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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의 기적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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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의 기적 <2>

나눔의 지혜로 경제재건

인구 1천6백만명에 국토 면적이 남한의 절반만한 네덜란드는 지난 97년 미국 덴버에서 개최된 서방7개국(G7) 정상회담에서 당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네덜란드의 경제기적을 성공 사례로 언급하면서 국제적으로 ‘강소국’의 반열에 올랐다.
덩치만 작을 뿐 경제의 강력함에서는 미국과 필적할 만한 존재로 급부상한 것이다.

그러나 강대국 미국과 강소국 네덜란드 사이에는 여러모로 차이가 많다. 가장 큰 차이는 경제강국을 이룬 과정이다. 최근 10년간 노동경제학에서 가장 많이 연구된 주제가 OECD 국가에서 지난 20년간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는 소득 불평등 문제다.

소득 불평등은 미국에서 눈에 띄게 늘어가고 있다. 영국도 소득불평등이 상당히 심화됐고 저임금층도 늘어가고 있다. 외환위기를 겪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영미식 앵글로색슨주의를 택한 나라들에서 공통적으로 목격되는 현상이다.

***네덜란드의 빈민율은 세계 최저**

그러나 네덜란드에서는 소득격차가 매우 적고 저임금층도 그리 많지 않다. 네덜란드의 빈민율은 세계 최저 수준이다. 네덜란드는 고용 성장을 위해 빈민을 양산하는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 독일과 프랑스의 소득격차도 심하지는 않지만 네덜란드와 비교하면 매우 높은 축에 속한다.

비정규직, 낮은 실업률, 작은 소득격차 같은 요소는 개별적으로는 다른 나라에서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들이 성공적으로 결합된 케이스는 네덜란드말고는 달리 찾아 볼 수 없다.

'네덜란드의 기적'이라고 부를 만큼 독보적인 것이다. 그것도 1980년대초 '네덜란드 병'이라고 할 정도의 피폐한 상황에서 기적적으로 이뤄낸 것이다.

실업률도 OECD 국가들이 모두 부러워할 정도다. 1982년부터 1995년까지 서유럽 국가들의 평균 연간 고용증가율이 0.5%포인트인데 비해 네덜란드는 고용률이 매년 1.4%포인트씩 늘어났다. 1982년 10% 가량이던 실업률은 2000년 3.5%까지 떨어졌다.

12개월 이상 장기 실업이 유럽 전체 실업에서 40%가 넘고, 스페인에서는 24세 이하의 노동가능 청년의 절반 이상, 프랑스와 이탈리에서는 28%가 직업을 갖지 못한 현실에서 네덜란드는 분명 ‘이상한 나라’다.

네덜란드에서는 똑같은 일을 하는데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에 임금을 적게 준다. 인구의 13% 이상이 노동장애 수당을 받고 있다. 경제활동인구의 62%만이 직업을 갖고 있는 것도 특이하다.

***네덜란드는 '비정규직'의 나라**

이에 대해 리처드 프리먼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는 네덜란드를 ‘세계 유일의 비정규직 경제’로 규정했다. 네덜란드의 비정규직 비율은 유럽 평균의 두 배에 이른다. 평균 근무시간도 상당히 적다.

암스테르담대 노동연구소 비메르 살베르다의 연구에 따르면 1998년 네덜란드의 실업률은 4.0%로 당시 미국의 4.5%보다도 낮았다. 유럽의 평균 실업률이 10%에 이른다는 것을 보면 확실히 이례적이다.

살베르다는 “그것도 미국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실현했다는 점에서 놀라운 것”이라고 말한다.

정부와 사회 민간부문이 합의를 거쳐 의식적인 노력으로 전면적이고 지속적인 임금억제에 성공했기 때문에 어느 나라보다 높은 고용률을 이뤄냈다는 것이다.

살베르다는 “의식적인 노력의 결과이기에 '기적'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치 않다면 체계적으로 분석을 해보자”고 제안한다. 다른 나라나 네덜란드 경제의 앞날을 위해서도 이런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그는 3가지 질문을 제기했다.

첫번째, 네덜란드의 노동시장이 근본적으로 달라져 고용률이 증가했는가.
두번째, 이런 변화가 정책적 결과로 나타난 것인가.
세번째, 네덜란드의 정책이 다른 나라에서도 유효하고 네덜란드에서도 앞으로 유효할 것인가.

1979년~1997년 네덜란드의 고용률은 28% 증가했다. 이 기간에 네덜란드의 고용구조는 현격하게 변했다. 연 4%씩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임시직은 1989년 이후 급격히 증가해 노동자의 3분의 1이 비정규직 등 임시직이 차지하게 된 것이다.

반면 정규직은 5% 감소했지만 비정규직과 임시직이 이를 보충하고도 남을 정도로 증가했다. 비정규직 중에는 주당 노동시간이 10~12시간 정도에 불과한 것도 적지 않다. 이것을 제외하면 비정규직 비율은 적어져 인구 대비 고용률이 68%에서 61%로 줄어든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높은 실업률에 허덕이던 네덜란드가 5% 미만의 실업률을 유지하는 이면에는 네덜란드의 발달된 사회복지제도가 있다. 노동장애수당을 받거나 조기 은퇴수당을 받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을 싫어하지 않는 이유**

1995년 비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은 정규직의 86% 수준이었다. 그러나 특이한 것은 비정규직이 많은데도 노동자들이 정규직이 아니라는 점에 대해 불만이 없다는 것이다.

1996년 통계를 보면 네덜란드의 전체 노동자 2.4%(또는 비정규직의 6%)만이 정규직을 선호했다. 유럽연합의 3.1%(유럽연합 비정규직 노동자 중 19%)와 대비된다.

이는 주로 네덜란드에서는 여성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을 통해 가계의 2차 수입원으로 삼고 있다는 것을 반영한다. 임시직의 평균임금은 정규직의 57%로 상당히 낮다.

고용구조는 사람 수로 파악하는 것도 있지만 노동시간으로 파악할 수도 있다. 전체노동시간에서 비정규직이 차지하는 비중은 9%에서 19%로 늘었다. 비정규직 노동자수는 18%에서 30%로 늘었다. 임시직은 3%에서 7%로 늘었다. 반면 정규직은 노동시간에서 88%에서 74%로 줄었다.

고용률을 머릿수로 계산하면 네덜란드의 실업률이 상당히 낮은 것으로 나오게 된다. 그러나 1997년 실업률도 주당 10시간 정도인 임시직을 제외한다면 5.5%에서 6.1%로 늘어난다.

일할 의사와 능력을 갖고 있는 실업자를 기준으로 네덜란드의 실업률을 계산하면 12.3%로 늘어난다. 유럽의 평균은 15.7%다.

비정규직이 많다는 것은 청년 노동자의 입장에서 고용상황이 질적으로 악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실업이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청년들의 수가 감소하고 교육받는 인원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과 관련이 있다. 직업을 가진 청년 중 3분의 1이 주당 12시간 미만 일한다. 이는 24세 이상의 성인보다 4배가 많은 비율이다.

최근 청년들의 임시직 비율은 더욱 늘어나고 있다. 1992년~1997년 주당 12시간 정도 일하는 청년의 비율은 16.5%에서 27.5%로 급증했다.

***임금억제 노력도 주목할만**

비정규직의 비율이 높다는 네덜란드 고용구조의 특성과 함께 임금억제는 네덜란드 기적의 양대 요인이다.

1979~1997년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36%가 오른 반면 시간당 실질 임금은 6%만 올랐다. 임금은 생산성 대비 22%나 떨어졌다. 특히 1979~1985년 사이에 17%나 떨어졌다. 1983년 이후 임금억제에도 불구하고 생산성은 계속 올랐다.

살베르다는 “네덜란드의 기적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교훈은 고용창출이 특히 비정규직 활성화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으로 결론짓는다.

비정규직은 미래의 고용 구조에 적합한 것으로 보이며, 제조업은 감소하고 서비스업이 늘어가는 추세로 볼 때 비정규직의 비중을 높이는 방식이 적합하다는 것이다.

네덜란드의 모델을 다른 나라에 적용하는 데 제한이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네덜란드처럼 비정규직을 노동자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은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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