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우리나라의 수출실적과 경제성장률 등 거시경제의 지표가 그다지 나쁘지 않았음에도 경제가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경제상황을 나타내는 여러 지표 가운데서도 소득분배 지표가 전년도보다 다소 악화되었으며, 특히 정부가 심혈을 기울여 온 고용지표도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2018년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취업자 수 증가는 9만7000명에 불과하여 9년 만에 최저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자 '일자리 정부'를 표방해 온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현재 고용상황에 대해 "아프다. 정부가 할 말이 없게 됐다"며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하기도 하였다.
대다수 선진 외국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경제도 신자유주의와 IMF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고용 없는 성장' 시대로 접어들었고, 경제성장률 또한 3%를 넘기 힘든 저성장 단계에 이른 만큼 획기적인 고용증대는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청년실업률이 10%에 육박하고 있는 가운데 올해 졸업하는 대학생 중 10%만이 정규직에 취업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될 만큼 극심한 취업난에 시달리는 청년세대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면, 고용과 일자리의 양과 질을 개선하는 문제는 정부와 기업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모든 경제 사회 주체들이 함께 지혜와 힘을 모아 해결해나가야 할 국가적, 시대적 과제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이런 때 전남 광주지역에 자동차공장을 설립하여 1만여 개의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이른바 '광주형 일자리 사업'이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광주형 일자리 사업은 2014년부터 광주시가 추진해 온 대안적 정책으로서, 광주시와 현대차가 합작법인을 설립하여 연간 10만대 수준의 SUV 경차 생산을 목표로 연봉 3500만 원 수준의 일자리 1만여 개를 만든다는 야심 찬(?) 프로젝트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광주시는 적정임금, 적정 노동시간, 노사책임경영, 원∙하청관계 개선 등 4개의 의제를 핵심의제로 선정하고 지역 차원의 사회적 대화를 통해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논의와 준비를 오랫동안 진행하여 지난해 말 그 결실을 거두는가 싶었다. 하지만 마지막 협상 과정에서 "35만대 생산목표 달성까지 노사협의를 유예한다"는 합의 내용에 대한 논란과 노사의 반발로 인해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하고 무산되고 말았다.
지역주민들은 물론이고 국민적인 기대를 모았던 광주형 일자리가 이처럼 좌초될 위기에 처하게 된 데는 현대자동차의 의지 부족과 광주시의 주먹구구식 행정, 정치권의 과도한 개입 등 여러 가지 원인이 거론되고 있지만, 노동계의 근시안적이고 이기적인 태도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현대차 노조는 회사가 광주형 일자리에 참여할 경우 총파업으로 맞서겠다며 결사반대 입장을 천명하였고, 현대차 노조의 상급단체인 금속노조와 민주노총도 광주형 일자리가 기존 자동차 업체의 임금하락을 유도하는 '나쁜 일자리'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현대차 노조는 최근 문 대통령이 광주형 일자리 사업의 재추진과 다른 지역으로의 확산을 주문하는 등 적극적인 관심을 표명하고 나서자, "전기차, 수소차, 자율주행자 등 새로운 기술전환에 역행하는 경차시장은 실패가 뻔한 사업"이라며 "광주형 일자리 사업의 즉각 철회"를 주장하면서 "폐쇄된 한국지엠 군산공장 재가동"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처럼 관련 노동계가 이런저런 이유를 들면서 반대하고 있지만, 지역주민과 대다수 국민들은 상생과 사회통합형 일자리 창출 사업을 대기업노동조합이 왜 반대하는지 쉽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자동차산업의 중복투자와 기술발전에 역행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결국 자신들의 고용과 임금에 대한 악영향을 우려한 '밥그릇 지키기'가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리고 있다. 노조 본연의 사명감으로 조합원들의 불안한 심리를 대변한다지만, 미래의 고용불안과 임금손실 가능성을 이유로 현재의 일자리 창출을 반대하는 것은 결코 합리화될 수 없다는 것이다.
노동을 통한 산업민주주의의 실현과 노동자의 고용안정 및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조직되고 존재하는 노동조합에게 있어서 고용 문제는 최우선적인 과제가 아닐 수 없을 것이며, 세계 어느 나라 노조도 고용 문제를 외면하거나 도외시하는 조직은 없을 것이다. 실업률이 높아지고 비정규직 노동자가 많아질수록 노동조합의 교섭력이 저하되고 결과적으로 재직 중인 노동자의 고용조건도 악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순망치한(脣亡齒寒)'의 원리와 비슷하다고 할까? 그렇기 때문에 노동조합은 자신의 조합원뿐만 아니라 다른 노동자들의 고용률을 높이고 전체 노동자들의 고용조건 개선에도 적극적인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우리나라 경제는 앞서 언급한 '고용 없는 성장'과 '만성적인 저성장' 시대에 접어들었을 뿐 아니라, IT와 AI로 대변되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격변의 시대를 맞이하여 고용 문제와 일자리 문제는 갈수록 첨예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 만큼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사회통합에 앞장서야 할 노동조합도 일자리 창출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통한 고용의 양과 질을 높이기 위해 자기희생과 양보를 바탕으로 하는 연대의 정신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역사적 책무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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