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자신의 정치적 색깔을 돋보이게 하는 정치적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브랜드화 하는 작업은 정치적으로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상당히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소위 시대의 정신을 담은 브랜드를 통해서 국민들에게 자신들의 정책적 지향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행위는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기능을 한다. 그리고 정권 수뇌부에 의해서 확정된 브랜드는 전(全) 정책의 영역으로 확산되는데, 복지정책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나라의 역대 정권만 하더라도, 국민의 정부에서는 생산적 복지, 참여정부에서는 참여복지, 그리고 이명박 정부에서는 능동적 복지 등을 주창하여 나름대로 정권의 성격에 맞게 복지정책을 규정해왔다. 하지만 현 정부는 자신의 정권적 속성을 표방하는 브랜드로서 맞춤형 복지를 주창하는 것을 넘어서서, 이 틀에 맞춰 기존의 복지제도를 분해하고 해체하여 재구조화하려는 뜻을 숨기지 않고 있다.
이러한 현 정부의 맞춤형 복지의 첫 번째 실험대가 바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이다. 주지하다시피,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헌법에서 규정한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제도적으로 구현한 최초의 법률로서, 이 법을 통해서 비로소 국민은 정부로부터 최저생활을 보장받게 되었다. 바야흐로 우리 사회에서도 '사회권의 시대'가 열린 셈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한번 누린 권리는 절대 양보하지도, 포기하지도 않고 지속적으로 발전한다는 '불가역성의 명제'를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하지만 예외 없는 법칙은 없다고, 지난 14년간 한국 사회 최후의 안전망으로 굳건한 버팀목 역할을 했던 '기초생활의 보장'이 현 정부의 맞춤형 복지에 의해서 흔들리고 있다.
현 정부는 인수위 시절부터 기존의 저소득층을 위한 급여체계를 근본적으로 개편한다고 공언했고, 개편을 이끄는 두 개의 축으로 '생활영역별 맞춤형 급여체계 구축'과 '일을 통한 빈곤탈출 지원'을 설정한 바 있다. 물론 이러한 급여체계의 개편에는 나름대로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특히 맞춤형 급여체계가 제대로만 운영된다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되어 왔던 "All or Nothing(수급자는 7종 급여를 받지만 수급자에 탈락하면 아무 급여도 받지 못하는 현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개편의 전망은 그저 희망사항일 뿐, 현실세계에서는 '기초생활의 보장'이라는 대의를 저버리는 매우 왜곡된 형태로 진행될 우려가 짙다.
이러한 우려의 이면에는 '맞춤형 급여체계'와 쌍을 이루는 다른 한 축인 '일을 통한 빈곤탈출 지원'이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말이 좋아 일을 통한 빈곤탈출 지원이지, 실제로는 기초수급자를 근로능력 유무 기준으로 구분하여, 근로능력자는 생계급여 대신 자활급여 등만 지원하는 별도의 급여체계가 될 공산이 매우 크다. 이러한 우려는 인수위에서 근로능력자를 현행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테두리에서 보호하지 않고 별도로 '(가칭) 빈곤예방 및 탈출을 위한 저소득층 자립지원법' 제정을 추진한다고 공언하면서 현실화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근로능력 유무와 상관없이 기초적인 생계를 보장하는 최후의 소득안전망으로 기능해왔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시대는 막을 내리고, 전통적인 노동 불능자들만을 최소한으로 보호했던 생활보호제도의 시대로 후퇴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정부의 맞춤형 복지제도와 일을 통한 빈곤탈출 지원은, 온갖 미사여구로 치장해도 결국 핵심은 근로능력이 있는 가구원이 포함된 빈곤한 가구에게 최저생계를 영위할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고, 이는 결국 전근대적인 생활보호 시대로의 회귀를 의미한다.
게다가 인수위의 제안대로, 중위소득을 기준으로 생계, 주거, 교육, 의료급여별로 독자적인 선정기준과 지원내용을 가진 '맞춤형 개별급여 체계'로 전환할 경우, 이 과정에서 현행 기초생활 수급자 중 일부는 수급을 박탈당하는 결과가 초래될 것이다. 이는 결국 우리 사회에서 '국민의 기초생활 보장'이라는 대의가 부정되는 것이다. 하지만 기초생활의 보장이 부정된 맞춤형 복지제도는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에 지나지 않으며, 이는 마치 아랫바지는 제대로 입지 못한 채, 윗도리만 맞춤형으로 멋있게 갖추어 입은 꼴불견의 형상에 다름 아닌 것이다. 이런 모습으로 앞으로 한국 복지국가의 미래를 어떻게 건설할 것인가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개편 논란을 지켜보면서 드는 더욱 큰 우려는, 개편의 내용보다도 그 방식에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어찌 보면 한국 복지국가의 근간을 흔드는 이렇게 중대한 제도적 변화를 염두에 두고 있으면서 국민들을 상대로 공청회 한번 개최하지 않은 것은 책임 있는 정부의 태도가 아니다. 이러한 소통의 부재는 온갖 오해와 왜곡의 온상이 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이제라도 현 정부는 맞춤형 복지제도로의 개편안에 대해서 국민들에게 솔직하게 밝히면서, 이해를 구할 것이 있으면 구하는 소통의 자세를 갖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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