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2019년은 어떤 한 해가 될까? 고등교육의 개혁을 위해 애쓰는 이들에게 내년에 꼭 이룰 일들로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
'촛불정부'로 자처하는 문재인 정부에게 내년은 큰 갈림길이다. 선거제도 개혁,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민생 문제 해결과 경제 활력 회복 등 주요 국정 과제에서 알찬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 2020년 4월의 총선 전망은 불투명해진다. 이처럼 엄중한 시기에 교육개혁의 과제 역시 보육부터 직업교육‧평생교육에 이르기까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올해 말 큰 사회적 파장을 불러온 사립유치원 비리가 잘 보여주듯이, 현장에 밝은 전문가와 이해 당사자들이 진지하게 머리를 맞대고 깊이 논의해야만 개혁 방향을 잡을 수 있을 만큼 중요한 과제마다 높은 난이도를 지니고 있다.
고등교육 분야에 국한할 때 2019년의 당면 과제는 무엇일까? 이 분야에 산적한 개혁과제들도 어느 것 하나 만만한 게 없다. 하지만 사학비리 척결과 '공영형 사학' 추진,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 제정, 고등직업교육의 혁신, 학술정책 수립이라는 네 가지는 활발한 공론화를 통해 탄탄한 사회적 공감대를 마련해야 한다.
이미 많은 이들이 사립유치원과 사립대학이 판박이와 다름없는 비리 구조를 지니고 있음을 지적했다. 실제 비리를 저지르는 사립대 '소유주'가 종종 중고교와 유치원까지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사학비리 척결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이미 나온 제보에 대해 교육부를 비롯하여 검찰 등 유관 기관들이 신속하고 철저하게 조사하여 처리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비리 고발에 지지부진한 대응이 이어져 오히려 내부제보자가 곤경에 빠지는 사례도 많다. 이를 적극적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또한 변호사, 회계사 등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상시 감사 체제가 교육부 관료들의 입김에서 자유로운 조직으로 설치되어야 한다. 이같은 교육부의 상설 감사단은 내부제보자를 보호하는 역할을 포함하여 대학개혁의 탄탄한 초석이 될 것이다.
사학비리 척결과 떼어놓을 수 없는 공영형 사학 추진사업은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 제정과도 밀접한 과제이다. 대학 운영의 공공성과 투명성을 보장할 수 있는 공영형 사학이 실현되어야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 제정의 사회적 설득력이 높아질 수 있다. 지금과 같은 현실에서는 비리사학도 여전하고 학령인구 급감 속에 위기에 처한 한계사학도 많아 사립대학의 다수가 운영이 불투명하고 비효율적인 '부실기업'과 다름없는 꼴이다. 결국 이런 대학들을 위한 정부 지원을 법적으로 보장하기 곤란하다는 기획재정부 등 정부 일각의 완강한 논리를 설복하기 어렵다. 물론 공영형 사학 추진에 따르는 재정 규모도 만만치 않아 이에 대한 관료들의 저항도 크지만, 일의 선후는 면밀하게 따져야 옳다.
고등직업교육 혁신은 내가 무지한 분야지만, 중요하기로는 다른 과제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다. 하지만 정부 정책이나 사회 여론은 4년제 일반 대학에 비해 전문대학에 소홀하거나 무관심하다. 교육부의 담당 인력만 꼽아 봐도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더구나 고등직업교육은 소관 부처가 전문대학을 관장하는 교육부와 한국폴리텍대학을 책임지는 고용노동부 등으로 나뉘어 있어 일관된 장기 정책을 펴기에 장애가 많다. 중앙부처 하나에 국한되지 않고 범정부적인 협력에 기반한 개혁 모델의 마련이라는 쉽지 않은 과제가 있다.
인공지능의 시대에 과거에는 상상하지 못한 일들까지 자동화되고 있고, 단순업무에 해당하는 일자리들은 가차없이 사라지게 마련이다. 결국 먼 미래를 내다보는 산업정책과 보조를 맞추면서 재교육과 직업전환교육을 포함한 우수한 교육훈련 써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평생교육 역시 젊은 시절 가난 때문에 제 때 공부하지 못한 한을 푸는 차원의 낡은 패러다임을 벗어나 인생의 각 단계마다 필요한 지식과 역량을 얻도록 하는 혁신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특히 이 분야에서는 고등학교만 마치고 취업하더라도 언젠가는 (전문)대학을 가게 되는 교육체제 설계가 절실해지고 있다. 이런 차원의 평생교육은 사실 4년제 일반대학 졸업자에게도 긴요해진지 오래이며, 중등학교 교육 개혁과도 긴밀한 연관을 맺을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학술정책 수립은 고등교육과 관련하여 그동안 본격적으로 떠오르지 못한 과제이다. 그러나 내년의 개혁 담론에서는 가장 치열하게 논의해야 할 주제라고 믿는다. 왜냐하면 최근의 강사법 논란이 입증하듯이, 한 나라의 학문연구와 연구자 양성 및 지원 전반을 설계하는 학술정책 없이는 더 이상 대학이라는 고등교육기관이 존립하기 어려운 심각한 현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1948년 정부 수립 이래 우리는 국가적 차원의 종합적인 학술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일관되게 집행한 후 그 성과를 평가하고 다시 새로운 학술정책을 수립하는 정상적인 국가 운영의 필수 업무를 제대로 해오지 못했다. 물론 1960년대 이래의 급속한 경제성장과정에서 적어도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학술정책, 인력양성정책은 강력하게 추진되었고, 그 결과 신생국가로서는 드물게 우수한 과학기술 인력이 양성되어 산업화를 이루는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그러나 과학기술 분야의 상대적 성공에 비해 인문사회과학 분야까지 아우르는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학술정책은 불균형하거나 사실상 부재한 상태가 이어져왔다. 과학기술 분야의 상당한 성과에 가려 기초적인 순수 자연과학 또한 내실있는 학술정책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학술정책의 부재 상태는 사실은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선진국을 따라잡을 때 유효했던 추격형 모델이 힘을 잃은 현실에서 과학기술 분야 역시 낡은 모델을 넘어서는 탈추격형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노벨상 타령이 그 병적 증상의 하나이다.
학술정책, 고등교육 정책에 관해 현 정부는 별다른 비전과 계획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고등교육의 방기라고 해도 좋을 이러한 정책 공백 내지 정치적 냉담은 2020년 21대 총선에서 수구냉전세력을 해체로 몰아넣는 대승을 거둔다고 해도 크게 달라지기를 바라기 어렵다. 결국 우리 학문 사회가 주체적으로 학술정책, 고등교육 정책을 한목소리로 요구할 필요가 절실하다. '학문 기본법'(가칭)을 포함한 학술정책 수립에 대한 요구가 아무리 명분이 있고 타당하더라도 우리가 수혜 당사자인 한, 우리 스스로 집요하게 움직이지 않으면 변화는 오지 않는다.
여기서 가장 힘주어 강조할 점은 학술정책 수립의 우선적인 정책 효과가 각 분야 신진 박사와 미취업 박사들의 일자리 마련을 겨냥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부나 한국연구재단, 기타 정부기관의 관료주의에 휘말리지 않으면서 박사들이 안정적으로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이제 이 문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만큼 학문사회를 낭떠러지로 몰아넣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개정 강사법을 악용하여 대학을 더더욱 기형적인 모습으로 몰아넣는 세력들이 눈앞에서 활개치고 있지 않은가.
보육과 초·중등교육 분야에도 해결할 당면과제가 많은 상황에서, 고등교육 분야에서 사학비리 척결과 공영형 사학 추진,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 제정, 고등직업교육의 혁신, 학술정책 수립이라는 네 가지 과제는 마음이 무거워질 정도로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 난제들이 해결의 실마리를 잡으면 다른 분야에 미칠 긍정적 파급효과가 엄청나다는 사실에 새해의 큰 희망을 찾아야 한다.
* 본 칼럼은 민교협의 공식의견이 아님을 밝혀둡니다. 필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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