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묻고 싶습니다. 성폭력 피해자들은 성폭력 피해로 인해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았던 것일까요, 아니면 성범죄를 방치하고 가해자들을 두둔하고 오히려 피해자를 비난해온 공동체로 인해 입을 열지도 못한 채 고통을 받으면서 죽어갔던 것일까요? 피해자들의 입을 열 수 없게 만든 것이 그들의 두려움과 나약함 때문일까요, 아니면 피해사실, 진실을 들여다보지도 않고 그들을 꽃뱀, 창녀로 부르고 의심하고 손가락질해온 공동체 때문이었을까요? 그렇기 때문에 이제까지 성폭력은 개인 문제 아니라 집단적 문제였고, 약자와 여성을 대상으로 한 일종의 홀로코스트였습니다."
2018년 1월 29일. 서지현 검사가 <JTBC 뉴스룸>에 8년 전 당한 자신의 성폭력 피해사실을 털어놓았던 날이다. 그로부터 딱 1년이 된 오늘, 서지현 검사가 국회를 찾았다. 그는 1년 동안 피해자로서 겪은 고통을 털어놓으며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공동체가 바뀌어야 피해자가 살아갈 수 있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여성폭력근절특별위원회 주최로 국회 민주당 대표실에서 '서지현 검사 #미투 1년, 지금까지의 변화 그리고 나아가야 할 방향 좌담회'가 29일 열렸다.
전날 유명을 달리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며 인권운동가였던 김복동 할머니에 대한 묵념으로 시작한 이 날 좌담회에는 서 검사를 비롯해 문화예술계, 학교, 체육계 등 각계각층에서 미투를 외친 당사자들과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이호중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영순 미투 시민행동 공동집행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서지현 검사는 "1년 동안 피해자로서 공익제보자로서의 삶은 생명을 위협하는 것이었다"며 "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이와 같은 고통을 겪고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그 고통의 원인은 무엇일까"라고 물었다. 그러면서 자신이 1년 동안 고통을 느낀 원인으로 △성폭력 피해사실에 대한 조직적 은폐 △2차 가해 △'피해자다움'에 대한 요구 △피해사실을 흥미위주로 소비하는 언론을 꼽았다.
서 검사는 먼저 조직적 은폐에 대해 "모든 피해자가 가장 원하는 것은 진실을 밝히는 것"이라며 "다른 모든 조직과 마찬가지로 검찰 역시 피해 사실에 대한 진실을 확인하기보다 조직 보호의 논리를 내세우며 진실 은폐에 앞장섰다"고 했다.
2차 가해에 대해서는 "모든 피해자들과 내부고발자들이 두려워하는 것"이라며 "저 역시 검찰 내부 게시판에 (자신의 피해사실이 담긴) 글을 올리면 저를 업무능력과 인간관계에 문제가 있는 검사를 만들거라고 예상했는데 너무나 적중했고 예상했던 2차 가해가 진행됐다"고 했다. 이어 "2차 가해를 근절하지 않고서는 그 누구도 앞으로 입을 열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 검사는 또한 "피해자를 괴롭히는 것은 '피해자다움'에 대한 요구"였다며 "이 사회는 지나치게 가해자와 범죄자에게 관대하고 피해자들에게 우울한 모습만을 강요한다"고 했다. 이어 그는 "'피해자다움' 따위는 없다. 피해자야말로 누구보다 행복해야할 사람"이라며 "제발 가해자와 범죄자들이야말로 '가해자다움'과 '범죄자다움'을 장착해라"고 일갈했다.
마지막으로 서 검사는 공동체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누군가 정의와 진실을 말하기 위해 모든 것을 불살라야 하는 비정상적인 사회는 끝나야 한다"며 "공포와 수치로 피해자의 입을 틀어막아 온 잔인한 공동체가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서 검사의 발언에 이어 문화 예술계의 성폭력을 고백한 연극배우 송원 씨,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 스쿨미투 집회 기획자' 양지혜 씨, 체육계 내 성폭력을 고발한 '젊은빙상인연대' 권순천 씨 등이 자신들이 보고 겪은 성희롱·성폭력 사례와 개선해야 할 점 등에 대해 발언했다.
"남성중심적 권력이 만든 '피해자다움' 바탕으로 사법적 판단 이뤄져"
이호중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성폭력이 작동하는 주요 원인으로 남성중심적인 권력 구조를 꼽았다. 이를 바탕으로 사법적 판단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그는 "서 검사의 말처럼 '피해자는 보호받고 가해자는 처벌받는' 당연한 사실을 가로막는 권력적 작동이 우리 사회에 있다"며 "남성중심적인 권력구조에 의해 피해를 당한 여성들은 '피해자다움' 등 왜곡된 담론 구조가 만들어졌다"고 했다.
이어 "우리 사회에서 성폭력 피해자는 '이렇게 행동했어야 한다'는 이미지가 만들어져 있고, 이러한 이미지를 통해 법이 해석되고 적용된다"며 "이게 성차별적인 젠더권력의 작동"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안희정 전 도지사의 성폭력 사건 판결과정을 예로 들며 "안희정 사건에서 재판부는 성폭력 피한 피해자라면 당장 다음날 아침 가해자인 도지사를 경계하고 피해야 했는데, 피해자가 아침에 수행비서로서 음식점을 찾아보는 행동을 보였다는 이유로 피해자 답지 못한 행동이라고 했다"고 했다. 이어 "피해자 다움은 누구의 시각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사법부의 남성중심적 시각도 비판했다. 이 교수는 "대법원이 '성인지 감수성'을 이야기하는데 그것을 적용하는 대법원의 모습을 보면, 피해자가 한 행동이 그 자체로 존중되는 게 아니라, '피해자다움'이란 법원이 만든 전형에서 어긋난 행동을 했을 경우 어떤 이유가 있는지 살피는 것을 성인지 감수성이라고 했다"고 했다.
그는 "성인지 감수성은 성별 권력의 영향력을 제거하며 피해자의 목소리, 행동을 그 자체로 존중하는 법 해석을 해야하는 것"이고 "그동안 왜곡된 성에 대한 통념, 법원이 구축한 통념을 근본적으로 해체해나가는 과정이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그러면서 성폭력의 구성요건도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성폭력은 폭행이나 협박, 위력과 같은 상대방을 강압적으로 제압하는 수단이 행사됐는지가 핵심 기준이 아니"라며 "성폭력은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피해자의 동의없이 이뤄지는 성적인 행동들을 말한다"고 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