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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테이너' 속으로 들어가는 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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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테이너' 속으로 들어가는 학자들

[시민정치시평] '시민과 함께 하는 연구자의 집' 출범

지난 2019년 1월 26일 토요일, '시민과 함께 하는 연구자의 집' 창립총회가 서울 공덕역 1번출구 옆 경의선 공유지 기린캐슬에서 50여 명의 참여 속에 열렸다.

연구자의 집 창립총회에는 이전 학술 관련 행사와는 달리 다양한 주체들이 참가했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학술단체협의회'(학단협)와 같이 1987년 민주화 이후 전개된 진보적 학술운동 1세대는 물론, 대학 소속 비정규직 연구자 그리고 '전국대학원생 노동조합', '독립연구자 네트워크' 등에 참여하는 젊은 세대 독립 연구자들이 함께 모였다.

▲연구자의 집 창립 총회 모습. ⓒ연구자의 집

연구자의 집은 인간성 상실의 위기사회에서 무너진 진리와 정의를 다시 세우려는 새로운 학술운동의 '거점이자 운동'이다. 총회 참가자들은 ‘위험의 외주화’를 넘어 ‘위기 사회'를 시민들이 이겨내는 데 힘을 보태기 위해, 나아가 연구자들 스스로 더이상 자본의 이윤추구와 학문 영리화에 강요받지 않고 진리를 탐구하는 연구 안전망을 키우고자 '연구자의 집' 운동을 선언했다.

연구공간, 사무실, 세미나 및 강연 공간을 담은 '거점'으로서의 연구자의 집은 오는 3월부터 경의선 공유지에서 공사를 시작해서, 오는 5월 개관을 목표로 추진 중이다.

최초 연구자의 집 구상은 2000년대 초 학단협과 민교협에 의해서 시작했다. 당시 구상은 그야말로 공간 건축물로서의 연구자의 집이었다. 주 사용자 또한 퇴직 교수들을 비롯한 정규직 교수들이었고, 비정규 연구자들에게 일부 공간을 나누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런 구상이 결코 연구와 대학의 위기에 대한 해법이 될 수 없음을 알게 된 이들은 연구자의 집이 건축물이 아닌 약자들이 스스로의 존엄성과 권리를 지키기 위해 거대한 권력과 싸우는 운동의 또 하나의 거점이자 운동 그 자체이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책상을 나와 현장에 서 있을 때 연구는 권력에 맞서고 약자를 지키면서 진리를 탐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후 이들은 거점이 될 수 있는 현장을 찾아다녔고, 노동자, 철거민, 도시 빈민, 다양한 사회적 약자들을 만나면서 책상 앞 연구만으로는 알 수 없는 삶의 모습, 존엄을 위한 오래된 미래를 배웠으며, 대학과 학위의 특권을 내려놓을 때 진리와 정의, 그리고 자유 앞에 한 발 더 나갈 수 있음을 반성하게 되었다. 또한 새로운 학술운동은 특출한 지식인 몇 명이 아니라, 연구자, 활동가, 시민의 경계를 넘어 만들어 가는 집단지성 그리고 청년세대와의 교감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성찰 속에서 민교협과 학단협은 공공기관과 기업이 시민의 공유지를 사유화하려는 경의선 공유지를 연구자의 집 첫 번째 거점으로 선택했다. 그리고 대학원생노조와 독립 연구자 네트워크를 비롯하여 청년세대 연구자들과 함께 논의하면서 연구자의 집 구상을 확정했다. 창립총회를 통해 구성된 연구자의 집 운영위원회 또한 다양한 연구 집단과 세대, 성비를 고려한 열린 책임단위로 탄생할 예정이다.

연구자의 집은 약자들의 현장으로 들어가기 위해 컨테이너 8개를 활용한 '유목형 건물'을 지을 예정이다. 연구자들이 더 이상 '남산골 샌님'이 아니라 현장에 서 있기 위해선 컨테이너와 같은 '유목형 건물'이 제격이다. 건축예산 1억5000만 원은 민교협 소속 교수들과 연구자의 집 운동 참가 연구자들, 그리고 시민들의 기부와 후원을 통해서 마련되고 있고, 현재 7000만 원 정도가 모였다.

▲연구자의 집 예상도. ⓒ연구자의 집

앞서 언급한 것처럼, 연구자의 집이 첫 번째 거점을 경의선 공유지로 정해진 이유는 이 장소가 공공이 영리를 추구하면서 시민들의 도시권을 무시한 채 기업에게 개발과 이익환수를 맞긴 '개발 현장'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재 경의선 공유지는 서울의 여러 지역에서 약자들의 생존권을 무시한 도시개발로 인해 쫓겨난 시민들(아현 포차 노점상, 청계천 상인, 철거 지역 세입자 등)이 존엄성과 기본권의 회복을 위해 버티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투기적 도시개발 반대, 사회적 약자 보호, 그리고 대안 사회 연구의 첫 거점으로 경의선 공유지의 의의가 크다. 반면 권력과 권리가 부딪히는 현장이기 때문에 연구자의 집 또한 개발논리에 따라 철거의 위협이 언제나 뒤따르고 있다.

▲경의선 공유지. ⓒ연구자의 집

무엇인가에 질문을 던지고 탐구하는 자유와 용기는 언제나 약자의 편에서 세상을 보다 정의롭게 만들었고, 인간이 괴물이 되는 것을 막는 힘이었다. 그 무엇인가가 탐욕스런 권력이나 자본일 때는 탐구와 외침을 위한 더 큰 용기가 필요했고, 그만큼 희생과 고립감도 컸다. 하지만 그 질문과 외침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 '자유'와 '존엄'이란 단어를 모른 채 살아갔을 것이다.

연구자의 집은 권력과 자본을 향해 '왜'라는 질문을 더 크게, 더 많이 그리고 더 젊게 약자의 편에서 외치기 위해 스스로의 공동자원(커먼즈 commons)를 만드려고 한다. 단지 연구를 위한 공유 공간만이 아니라, 논문 등 연구자료 공유를 위한 플랫폼 구축, 연구 경력 단절을 최소화하기 위한 거주 지역과 연계한 공동 육아 공간 마련, 그리고 연구자들의 상호부조를 통한 연구 안전망 구축 사업을 해 나갈 예정이다. 이러한 연구자들 스스로가 만든 공동자원은 정권이 변질되더라도 연구자들이 더 이상 각자도생을 위해 진리가 아닌 영리에 타협하는 삶을 강요받지 않고 약자의 편에서 권력을 비판하는 자유로운 탐구의 든든한 기반이 될 것이다.

* 연구자의 집에 관한 궁금한 점은 이메일 주소 scholarscommons.korea@gmail.com을 통해 문의하거나, 블로그 blog.naver.com/scholarscommons에 들어와 볼 수 있다. 또한 다음 후원계좌를 통해서 유목형 연구자의 집 건축을 위한 기부 및 후원이 가능하다.
(하나은행 223-890026-85104 예금주: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 협의회)

*이승원 센터장은 현재 서울대학교 아시아 연구소 아시아 도시센터 선임연구원으로도 일하고 있습니다.


시민정치시평은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 기획,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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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사회연구소는 참여연대 부설 연구기관으로, 참여민주사회 모델 개발, 대안 정책의 생산과 공론화를 위해 활동합니다. 시민정치시평은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기획·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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