍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전자복권은 인터넷상으로 복권을 대신 팔아주는 일개 벤처기업에 불과하다.
그러나 아태재단과 이용호를 연결해준 중심고리이자, 아직 그 실체를 드러내지 않은 여권 핵심인사와의 유착설 등으로 인해 한국전자복권은 언젠가는 터질 최대 시한폭탄으로 주목 받아왔다.

마침내 그 시한폭탄의 시침이 똑딱거리기 시작했다.

***이수동 아태재단이사와 우근민 제주도지사 커넥션**

이용호 게이트를 수사중인 차정일 특별검사는 지난 9일 수사 중간상황을 발표하며 문제의 한국전자복권과 관련,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아태재단의 이수동씨는 한국전자복권 김현성 사장으로부터 제주도 발행 복권의 판매권을 알아봐 달라는 부탁을 받고 제주지사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진술을 했다.
특검은 그러나 이 사건이 수사 범위를 벗어나는 사안으로 판단, 검찰에 통보할 방침이다."

차검사의 이날 한국전자복권 관련 언급은 짤막했으나, 새로운 '연결고리'를 밝혀냈다는 점에서 그안에 담겨진 의미는 크다.
민주당의 우근민 제주도지사가 한국전자복권, 더 나아가 아태재단과 관련이 있음을 최초로 밝혔기 때문이다. 우지사는 최근 성추행 사건으로 도마위에 오른 문제의 인물이기도 하다.

우지사측은 이같은 혐의에 대해 "정당한 절차를 거쳐 사업자를 선정한 것"이라며 정경유착 가능성을 강력부인하고 있다.

앞으로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 해명의 진위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일이나,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생긴다.
현재 아태재단을 정조준하고 있는 특검이 왜 직접 수사를 할 것도 아니면서 우근민 제주지사의 이름을 끄집어 냈는가이다.

여기에 한국전자복권 미스테리의 단초가 있다.

***김현성 누이가 아태재단 후원회원**

한국전자복권은 99년 4월 벤처붐을 타고 설립된 전형적 인터넷기업이다.
그러나 이 회사는 다른 인터넷기업들과 달랐다. 확실한 '수익모델'을 잡고 출발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인터넷상의 복권판매 대행이었다.

복권시장은 당시 연간매출규모만 5천억원대에 달하던 황금시장이었다. 특히 IMF사태후 정부부처나 공기업, 지방자치단체들이 재정수익을 끌어올리기 위해 너도나도 복권사업에 뛰어들면서 시장규모가 비약적으로 커지고 있는 '성장산업'이기도 했다.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인터넷상에서 복권을 사 당첨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인터넷 복권판매대행이 유망사업으로 각광받았다.
기술력 여부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관건은 정부부처나 공기업, 지방자치단체 등 복권발행 주체들에 대한 '로비력'이었다.

한국전자복권 창립자이자 초대사장이던 김현성(35)은 로비와 관련, 강력한 동아줄을 쥐고 있었다.
김사장은 전남 영광 출신이나 나이가 젊어 직접 정치권과 줄이 닿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의 친누이가 아태재단의 후원회 회원으로 문제의 이수동씨 등 정치실세들과 친분이 두터웠다.

김사장은 누나 소개로 당시 아태재단 이사이던 이수동을 만나 지방자치단체의 복권 판매대행을 따낼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간청했다.
특검이 확보한 이수동의 진술에서도 알 수 있듯, 이수동은 우근민 제주지사에게 전화를 걸어 제주도가 발행하는 복권의 판매권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정치실세가 건 전화의 약효는 대단했다.
한국전자복권은 창립 두달 뒤인 99년 6월 제주도와 제주도 관광복권 판매대행 계약을 체결했다.
한국전자복권은 그후 제주도가 세차례 발행한 슈퍼밀레니엄 관광복권 판매대행을 독점하는 등 제주도 복권시장을 독식하며 본원적 부, 즉 시쳇말로 종잣돈을 축적하는 데 성공했다.

한국전자복권은 그해 9월21일부터 10월말까지 열린 경기 하남시 국제환경 엑스포 99의 관광복권 독점판매권을 따내기도 했다.

***지방자치단체와 공단 등 집중 공략**

2000년 들어서는 본격적으로 세를 확장해 나갔다.
그해 2월 한국전자복권은 전국 7개 체신청, 전국편의점, 홍익회, 수협중앙회 등과 슈퍼밀레니엄 관광복권 판매사업 계약을 체결하는 등 영업을 본격개시했다.

이어 5월 벤처기업 인증을 받은 데 이어, 그달 중순 높은 배율로 26억원의 증자에도 성공했다. 당시 코스닥주가가 급락하던 시점이라는 대목을 고려하면 대단히 성공적인 증자였다.
김현성 사장은 이 과정에 전체 주식의 25%를 보유해 최대주주자리를 유지했으며, 일설에 따르면 차명주식까지 합할 경우 전체주식의 45%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한나라당 이주영의원 주장).
또다른 일각에서는 이 과정에 여권실세 부인 등 상당수 인사들이 주식을 보유하게 됐다는 설이 나돌고 있기도 하다.

2000년말 한국전자복권은 전국 16개 광역단체가 연합해 만든 이벤트성 '슈퍼코리아 자치복권'을 판매, 세간의 비상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 복권은 1등에게 10억원을 주는 것외에 3등 1백명에게도 각각 1억원씩을 주기로 당첨구조를 설계, 1억원이상 당첨률을 사상최대로 끌어올림으로써 사행심 조장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이 복권을 발행한 광역단체들은 1백억원의 수익금을 가볍게 챙기는 데 성공했다.

2001년 5월에는 국내최초로 구입 즉시 당첨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인터넷 즉석복권을 발행, '올해의 히트상품'에 선정되기도 했다.

2001년 12월말에는 근로복지공단과 인터넷 즉석복권 판매계약을 체결했다.
연말까지 우선 1천2백만장의 복권을 발행하고 2002년에도 추가 발매해 연간 1백억원의 기금을 조성한다는 계획에 따른 것이었다.

***경마중계권과 리빙 TV**

김현성 사장은 '돈맥'을 찾는 데 귀재였다.
그는 전자복권 사업을 키우는 것과 별도로, 99년 중반부터 또다른 사행사업인 경마에도 손을 대기 시작했다.

김사장의 경마사업 진출은 이 무렵 한명의 파트너를 만나면서 시작됐다. 그의 고향선배인 이용호 삼애인더스트리 사장이었다.
이용호는 김현성에게 리빙 TV 인수를 제안했다. 리빙 TV는 당시 교통안전공단 산하 케이블 TV로, 만성적 누적적자로 구조조정 대상이 된 물건이었다. 이용호는 자신이 최대주주인던 KEP전자를 통해 99년 12월 리빙TV 지분 100%를 88억원에 인수했다.
이 과정에 한국전자복권은 리빙 TV와 홍보관련 업무 제휴를 맺었다.

리빙TV는 당시 뚜렷한 수익모델이 없던 별볼 일 없는 매체였다. 이용호는 그러나 처음부터 '경마중계권'에 주목하고 있었다. 경마는 연간 매출액이 3조원에 달할만큼 엄청난 이권사업이었다.
이것만 따올 수 있다면 리빙 TV는 하루아침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변신할 수 있었다.
이용호는 처음부터 경마중계권에 주목, 김현성을 파트너로 끌어들인 것이다.

경마중계권을 따오기 위해선 한국마사회, 그리고 한국마사회를 관할하는 문화관광부를 공략해야 했다.
이용호로서는 벅찬 일이었다.
이때 결정적 역할을 한 이가 김현성이다. 이용호는 99년 하반기에 김현성을 통해 아태재단의 실력자인 이수동이사와 만날 수 있었다. 이용호는 이수동에게 리빙 TV 인수를 부탁한 것으로, 최근 특검조사 결과 밝혀졌다.

2001년 1월 리빙 TV는 한국마사회(윤영호 회장)에서 경마중계권을 따내는 데 성공했다. 그것도 단 십원도 내지 않고 '무상'으로 말이다.
이를 두고 당시 경마업계에서는 뒷말이 많았다. 특히 경마업계에서는 리빙 TV의 경마중계권 인수 직전에 서생현 마사회장이 불과 취임 10개월말에 전격해임된 대목에 주목했다. 서생현 회장은 마사회에 오기 전 광업공사사장 시절부터 청렴한 사생활과 강도높은 구조조정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고, 마사회에 와서도 마찬가지로 원리원칙에 입각한 구조조정을 단행하던 중이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구조조정 부진'이라는 엉뚱한 이유로 낙마시켰다.

그리고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는 격으로, 두달 뒤 리빙 TV가 무상으로 경마중계권을 따냈다.
경마계에는 당연히 서생현 회장 해고를 이와 연관지어 해석하는 시각이 무성했다.
이같은 의혹에 대해 후임 윤영호 마사회장은 "이사회를 거쳐 적법하게 결정했고 이용호로부터 청탁은 물론 다른 기관에서 중계권 제공과 관련한 압력을 받은 적이 없다"고 해명했으나 의혹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리빙 TV 인수와 경마중계권 획득을 통해 이용호와 김현성은 거액을 벌 수 있었다.
이용호는 리빙 TV 인수 반년뒤인 2000년 5월 지분 50%를 되팔면서 70억원의 시세차익을 남겼다. 시세차익 가운데 김현성에게 얼마가 돌아갔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으나, 김현성이 지분 매각 이전에 수시로 2억~5억원씩을 이용호에게 빌려준 점을 볼 때 상당한 몫을 챙긴 것으로 특검은 추정하고 있다.

주식을 사들인 회사는 로케트전기로, 로케트전기의 윤모전무는 지분 인수후 경마중계권 획득을 위해 거액을 로비자금으로 뿌렸다는 혐의로 수배중이다.

***여권실세와 한국전자복권**

이렇게 잘 나가던 김현성은 그러나 2000년말 결정적 좌절을 경험한다.
한국전자복권이 사활을 걸고 추진하던 축구복표 사업권 획득 경쟁에서 타이거풀스에게 패한 것이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이 발행하는 축구복표는 월드컵대회가 열리는 2002년 매출액이 4천5백46억원, 2005년에는 5천6백75억원이 되리라고 추산(한국기업평가 컨설팅자료)될 정도로 엄청난 이권사업이었다. 이 사업권만 따내면 한국전자복권은 한순간에 황금거위로 변신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00년 12월 체육계,학계,법조계 전문가 26명으로 구성된 선정위원회는 한국타이거풀스 91만7천60점, 한국전자복권 87만7천3백14점으로 타이거풀스의 손을 들어주었다.
김현성의 참담한 패배였다.

이때부터 김현성과 그의 뒤를 봐주던 정치권등과의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1년 중반 들어 이용호 게이트가 터지면서 그해 7월 김현성은 중국으로 급히 도망갔다. 수사망이 그에게로 압축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 많은 잡음이 세간에 흘러나왔다.
한나라당의 김용균 의원은 20001년 10월18일 대정부질문에서 세간의 의혹을 전하며 진상공개를 촉구했다.

"노다지 사업으로 알려진 한국전자복권의 김현성 전 사장은 회사돈 80억원을 유용해 이용호와 함께 주가조작에 가담해 수십억원을 챙겨 사장자리에서 쫓겨났다고 하나, 실제 이유는 청와대 모 실세와의 갈등 때문이다.
이수동 아태재단 상임이사를 연결시켜준 바 있는 김현성 전사장은 살아남기 위해 대화내용을 녹취해 협박도 해보다 쫓겨났는데, 이같은 청와대 개입사실은 한국전자복권의 7월 당시 이사회 회의록에 기록돼 있다.
이사회 회의록을 공개한 뒤 사건의 진상을 밝혀라."

차정일 특검은 현재 김현성을 공개수배한 상태다.
특검은 김현성만 잡아들이면 이용호 게이트의 전모를 고구마 뿌리 뽑듯이 확실히 규명할 수 있을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35살의 젊은 기업인 김현성, 그가 향후 정국을 뒤흔들 최대 시한폭탄으로 거명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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