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외국눈에 비친 한국의 협상수준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외국눈에 비친 한국의 협상수준

'제로섬 게임'으로 보는 시각 많다

"한국에는 외국 투자가들에게 구미가 당기는 대기업들이 많다. 그러나 협상을 '윈윈 게임'이 아니라 '제로 섬 게임'으로 인식하는 한국의 협상 태도 때문에 곤욕을 치른 끝에 포기하게 된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의 최근 보도다.
이코노미스트의 이같은 보도는 최근 우리경제가 빠르게 회복되면서 더이상 헐값 매각을 하지 않겠다는 우리측 협상자세에 대한 불만표시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보면 우리측의 아마추어적 협상태도에 대한 지적이기도 하다.
과연 외국계에 비친 우리 협상단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 일단 감정을 배제하고 일독해 볼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 협상한다는 것은 악몽"**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미국의 반도체 회사 마이크론은 한국에 대해 잘 모르는 것같다. 2개월 전 마이크론은 자금난을 겪고 있는 경쟁업체 하이닉스를 인수하려고 협상을 시작했다. 이후 이 회사는 중도 포기했다가 다시 협상을 재개했다.

지난 주 독일의 인피니온도 매각 협상에 뛰어들었다. 이 회사도 한국에 대해 잘 모르긴 마찬가지다. 이들이 앞으로 어떤 운명에 처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비관적 전망이 많다. 미국의 거대보험사로 아시아에서 노련한 투자가로 알려진 AIG조차 한국 최대 재벌인 현대(하이닉스도 이 재벌의 계열사였다)의 증권부문을 인수하려고 18개월 동안 협상을 했지만 결국 손을 들고 말았다.

제너럴 모터스(GM)는 포드 자동차가 6개월간 협상 끝에 포기한 2000년 9월부터 대우 자동차를 인수하기 위해 협상을 진행중이다.
지난 주 GM은 새로운 협상조건을 내놓았지만 아직도 완전 타결까지는 할 일이 많이 남았다.

홍콩상하이은행(HSBC), 도이체 방크 등 두 개의 다국적 은행은 지난 3년간 매물로 나온 서울은행 인수 협상에 잇따라 실패했다.
미국의 투자회사 뉴브리지 캐피탈은 희귀한 성공사례다. 불과 15개월간의 협상 끝에 2000년 제일은행을 인수할 수 있었다.

왜 이다지도 한국에서 협상하는 게 악몽 같은 일이 되는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대부분이 한국의 과거와 관계가 있다.

'은둔의 나라'로 알려졌던 이 나라가 수출을 통해 세계 경제와 교류하게 된 것은 몇십년밖에 되지 않았다. 한국의 재벌들이 외자를 유치할 필요성을 느낀 것은 98~98년 아시아 금융위기 때였다. 한국이나 외국투자가들이나 이런 이유로 접촉하게 된 것은 낯설고 어색한 경험이었다.

***한국기업들의 회계조작은 가공할 수준**

협상을 하다보면 처음에 부닥치는 문제는 단순히 기술적인 것들이다.

한국에는 원천기술이 아닌 서구나 일본 회사들로부터 도입한 기술이 많아, 기업 매각시 기술 이전 금지 조항이 걸림돌이 된다.
재벌 계열사인 경우 내부 매출이 많아 허약한 체질인데도 구조조정에 저항하는 강력한 노조가 버티고 있다.
한국에는 부채를 갚을 능력이 없는 데다가 드러나지 않은 부채가 있는 기업들이 많다. 엔론 사태로 분식회계가 아시아에만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한국기업들이 저지르는 숫자놀음의 규모는 가공할 정도다.

그러나 이런 위험요소들은 평가와 협상 조건에 반영될 수 있는 것들이다.
가장 큰 문제는 합병에 대한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협상 테이블에 나오는 경우가 흔하다는 사실이다. 외국 투자가들은 "한국측에서는 협상을 서로에게 유익한 지점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한쪽이 빼앗아가는 제로 섬 게임으로 보고 있다"고 말한다.

이런 자세로 보니까 어떠한 합의가 나오더라도 한국측에서는 "너무 많이 양보했다"는 볼멘 소리가 나온다.
외국의 한 협상가는 협상 타결이 이루어진 날 바로 그 저녁에 가격을 좀 더 올려달라는 전화를 받은 적이 여러 번 있었다고 말한다.

한국의 문화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위험을 감수한 결정이 성공적인 것이어도 보상이 없는 반면, 결과가 나쁘면 벌을 받는 식이다.
외국 투자가들에게 한국에서 가장 용기있고 최고의 협상가로 평가받았던 오호근 전 대우 구조조정위원장은 "너무 느슨하게 협상했다"고 지난해 한국 언론으로부터 매도당했다.
오씨는 "일이 다 끝난 뒤 언론에서 '더 잘할 수 있었다'고 몰아붙이면 그대로 당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는 이 때문에 사표를 내고 현재 싱가포르에 가있다.

***외국인 투자가를 혐오**

외국인 혐오증도 한몫을 한다. 한국사람들은 은행장이 국산차가 아닌 벤츠를 타고 다니면 스캔들로 여긴다. 뉴브리지가 제일은행장으로 일본계을 임명하자 직원들이 집단 사표를 내겠다고 반발했다.

한국사람들 중에는 외국인 투자가들을 본능적으로 불신하고 외환위기로 조국이 모욕을 당했으며 현대판 식민지적 착취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로 인해 한국의 협상가들은 편집증적인 태도를 갖게 된다.
이들은 한국 언론에게 진행상황을 흘린다. 종종 기밀유지 약속까지 어기면서까지 이렇게 하는 이유는 "나라를 헐값에 팔아넘겼다"는 비난을 받을까 두려워서이다.

이들은 '강인함'을 보여주기 위해 곧잘 협상을 하다말고 고함을 치며 회담장을 뛰쳐나간다.
한 투자은행 관계자는 "우리는 외국인 고객들에게 '한국인들은 적어도 다섯 번은 강하게 나온다. 당신들도 몇 번은 그래야 한다'고 충고한다"고 말한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