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 대우그룹 전회장 관련자료가 최근 오비이락(烏飛梨落) 격으로 양산되기 시작했다.
'판도라의 상자'라 불리는 김우중 전회장의 입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한 것인지, 아니면 김 전회장 특유의 고도의 생존전략이 작동된 것인지 세간에 해석이 구구하다.
분명한 사실은 김 전회장이 귀국, 입을 열 경우 우리사회의 실세 주류들 가운데 '안전지대'에 있을 이들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판도라의 상자'는 불행과 사회악을 의미한다. 따라서 덮고 넘어가야 한다는 주장도 많다. 그러나 판도라의 상자 맨마지막에서는 '희망'이 나왔다. 김 전회장이 만약 자신의 편지글에서처럼 진정으로 국민에게 사죄하는 마음이 있다면 즉각 귀국해 '진실'을 말해야 할 것이다. 그것만이 한차례 '폭풍'이 불가피할지라도 한국사회가 새롭게 태어나는 길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월간조선 11월호 김우일(전 대우그룹 구조조정본부장)씨 인터뷰, 최용운씨 소설<재벌에 哭한다>, 김우중씨 편지등의 자료다. 편집자
***월간조선 11월호에 게재된 김우일씨(전 대우그룹 구조조정본부장) 인터뷰 기사 발췌**
대우 사태는 10년 전부터 경고등이 켜졌다. 청와대, 재경부, 금융기관 등 모두가 대우를 사상누각의 회사로 인식했고 ‘언제 망하느냐의 여부는 시간 문제’라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사적인 자리에서 정부 관료들을 만나면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대우그룹 참 신통하다. 어떻게 지금까지 견뎠느냐"는 질문이 대부분이었다.
-김상무께서는 직접 경영권을 행사한 입장은 아니었지만 그룹 경영의 핵심에 참여하면서 금력과 권력의 결탁, 부패구조에 대해 많은 것을 듣고 보고 느끼셨을 것입니다. 대우를 퇴직한 직원의 증언에 의하면 김회장과 친분이 있던 모 정치인이 서울에서 국회의원으로 출마했을 때 그 정치인 은행계좌로 매주 3천만원씩을 입금시켰다고 하더군요.
"대우 기조실 출신의 두 의원은 각각 여당과 야당 전국국로 의원 배지를 달았습니다. 두 분의 여의도 입성 과정에 회장의 물질적인 도움이 큰 힘이 됐다고 해요. 그 후 일이 있을 때마다 회장은 물론 각 계열사 사장들이 두 의원에게 부탁을 많이 했어요. 제가 알기로는 대우 출신 두 의원 외에도 20~30명 정도 국회의원이 김회장과 깊이 교제하고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회사가 필요로 할 때마다 김회장이 이 의원들과의 친분을 이용해 도움을 받았죠. 제가 직접 목격한 사례인데 국회 재경위 소속 의원들 만난 자리에서 김회장이 도움을 요청하자 의원들이 ‘알겠습니다. 회장님’ 이러더군요.”
-1997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이 폭로한 김대중 비자금 자료를 보면 (주) 대우 계좌에 김대중 후보의 비자금이 입금됐었다는 대목이 있던데요. 김대통령과 김회장의 친분 관계는 어느 정도였습니까.
“회장은 김대통령과 사이가 원만했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1997년 대선 무렵 김대중 후보가 회장을 찾아온 적이 있는데, 나갈 때 보니 김후보의 표정이 대단히 어둡고 화가 나 있더군요.”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관계는 어땠습니까.
“1991년 무렵 김회장은 안산 농장에서 김영삼 당시 민자당 대표와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 직후 회장이 ‘김영삼 대표가 대선 후보가 되면 그룹이 살기 위해서라도 도와줘야겠어’ 이렇게 말하더군요. 회장이 대선 출마를 포기하고 김영삼씨가 대통령 후보가 됐을 때 사장단 회의를 열어 ‘대우그룹의 임원과 부장들을 동원해 YS를 도우십시오. 나쁘게 생각하지 마시고 기업가들이 회사 살기 위해서라도 YS를 도와야 하는 것 아닙니까’하고 지시했어요.”
-김우중- 이회창 총재와의 관계는?
“김회장이 1997년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를 지원했던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정치후원금도 한나라당에만 20억원을 냈고 민주당 쪽엔 안 냈어요. 그때 그룹의 자금 사정이 빠듯해 20억원을 마련하는 데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회창 후보에게 준 20억원은 공식적인 정치 후원금이었습니까.
“당을 통해 정식으로 접수하고 영수증을 받았죠. 이것 말고 대우가 한나라당 고위 인사에게 정치자금을 주었다 해서 제가 대검 중수부에 불려가 조사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시기는 언제였습니까.
“1998년으로 기억됩니다. 어느 날 수사관들에게 연행돼 검찰에 갔는데 대우가 한나라당 고위 인사에게 공식 후원금 20억원 외에 또 다른 20억원을 제공한 이유를 대라고 하더군요. 수사관 설명에 의하면 당시 검찰 조사를 받던 대우 출신의 정부투자기관 사장이 한나라당 측에 20억원을 더 줬다고 진술했다는 겁니다. 저는 처음 듣는 소리라서 끝까지 부인했어요. 어느 날 새벽에 검찰 고위 간부가 저와 정부투자기관 사장을 함께 부르더니 ‘대검 중수부도 종종 선입관을 가지고 수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도 인간이라 가끔씩 실수합니다’ 이렇게 말하고는 석방됐어요.”
-김회장의 정치권 로비 실력은 어느 정도였습니까.
“대단했습니다. 언젠가 김회장이 직접 자동차 유리문 사이에 들어가는 고무 바킹을 만드는 부품회사 인수를 지시하더군요. 사장 이름이 특이해서 그 회사 사장 이름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실사를 해보니 절대 인수하면 안 되는 부실투성이였습니다. 공짜로 줘도 거절할 회사를 무조건 30억원에 인수하라니 뭔가 비정상적 거래가 분명했습니다. 제가 인수 불가 입장을 고수하자 그 회사 사장이 저에게 ‘이 회사 인수 안 하면 김우중 회장 다쳐요. 이 회사 뒤에 누가 있는지 아십니까. 사정기관장이 나와 고교 동기고, 이 회사 지분 중 상당수가 그 분겁니다’ 이러더군요. 당시 회장이 뇌물사건으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을 때였는데, 결국 이 회사를 약 30억원에 인수했습니다.”
-인수 결과는 어땠습니까.
“워낙 부실이 커서 30억원만 내버리고 두 손 들었죠.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했으니 대우가 망하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였습니다.”
김상무는 “대우가 무너진 한 이유는 사회 지배층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뜯어먹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 사례로 회장이 떠맡았던 각종 단체의 지원 사례를 꺼냈다.
“김회장이 바둑 좋아한다는 소문이 나는 바람에 한국기원 총재로 추대돼 10여년 동안 인연을 맺었습니다. 프로 바둑전을 하려면 스폰서가 붙어야 하는데, 바둑을 비롯한 기타 행사 스폰서 비용으로만 연간 수억원 이상 대우가 부담했습니다. 10여년간 매년 수억원 이상 나갔으니 이 돈만 따져도 수십억원이 넘어요. 축구협회 회장을 맡아 연간 수십억원 깨졌고, 아주대 건물 공사비와 병원 건설로 3천여억원, 대전대와 거제대 합쳐서 2백억~3백억원, 프로축구단 운영에 연간 50억원.... 이런 것을 헤아리면 머리가 돌아버릴 지경이었어요. 회사 경영에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한 채 돈만 뜯긴 셈입니다. 말하자면 대우는 거대한 사회복지재단이었던 셈이죠. 대우가 이런 비용을 경영 이익금으로 해결했다면 문제는 달랐을 겁니다. 대우는 은행 빚을 내서 지원했으니, 솔직히 말하자면 거지가 남의 돈 빌려다 허장성세한 겁니다. 금융기관들은 30년 동안 대우에 속아서 계속 돈을 퍼 주다 당한 거죠.”
-대우가 공익사업을 위해 그 동안 어느 정도나 비용을 지출했습니까.
“대우는 공익사업을 위해 각 계열사에서 갹출하여 매년 평균 1백50억원 이상의 기부금을 충당했는데, 30년간 줄잡아 4천억원 이상 돈이 빠져나갔습니다. 매년 20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만들려면 매출액 당기순이익률을 2%로 잡을 경우 1조원 이상 매출을 올려야 가능한 액수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비자금 없이 사업하기는 불가능하다고 봐요. 정부 관계자들을 만날 때 인사치레를 하면 아무래도 대화가 잘 통합니다. 봉투를 내밀었을 때 거절당한 경우는 10% 정도인데, 제 느낌으로는 그 10%도 인물이 강직하고 공명정대해서 거절하는 게 아니라 그릇이 적어서 거절하는 것으로 느껴졌어요. 먹고는 싶은데 받았다가 문제되는 건 아닐까 벌벌 떨면서 포기하는 겁니다. 인간은 다 눈 먼 돈을 좋아하게 되어 있어요. 특별한 이권이 걸려 있지 않을 경우 공무원들에게 건네는 보통 인사치레 액수는 3백만원 정도입니다. 수표는 절대 안 받으니까 현금으로 보내죠. 소액이라도 횟수가 많으면 더 짭짤하죠. 이것이 귀찮아서 한몫에 1천만원 정도 주면 절대 안 받습니다.”
“해외여행 때 끌고 다니는 가방에 1만원권으로 현금 5억원이 들어 갑니다. 전달은 주로 밤 늦은 시각이나 새벽에 집으로 보내거나 차 트렁크에 넣어 줍니다. 기업 입장에서야 떳떳하게 받고 화끈하게 도와주는 공무원이 가장 고맙죠. 공무원 중에는 술과 여자를 원하는 스타일, 현금을 선호하는 스타일, 덜덜 떨면서 못 받아먹는 스타일이 있는데 봉투를 안 받는 사람과는 일이 제대로 되지 않았어요.”
-우리나라는 권력과 재벌의 유착관계가 트레이드 마크처럼 돼 있는 나라인데 정치인들에게는 어느 정도 금액이 건너갑니까.
“정치인들에게 주는 공식 후원금은 회사에서 자금을 만들어 제공하고 영수증을 받습니다. 이런 자금은 합법적으로 자금을 모아서 영수증 받고 주는 것이니 아무 문제가 없어요. 몰래 정치인 만나 주는 것은 회장이 직접 하기 때문에 그 규모나 액수, 빈도는 전혀 모릅니다.”
-김회장은 왜 자신이 직접 위험을 무릅쓰고 배달을 했을까요.
“김회장은 누구도 믿지 않기 때문이죠. 때문에 뇌물사건이 터질 때마다 곤욕을 치렀어요. 한 번은 회장이 국방부 장관에 돈을 준 사건이 수사망에 걸렸는데 당시 김회장의 오른팔로 불리던 A전무를 불러 ‘당신이 준 것으로 하라’하고 입을 맞췄어요. 조사과정에서 잘못하다간 몇 년 형 떨어질 분위기가 조성되자 A전무가 ‘사실은 김회장이 주었다’고 실토했습니다. 화가 난 김회장이 A전무를 한직으로 좌천시켰는데 그는 술로 세월 보내다 간암으로 죽었어요. A전무 장례식에 끝내 회장이 나타나지 않았다더군요.”
***최용운씨 소설 <재벌에 哭한다>에서 발췌**
우리와 30년간 공범이며 종범 관계에 있던 정치인들은 국민의 분노와 이중 심리를 이용하여 우리 그룹을 나라 경제를 망친 범인으로 지목하더니 느닷없이 전에 없던 강력한 제재를 가하기 시작했다. 그 제재는 이미 죽은 시체에 채찍질하듯이 애면글면 지키고 있던 우리 그룹의 최후의 자존마저 잔인하게 짓밟고 말았다.
과거 우리의 경영 방식을 경외로운 시선으로 보며 박수 치고 목소리 높여 추켜세우던 그 많은 학자들과 언론들은 태도를 바꿔 주군의 경영 방식을 드러내 놓고 질타했으며, 끈끈한 유대를 앞세워 미래를 의논하던 관료들도 더는 우리 편이 아니었다.
육대주 그룹의 수십조 원에 달하는 부실 금융을 발표한 사람은 공교롭게도 예전에 그룹의 이사로 재직했던 관료였다. 그들은 수천억을 들여 투자한 최신 기계 설비를 중고 가격도 아닌 고철 가격으로 계산하고,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는 사람과 미래에 대한 이런저런 투자는 아예 포함시키지도 않았다. 그들에게 과연 세계 각처에 퍼져 있는 4백여 개의 지사와 현지 법인들을 종합 검토할 능력이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게다가 계산법은 기업 사냥꾼들이나 씀직한 후려치기에 다름 아니었다.
회장님은 상세히 모르시겠지만 비서실에 있다 보면 온갖 단체와 개인들로부터 지원 요청을 받습니다. 우리가 그들을 부르는 음어는 걸뱅이였습니다. 우리 그룹에 손을 벌리러 올 정도면 이미 세상에 이름 석 자가 자자하게 났을 텐데도 말입니다. 그 걸뱅이들에는 교수, 체육인, 예술인, 예비 정치인까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기업 활동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성급히 내리고, 그들을 회장님과 직접 만나지 못하게 하느라 온갖 재주를 부려야 했습니다. 때론 적선하듯 생색을 내며 푼돈을 내어 지원하는 척하기도 했고, 그들보다 더 힘센 전문가를 앞세워 막기도 했습니다. 무시당한 그들이 우리를 좋게 볼 리가 없겠지요. 실제로 우리가 비틀거릴 때 그들은 일제히 포문을 열었습니다. 계산도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문어발 경영을 했느니 무모한 도전이었느니 자전거 경영이었느니, 무차별 공격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과는 달리 언론과 경영학자들에게는 너무도 융숭하게 대했습니다. 제가 그만두기 삼 년 전만 해도 신문과 방송에 쓴 광고료가 수백억원이었습니다. 또 학자들이나 기자들, 유명 인사들이 육대주 국제경영 해외시찰단이라는 명목으로 쓴 돈이 수십억이었습니다.
들리는 풍문에 의하면, 주군은 귀국을 하려고 해도 정부가 나서서 말린다고 한다. 육대주 그룹 사장단 재판을 며칠 앞두고 주군이 귀국하기 위해 영국 히드로 공항에 나타났는데, 어찌 알았는지 대사관 직원들이 나와 비행기 탑승을 막았다는 것이다.
그래, 막으려면 막아 봐라. 그래도 주군은 들어올 것이다. 동물적인 위기 극복능력을 소유한 주군이 그깟 대사관 직원 몇이 막는다고 들어오지 못하겠는가. 두고 봐라, 이제 주군의 서슬 퍼런 양심선언으로 정치인과 관료들은 식은 땀을 흘릴 것이다.
***김우중씨가 9월23일 한국경제신문에 보낸 편지 전문**
많은 분들에게 걱정과 염려만을 끼쳐드린 채 낯선 이국의 하늘 밑에서 비탄과 회한,그리고 투병(鬪病)의 세월을 걸어온지 어언 2년여가 흘러가고 있습니다.
'죽기보다 사는 것이 더욱 용기를 필요로 한다'는 말의 의미를 절감하며 살아온 시간들입니다.
과정이야 어떻든 결과적으로 많은 고통과 혼란이 초래된 점 국민들 앞에 엎드려 사죄한들 가셔지기야 하겠습니까마는 절망의 가슴은 또 다시 송구스러움에 나락(奈落)으로 떨어지고 맙니다.
정 부장님을 비롯한 모든 분들께서 대우사태와 관련하여 진실을 찾아주시기 위하여 애써주시는 점, 너무도 큰 은혜로 생각하며 격려의 전언은 저에게 큰 위로가 되어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수많은 경영진과 직원들이 이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저 하나만 빠져 나와 있는 현실은 정말 가슴을 찢는 자괴(自愧)와 고통(苦痛)으로 저를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그룹의 해체라는 믿기지 않는 일을 당해야 했던 저 개인의 참담함과 분노는 차치(且置)하더라도, 오로지 수출한국의 기치 하나로 청춘을 불사르며 피와 땀의 노력을 아끼지 않고 묵묵히 소임을 다해온 이들이 희대의 범법자로 매도되며 영어(囹圄)의 고통을 당하고 있는 모습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제가 그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놓고 참으로 번민(煩悶)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우의 공과(功過)가 정당하게 평가되지 않고 오로지 매도 일변도로 모든 추악한 비난만이 저를 위시한 대우 임직원들에게 쏟아지고 있는 현실이 이젠 슬프기만 할 따름입니다.
내가 국제적 사기한(國際的 詐欺漢)이고 대우그룹이 범죄집단이었다면 어떻게 지금도 대우가 만든 마티즈 자동차가 로마 시내를 가장 많이 질주하고 있고, 전세계의 바다 위를 대우가 만든 수백척의 배들이 항해를 하고 있겠으며, 대우가 건설한 아프리카, 중동의 그 많은 고속도로 위로 차들이 질주할 수 있겠습니까.
분명한 것은, 대우의 성쇠(盛衰)에 관한 진실이 언젠가는 밝혀질 것이며 진실이 영구히 덮여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때문에 저는 오늘 참을 수 없는 감정(感情)을 드러내기보다 절제된 행동(行動)으로 모든 것을 기억하며 기다리고자 합니다.
'번영(繁榮)은 친구를 만들고 역경(逆境)은 친구를 시험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부장님과 한국경제의 모든 분들이 이 고난의 시절에 덮여진 진실을 찾기 위해 애쓰시며 보여주신 염려와 도움을 참된 우정으로 깊이 새길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대우 해체의 진실을 찾으려는 여러분들의 노력이 제 개인의 명예나 과거(過去) 따위의 복원에 도움을 주기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저는 이미 제 자신에 관한 모든 미련이나 원망은 버린지 오래되었습니다.
결과는 비록 참담하였지만, 저와 수많은 대우가족들은 한평생 '국가와 경제의 발전'이라는 일념 이외의 어떠한 사심(私心)도 탐하지 않으며 살아온 사람입니다.
혹독한 비난과 매도(罵倒)의 세월을 지나면서조차 나라를 생각하는 저와 대우가족의 마음에는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의 노고가 우리 경제에 자성(自省)과 경종(警鐘)을 울리며 새로운 기회와 활력을 찾는 출발점으로 기여해 주기를 진심으로 기대하며, 난관과 장애 속에서라도 더욱 객관(客觀)과 균형(均衡)의 시각을 견지해 주시기를 주제넘게 부탁드리고자 합니다.
한국경제신문사의 큰 발전을 기원 드립니다.
김우중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