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기관사이자 철도 정책 전문가인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원 철도정책객원연구위원이 직접 취재한 '강릉선 KTX 탈선 사고' 르포를 '강릉선 KTX 사고 마이너리티 리포트' 이름으로 3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이 글은 그 첫번째 꼭지입니다. 편집자
이 글은 '강릉선 KTX 사고' 보고서이다. 그러나 공식 보고서는 아니다. 23년 넘게 철도 현장에서 일하면서 보고 느낀 것을 토대로 한 지극히 주관적인 글임을 밝혀둔다. 개인적 편견과 오해가 개입될 소지도 있지만, 나름대로 한국철도의 문제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했던 한 사람으로서 강릉선 KTX 사고에 대해 리포트를 남겨야겠다는 어떤 의무감 같은 게 작용한 결과이다. 사고 현장을 조사하고 복구 작업을 지켜보았다. 복구 이후엔 강릉역 직원들을 인터뷰하고, 재차 현장을 둘러보면서 강릉선 사고로 얻어야 할 교훈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글의 발표 시점은 일부러 한 달 이상 늦췄다. 해변을 덮치는 파도처럼 늘 새로운 이슈가 앞엣것을 밀어내는 한국 사회에서 냉정하게 '사건'에 대해 다시 접근하고 환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12월 7일 금요일 저녁, 나는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두 시간을 달려 강릉역에 내렸다. 갑자기 몰아친 한파에 강릉역 택시 승강장에선 사람들은 몸을 한껏 움츠리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있는 강원도 교육청 주최의 강원 평화교육 심포지엄에서 기조발제를 맡은 터라 행사장 숙소로 향했다. 이른 시간 잠자리에 든 덕에 아침 일찍 일어나 숙소의 창밖 풍경을 보고 있는데, 주최 측에서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 행사장에 도착해 있는지 확인하는 전화였다. 강릉역에서 KTX 열차가 탈선하는 바람에 토론 패널 중 한 명인 홍세화 선생은 제시간에 못 올 것 같다는 말이 이어졌다. 황급히 스마트 폰을 열었다. KTX 탈선 소식이 속보로 뜨고 있었다. 머릿속이 마구 헝클어졌다.
행사를 마치자마자 강릉역으로 달려갔다. 역에는 강릉역 직원들이 총동원돼 열차 운행 중단 사실과 진부역으로 향하는 셔틀버스 정류장 위치를 안내하고 있었다. 강릉역에서 사고 위치를 확인하고 택시를 타고 현장으로 향했다. KTX 같은 고속열차가 달리는 최신 철도시스템에서 탈선사고가 일어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고속철도에 조응하는 신호시스템과 선로시설은 개통한 지 1년도 안 된 신선이었고, 열차도 부품의 이상이나 노후화를 따질 수 없는 신형이었다. 103명이 희생된 최악의 고속열차 사고로 알려진 1998년 6월에 일어난 독일의 뮌헨 발 함부르크행 고속열차 이체 탈선사고는 문제가 있던 열차 바퀴가 깨지면서 일어났지만, 균열은 7년에 걸쳐 진행된 것이었다. 천재지변이거나 테러가 아닌 다음에야 열차 운행 체계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탈선 사고는 일부러 만들려고 해도 힘든 것이었다. 현장에서 답을 찾아야 했다.
20여 분 만에 도착한 사고 현장은 처참했다. 선로가 누워있고 탈선한 열차 바퀴가 긁고 간 콘크리트 침목은 깨져 있었다. 열차의 맨 앞 두 량이 잭나이프 현상으로 겹쳐 있는 모습은 충격이었다. 큰 인명 피해가 없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모든 객차가 탈선하고 앞의 두 량이 꺾여 있음에도 차체는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충격량이 클 경우 차체가 찌그러지거나 훼손되기 마련인데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것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 사망자나 중상자가 나오지 않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복구반원들이 장비와 자재를 나르며 분주히 움직이는 가운데 한 편에선 사고 조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탈선한 KTX 열차의 전체 형태를 둘러본 뒤에 사고가 시작된 곳으로 갔다. 강릉에서 뻗어져 나온 철길이 서울과 차량기지 방면으로 갈라지는 21B 선로전환기 둘레는 노란색 출입금지 선이 둘러쳐져 있었다.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철도 용어로 '첨단'이라고 부르는 선로 전환기 끝에 달린 두 선로는 자신이 이 사고의 트리거(방아쇠)라고 말하고 있었다. 첨단은 선로 끝이 칼처럼 깎여 있어 다른 선로와 붙어 일치되면 한 몸이 된다. 그래서 선로전환기에 달린 선로의 끝인 첨단은 두 가닥의 선로로 나뉘는 곳의 어느 선로라든지 한쪽으로 붙어 있어야 한다. 사고 지점의 첨단은 어디에도 붙어 있지 않았다. '불일치'라고 부르는 현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선로전환기 첨단의 불일치가 일어난 지점을 고속으로 달리는 열차는 눈앞에 보이는 것처럼 처참하게 탈선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불일치 현상을 잡아내지 못했고 또 왜 열차 접근 전에 해소하지 못했는가? 다음 의문점을 풀어야 했다. 몸을 돌려 강릉역 방향 선로를 봤다. 서울 방향을 향해 오른쪽으로 굽은 고가교를 넘자마자 만나는 산등성이가 사고 현장이다. 머릿속으로 시뮬레이터를 돌렸다. 거대한 열차가 아무것도 모른 채 달려오고 있었다.
오전 7시 30분 승객 198명을 태운 강릉발 서울행 KTX 806호 열차가 강릉역을 출발했다. 역을 빠져나온 열차는 서서히 속도를 높이며 영동선 분기점을 지나 서울로 향하는 고가선로 위에 접어들었다. 그런데 열차 출발 23분 전쯤, 중앙 관제실과 강릉역 로컬 관제실 모니터에 경고가 들어왔다. 차량기지 입·출고선의 선로 전환기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신호였다. 이 선로 전환기는 21A 전환기로 이 전환기의 30미터 끝에는 사고가 발생한 21B 전환기가 이어져 있다.
강릉역에서 출발하는 고속열차와 무궁화호의 상당수는 차량기지에서 대기하다가 강릉역으로 이동해야 하기에 이 선로전환기에 문제가 생기면 열차 운행에 지장이 생긴다. 중앙관제실은 차량기지 출고선이 막혀 열차가 줄줄이 지연될까 걱정이 커졌다. 강릉역에서는 선로전환기의 문제를 확인하고 고장 시 수동으로라도 취급하려고 2명을 현장에 파견했다. 전기 신호를 담당하는 팀에서도 한 명이 현장으로 급파됐다. 강릉역에서 현장까지는 자동차로 20분이 걸리는 거리였다.
강릉역 관제실과 중앙관제실 관제원들이 그나마 다행으로 생각한 것은 출발이 임박한 7시 30분 발 서울행 열차의 선로는 정상으로 개통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일단 KTX가 정상 신호를 받아 출발하고 난 뒤의 중앙관제실 걱정은 차량기지 입·출고 문제였다. 강릉역 관제실을 불러 차량기지 쪽에 파견된 사람들이 현장에 도착했는지 여부를 물었다. 오류 신호가 뜬 21A 선로전환기의 문제를 시급히 해결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때가 사고 발생 1분 전, KTX 열차는 시속 100킬로미터의 속도로 사고 현장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현장에 급파된 사람들은 문제 신호를 보낸 21A 선로 전환기를 확인했다. 멀리서 서울행 KTX 열차가 달려오고 있었다. 선로 감시나 정비 때면 늘 그렇듯이 옆으로 지나쳐 갈 열차가…. 21A 선로 전환기 상태를 확인한 사람들은 아무 이상이 없는 선로 전환기를 보고, 아마도 오류 신호가 제거 됐거나 오류 신호 자체가 오작동으로 인한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이들의 눈앞에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서울 방향으로 달려가야 할 KTX 열차가 탈선한 채 자신들이 있는 곳으로 돌진해왔다. 21A에서 21B 선로 전환기의 거리는 고작 30미터. 선로 전환기 아래는 돌덩어리로 축대를 쌓고 철망으로 마감한 급경사 길이었다. 세 사람은 황급히 몸을 피했고 이 와중에 역무 팀장은 돌 축대 경사면으로 떨어져 골반에 부상을 입었다. 돌이 무너져 내리지 않게 하려고 돌덩어리 위에 설치한 철망은 사람들의 발을 걸기에 딱 좋은 덫이었다.
KTX 806열차의 기관사는 시속 100킬로미터 정도의 속도로 선로 전환기를 밟았다. 시속 100킬로미터 속도로 달리면서 멀리 떨어진 선로전환기가 제대로 붙어 있는지 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운전실 모니터에 표시되는 지시 속도는 앞의 선로가 정상임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기관사가 우연히 선로 상태를 육안으로 확인했더라도 그 지점은 사고 발생 몇 초 전이었을 것이다. 기관차 바퀴는 선로가 벌어진 틈으로 들어갔다. 기관차 앞 왼쪽 바퀴가 벌어진 선로 때문에 공중으로 떴다가 떨어져 땅을 긁기 시작했지만 진행 방향은 서울로 향하고 있었다. 이때 열차 바퀴에 의해 충격을 받은 선로 전환기가 살짝 움직여 차량기지 쪽으로 바퀴를 유도했다.
기관차의 뒷바퀴가 차량기지 쪽으로 들어가 버리자 기관차의 앞바퀴는 서울 방향 선로 위를, 뒷바퀴는 차량기지선을 달리게 되면서 기관차는 자연스럽게 진행 방향으로 90도 꺾인 채 활주하기 시작한다. 기관차 바로 뒤에 붙어 있는 객차의 앞바퀴는 기관차 뒷바퀴와 함께 차량기지 쪽으로 따라 들어갔는데, 이번에는 객차 뒷바퀴가 서울 방향으로 들어갔다. 이런 이유로 기관차와 바로 뒤의 객차인 1호차가 겹치는 잭나이프 현상이 일어났다. 이후 모든 객차는 서울 방향 쪽으로 미끄러지며 들어갔다.
이런 현상이 일어난 이유는 대차라고 부르는 차량의 바퀴 구조도 한몫했다. 기관차의 앞 뒤 바퀴와 1호차의 앞바퀴는 '스윙대차'라고 불리는 구조로, 곡선 선로에 대응하기 위해 바퀴 축을 중심으로 회전이 쉬운 구조로 장착되어 있다. 반면 1호차 뒷바퀴부터는 '관절대차' 형식으로 바퀴 장치(대차)가 양쪽 객차를 이어주며 지탱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KTX의 특징인 관절대차는 칸칸이 이어진 객차들을 한 묶음으로 이어주는 역할을 함으로써 설사 탈선이 일어나도 여러 객차가 하나의 객차처럼 유동해 객차들이 연결부에서 탈락하거나 접히는 잭나이프 현상을 막아준다.
사고 현장은 선로 양쪽으로 비탈이 있어서, 열차 탈선 후 선로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면 차량이 경사면 아래로 추락할 수도 있었다. 만약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면 끔찍한 인명피해가 났을 것이다. 사고 현장의 선로 바닥에 있는 흔적들은 자동차 사고 때의 스키드마크(타이어자국)처럼 KTX열차가 탈선해 어떤 형태로 밀려갔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거의 90도로 꺾인 채 밀려간 기관차와 1호 객차는 스케이터가 빙판이나 아스팔트 위에서 잡는 T자형 브레이크처럼 탈선한 열차의 브레이크 역할을 해주었다.
서울행 선로와 차량기지 선로 위로 앞뒤 바퀴가 엇갈려 들어가 진행 방향에서 90도로 꺾인 두 차량과 이를 밀어내는 일직선의 8량 객차가 T형으로 굉음을 내며 미끄러졌다. 탈선 후 운동에너지가 소진될 때까지 관성에 의해 돌진하는 동안 객차 안에 있었던 사람들이 느꼈을 공포는 상당했을 것이다. 특히 탈선에 무방비로 노출됐을 기관사와 차체가 꺾인 1호차에 탔던 승객들은 그 정도가 훨씬 컸을 것이다.
다행히 개통 1년이 안 된 선로라 자갈의 양도 많았다. 서울 방향 선로 위를 거의 그대로 질주한 8량의 객차와 달리 꺾인 채 주행한 앞 2량의 탈선한 바퀴는 콘크리트 침목과 자갈밭에 긴 자취를 남겼다. 침목과 자갈이 흡수한 에너지 덕에 제동 거리는 짧아졌고 심각한 전복 사태까지 발전하지 않았다. 천만다행이었다.
탈선 후 열차가 질주한 길을 따라가며 선로가 깨진 부분이나 고정 장치에서 떨어져 나가 누운 레일, 침목들의 훼손 상태, 자갈밭에 길게 난 흔적을 살펴보고 난 뒤에 결론이 나왔다. 앞서 예단했듯이 트리거는 21B 선로전환기였다. 아무 오류도 지시하지 않았던….
이제 사고의 방아쇠를 당겼던 근인을 찾을 차례였다. 아주 쉬운 수수께끼이다. 21B 선로전환기가 벌어져 있었다. 그런데 오류 신호는 21A 선로전환기에서 보내왔다. 왜 21B의 오류를 21A가 보냈는지 찾아보면 된다. 바보가 아니라면 선로전환기와 연결된 신호 케이블만 따라가면 되는 것이다. 사고 조사반은 당연히 케이블의 끝인 신호기계실로 갔다. 이 신호기계실 안쪽 계전기함이라고 불리는 박스를 열자, 악마의 미소처럼 전선 가닥들이 엉뚱한 곳에 연결되어 있었다.
이제부터는 현장에서 드러난 명백한 사실에 대해 자신들이 속한 기관의 이해와 처한 위치에 따라 해석하고 포장하고 덧칠하고 떠넘기는 일들이 시작될 차례다. 아마도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 조사위원회는 전문적이고 정밀한 조사를 한다는 명분으로 충분히 시간을 끌다가 다른 일들로 바쁘고 정신없으면서도 무료한 시간의 틈을 찾아내 사고 원인을 밝히고 안전 대책을 내놓을 것이다.
사고의 근인은 선로전환기의 표시회로선이 반대로 연결된 것이었다. 쉬운 말로 불량 시공이다. 그리고 이 불량을 감리단계에서, 또 시험과정에서 솎아내지 못했다. 시공 불량에 이어 명백히 드러난 것은 형식적인 감리와 시험이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사고의 1차적 책임은 시공과 시험을 맡은 철도시설공단에 있다. 그러나 올림픽을 앞두고 개통 압박이 심한 상태에서 꼼꼼한 점검과 시험을 주장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꽉 막힌 사람이거나 무능력자로 찍혔을 것이다.
선로전환기 회로가 반대로 연결된 사실이 드러났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이때부터 책임 공방은 더 뜨거워졌다. "이번 사고는 KTX 열차가 탈선까지 해서 철도공사 책임인 것 같지만 조사해보니 시공이 잘못됐다. 죄송하다. 책임지고 사후 안전대책을 마련하겠다"라고 깔끔하게 인정하는 시설공단 이사장을 상상하는 것은 만화에나 나올 일이었다. 본격적인 네 탓 공방이 시작됐다. 시공은 시설공단의 책임이지만 일단 시험과정을 거쳐 납품이 끝났으면 그때부터는 운영자인 철도공사의 문제라는 것이 시설공단의 입장이다. 철도 공사는 처음부터 불량품을 납품한 시설공단의 책임이라고 주장한다.
이제 슬슬 사고의 먼 이유, 그러니까 원인이 무엇인지 형체를 드러내려 하고 있다. 국토부 장관은 사고의 원인을 밝히고 책임소재를 가려 엄중히 책임을 묻겠다는 뜻을 밝혔다. 장관의 뜻대로 사고의 원인이 무엇인지 따라 가보자. 그리고 그 책임소재가 마지막에 닿는 종착역이 어디인지 확인해보자.(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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