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조지 W.부시 대통령에게는 유럽에 '친구국가' 세곳이 있다.
영국과 이탈리아, 그리고 스페인이다. 유럽 외교가에서는 이들 3개국을 '부시의 3각축'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이들 3각축 가운데 부시의 가장 확실한 친구는 누가 뭐라해도 영국의 토니 블레어총리다.
블레어총리는 아프간전쟁때도 미국과 단 둘이서 영국이 공격에 동참하도록 하는등 부시를 적극 밀어주었다. 부시 입장에서 보면 업어주고 싶은 친구일 게 틀림없다.
두사람 사이에는 이밖에 또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정경유착 스캔들'이 그것이다.
부시는 지금 '엔론게이트'로 궁지에 몰려있다. 블레어는 지금 '철강게이트', 영국언론 표현을 빌면 '쓰레기게이트'로 궁지에 몰려있다.
부시와 블레어는 여러모로 '닮은 꼴'인 셈이다.
***'쓰레기게이트'에 휘말린 블레어 영국총리**
토니 블레어 총리(49)가 이른바 '철강게이트'에 휘말려 지난해 6월 재집권에 성공한 이후 최대의 정치위기를 맞고 있다.
철강게이트란 특정기업인의 외국철강업체 인수를 돕기 위해 상대방 국가원수에게 블레어총리가 자신의 명의로 편지를 보낸 것이 정경유착 의혹으로 비화된 것이다.
블레어측은 당초 이는 외무부가 작성한 편지에 서명한 것으로 '국익'을 위한 행동이었다고 강변했다. 그러나 루마니아 국영제철소 시덱스를 인수한 락스미 미탈 소유의 LNM사가 영국업체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블레어는 궁지에 몰리기 시작했다.
영국의 이브닝 스탠더드지에 따르면, LNM사는 카리브해의 네덜란드령 더치안틸레스에 등록된 외국기업이다. 또한 LNM의 소유주 락스미 미탈은 인도국적 소유자이다.
부쿠레슈티의 영국대사관 관계자들은 "이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대사관측이 연인원 수백명을 동원했으며 대사는 차치하고라도 대사관의 상무과가 외국기업의 거래를 돕기 위해 그렇게 장시간 일을 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것"이라고 말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2억5천만원을 헌금한 사업가와의 유착 의혹**
이브닝 스탠더드지는 미탈이 노동당에 12만5천파운드(약 2억5천만원)를 헌금한 지 2개월후인 지난해 여름 카자흐스탄이 미탈을 자국의 명예총영사로 인정해달라고 영국 외무부에 요청한 사실도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명예총영사가 외교관의 지위를 누리는 자리는 아니지만 미탈의 신뢰도와 정부부처에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여줄 것이라고 신문은 말했다.
인도 국적을 가진 미탈이 왜 영국에 살면서 국제적인 기업왕국을 경영하고 있고 과거 소련내 한 국가의 외교적 지위를 부여받으려 했는지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미탈은 평소 중앙아시아 지역과 관계된 사업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고 이 신문은 보도하고 있다.
이와 함께 편지작성을 건의한 리처드 랠프 주 루마니아 영국대사가 대사관저에서 동거하고 있는 젊은 여자가 LNM과 시덱스간의 거래를 맡은 법률회사의 직원이며, 이 대사가 지난 90년대초 워싱턴 근무시절 현재의 총리비서실장과 함께 일한 절친한 사이라는 사실도 폭로되었다.
한 마디로 말해 돈과 섹스가 범벅된 스캔들 의혹이 짙은 것이다. 영국언론이 이번 스캔들을 '쓰레기스캔들'로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제3의 길'의 타락**
블레어 총리는'40대의 젊은 기수론'의 대표적 정치인으로 그는 탁월한 표현능력과 정치감각을 가진데다 젊고 지적이며 가정적인 이미지를 갖춰 TV시대에 가장 적합한 대중적 정치인상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는 또한 '제3의 길'이라는 새로운 노선으로 우리에게 신선한 이미지로 각인되었다.
하지만 야당으로부터는 소수의 측근들에게만 지나치게 의존하며 실속에 비해 과대포장된 정치인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으며 "총리 일당들이 무엇이라고 말하든 제3의 길은 미국식 신자유주의에 불과하다"고 공격받고 있다. '무늬만 좌파'라는 것이다.
일본의 아사히 신문도 최근 블레어가 지난 15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극우성향의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와 회담한 것을 두고 '독일, 프랑스에 맞서 영국과 이탈리아가 연합해 대항하려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날 회담에서 양국정상은 내달 중순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EU(유럽연합) 정상회의를 앞두고 EU내의 노동력 이동제한을 완화하는 등 일련의 경제제도 개혁에 협조하기로 합의했다. 대다수 유럽연합 국가들 사이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미국식 신자유주의 정책의 적극 추진이자 옹호였다.
***의회 전통 파괴한 대통령 같은 총리**
전통적으로 좌파였던 영국의 노동당은 블레어가 집권하면서 노골적 우경화조짐을 보여왔다. 이에 혼란을 느낀 영국 정계는 "블레어는 우리가 익숙해있던 의회에 기반을 둔 총리가 아니라 사실상 대통령같이 행동한다"고 비난했다.
97년부터 지난해 5월까지 블레어 내각에서 북아일랜드 담당장관을 지낸 모울램은 "블레어 총리가 내각 장관들을 제쳐놓고 소수의 보좌관들하고만 정책을 논의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실제로 정책 결정은 앨러스테어 캠벨 총리 공보담당관과 샐리 모건 정무담당 보좌관이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모울램은 "블레어 총리의 '권력 독점' 경향은 97년 취임후부터 계속 강해져 왔다"며 "그의 내각에서 '허수아비' 장관이 되기 싫어서 장관직을 사퇴했다"고 덧붙였다.
모울램이 지적한 블레어의 측근으로는 앨러스테어 캠벨 총리 공보담당 보좌관이 첫손에 꼽힌다. 데일리 미러지 정치부장 출신인 캠벨(41)은 94년 블레어가 노동당수가 되면서 그의 진영에 들어건 이후 여론정치를 주도하고 있으며 블레어의 의중을 가장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가까운 기자들에게는 정보를 흘려 주는 반면, 정부 노선에 동조하지 않는 기자들은 홀대한다는 등의 이유로 언론으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다.
노동당 2기 내각에서 정무국장으로 승진한 뒤 지난해 말 브리티시 페트롤리엄(BP) 홍보이사로 이직한 안지 헌터도 피터 만델슨 전 북아일랜드 장관, 앨러스테어 캠벨과 함께 블레어 총리의 측근정치를 주도했다. 이들 '3인방'은 노동당을 개편하고 블레어를 총리로 만드는데 기획,연출을 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97년 블레어가 집권하자 특별 보좌관이 된 헌터는 선출직이 아닌 여성으로는 총리실에서 가장 막강한 인물로 통했다. 블레어 총리에 대한 정치 자문은 물론 개인적인 고민까지 들어주는 참모로 총리 집무실에 노크없이 들어 갈 수 있는 몇 사람 중 하나였으며 블레어 총리의 타이까지 골라주는 최측근이었다.
이들 측근은 그동안 적잖은 정경유착 스캔들을 일으키기도 했다.
한 예로 피터 만델슨은 98년말 상공부장관 재직시 은행으로부터 37만3천파운드(약8억원)의 거금을 부당대출받아 호화판 개인주택을 구입했다는 대형스캔들로 파문을 일으켰다.
당시 이 사건에 현 재무부장관인 고든 브라운이 깊숙히 관련되어 있고, 토니 블레어 총리 자신의 정치 자금도 관련이 있다는 의혹으로 떠들썩했었다.
***홍보기술자에 의존한 이미지 정치**
영국의 인디펜던트지는 19일 선출직이 아닌 홍보기술자들을 요직에 앉힌 여론정치에 대해 "드디어 올 것이 오고 말았다"고 따금하게 지적했다.
블레어가 지난해 6월 재선에 성공한 뒤 반드시 해야 할 일로 이들 홍보기술자들을 정리하는 것이었는데 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보도한 것이다.
블레어는 1997년 집권 초기부터 공식적인 내각 조직과는 별도로 정책 홍보와 여론조정 역할을 수행해온 측근들을 대거 참모로 발탁했다. 이는 미 백악관 참모진을 본뜬 것이었다.
현재 활동 중인 정무직 참모진은 앨러스테어 캠벌 보좌관 등 20여명. 이는 전임 존 메이저 총리 시절의 3배에 이르는 규모다.
97년 선거때 노동당에 거액을 기부할 만큼 블레어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켄 폴레트마저 블레어를 "비신사적이고 부도덕하다"고 몰아부쳤다. 그는 영화 '바늘구멍' 의 원작자로, 노동당 소속 하원의원인 바버라 폴레트의 남편이기도 하다.
그런 폴레트가 옵서버, BBC 등 각종 매체의 기고문과 인터뷰 등을 통해 연일 블레어와 참모들을 비난하고 있다. 그는 캠벨 등 참모들을 "빌려온 아이들" 이라 비하하며 "참모들이 비공식적인 대언론 브리핑을 수행하며 당내 라이벌들을 공격하는 엉터리 정보를 기자들에게 흘리고 있다"며 공격했다.
이들의 직책과 역할이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영국의 정치문화와 관행에 어울리지 않다는 것이 영국정치에 근본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투표에 의해 선출되지 않아 의회에 대해 아무런 법적.제도적 책임을 지지 않는 참모들이 요직을 차지하고, 정책을 좌지우지한다면 책임정치의 원리가 깨지는 것이며, 또 이들이 사용하는 예산도 만만치 않다는 지적이다.
***총리 후계 밀약설로 입지 약화**
블레어는 당내 라이벌인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과도 미묘한 갈등을 빚고 있다. 유로화 가입문제를 놓고 두 사람간에 불화를 빚고 있는 브라운 장관은 지난해말 BBC방송의 아침 대담프로에 출연, 두 사람간 '총리 계승'에 관한 비밀협약의 존재 여부에 대한 질문을 2차례나 받고도 모두 부인하지 않았다.
문제의 비밀협약은 지난 94년 당시 노동당 당수였던 존 스미스가 사망한 뒤 벌어진 당권경쟁에서 브라운 장관은 블레어 총리에게 당수자리를 양보하는 대신 추후집권할 경우 총리직을 중간에 승계한다는 내용의 이른바 "신사협정"을 말한다.
이에 대해 블레어 총리는 지난 5월에는 일간 이브닝 스탠더드, 6월에는 파이낸셜 타임스와의 회견을 통해 두 사람간에 그런 합의는 없었다고 부인한 바 있다.
브라운 장관은 그러나 이날 비밀협약의 존재를 묻는 프로그램 진행자의 질문을 받고 "블레어 총리와 내가 서로에게 말한 것은 정말 우리 둘만의 문제다"라고 즉답을 피했다.
그러나 야당인 보수당은 "브라운 장관은 총리직 승계를 위한 사적인 합의가 있었던 것으로 믿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의 야망이 정부를 난파시키고 있으며 각료들을 공공서비스 개혁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블레어, 초심(初心)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블레어는 노동당을 18년만에 야당의 설움에서 벗어나게 하며 1997년 당시 43세로 1백85년 만에 최연소 총리가 된 인물이다. 집권후 스코틀랜드와 웨일스의 지방 정부를 수립하고 런던 시장 직선제를 도입하는 한편 상원의 세습권을 사실상 폐지하는 등 정치개혁을 단행했다.
지난 94년 심장마비로 사망한 존 스미스 노동당 당수의 뒤를 이어 노동당을 이끌게 된 블레어는 극좌로 흐르던 노동당을 중도좌파 노선으로 변화시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총선을 치른 총리 가운데 가장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부유한 중산층 가정에 태어나 에든버러의 명문 사립학교인 피츠칼리지를 졸업한 그는 옥스퍼드대학 시절 머리를 기르고 '어글리 루머스(추한 소문)'라는 보컬그룹에서 기타를 연주하는 반항아 생활을 하기도 했다.
대학졸업 후 변호사 생활을 하던 그는 좌익운동가 집안 출신으로 유명변호사인 부인 셰리 부스를 소개받으면서 정계에 입문, 지난 83년 하원에 진출했다
그러나 아사히 신문은 18일 "블레어가 총리 취임 이후 이마가 많이 벗겨졌다"며 "블레어의 스트레스가 심한 것같다"고 정치적 위기에 몰린 블레어의 처지를 간접적으로 시사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