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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 시대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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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 시대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시민정치시평] '좋은' FTA를 위하여!

인간의 사회생활에서 제도는 필수적이다

인간은 로빈슨 크루소처럼 홀로 살지 않고 집단을 이루며 생활한다. 여기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을 조정하기 위해 인간은 다양한 장치를 설계한다. 물론 그러한 장치가 합리적일 수 있지만 비합리적인 것도 적지 않다. 대략 이를 '제도'라고 부르는데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에게 제도는 필수적인 존재다. 누군 자연이나 무정부 등 '제도적 진공상태'를 동경하나 제도 없이 인간은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없다. 그 때문에 그루치(A. Gruchy)는 인간을 제도적 존재(Homo institutionalis)로 부른 것이다.

대표적인 제도적 장치로 국가를 꼽을 수 있다. 그것은 법, 정치체제 등 '형식적' 제도를 마련한다. 국가는 강력한 권위와 폭력으로 사회를 유지한다. 하지만 모든 제도가 이처럼 형식화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습관, 세계관 등 문화는 형식화되지 않는 제도다. 진화경제학자 소스틴 베블런(Th. B. Veblen)은 경제생활에서 차지하는 문화와 같은 '비형식적' 제도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문화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사회구성원을 결속시켜 준다. 국가와 문화는 인간의 사회생활에서 필수적인 제도다.

제도는 국민적으로 다르다

그런데 역사적 경험과 기술적 조건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문화는 국민적 성격을 띠게 된다. 이로써 서로 다른 국민적 문화가 등장한다. 오랜 역사적 과정을 거쳐 형성된 문화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국가의 경우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동일한 문화적 환경 속에서도 집단 간 이해관계와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갈등이 일어난다. 그러한 갈등의 해결방식은 나라마다 다르다. 국가도 국민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의 사는 방식이 같지 않는 것과 같이, 그 나라에 특수한 갈등해결방식이 다른 나라의 그것과 같을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특히 문화적 코드가 작용할 때 더욱 그렇다. 국민문화와 국민국가, 곧 국가 간 상이한 제도가 형성되는 동시에 그것의 변화가능성도 극히 제한되는 것이다. 이로써 한 국민국가의 제도는 '경로의존적으로' 진화한다.

한미 FTA는 나쁜 제도를 강요한다

제도는 인간의 행동을 제약하거나 촉진한다. 그것은 교역과 같은 경제적 상호작용방식은 물론 사회적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독과점금지제도처럼 형식화된 제도가 마련되어 있으면 대기업의 불공정거래관행이 제약을 받게 되고 비형식적 제도 중 사회적 연대의 문화가 지배적이면 시민들은 조세납부에 적대적이지 않게 된다. 아무도 이러한 제도들을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 때문에 나는 그것을 '좋은' 제도라고 부를 것이다.

물론 모든 제도가 이처럼 공정성과 사회적 연대를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그와 달리 지난 이명박정부의 제도처럼 오히려 그것을 훼손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제도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간의 사회생활을 짐승의 무리로 변질시킨다. 그것은 인류의 지성들이 고민해 오고, 많은 사람들이 피 흘려 건설하고자했던 제도가 아니다. 그것은 '나쁜' 제도다.

제도는 자연법칙에 의해 생성되었거나 외부주체에 의해 주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행위자의 조형물이다. 따라서 한 나라가 좋은 제도를 취할 지 나쁜 제도를 취할 지 여부는 그 나라의 집단적 행위자들의 문화적 습성과 정치행위에 좌우된다.

같은 자본주의라도 제도는 나라마다 다르다. OECD 국가들에 관한 제도경제학자들의 실증연구결과들은 최대 여섯 가지의 국민적 제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데 가장 간단하게 2개의 제도구조로 구분할 수 있다. 예컨대, 유럽에 지배적인 '조정시장경제'와 미국을 필두로 하는 '자유시장경제'가 그것이다.

유럽식 조정시장경제는 자유시장이 적지 않은 결함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철학 위에 서 있지만, 미국의 자유시장경제는 자유시장이 완벽하다는 철학 위에 서 있다. 미국식 제도는 공공성의 영역을 끝없이 시장관계로 편입시키고 국가의 역할을 축소시키고자 한다. 그것의 결과는 민영화와 제도의 공동화다.

유럽사회에서 사람들은 비교적 평등하게 산다. 반면 미국의 불평등도는 OECD 국가 중 가장 후진국에 해당하는 멕시코, 터키 등과 함께 가장 높다. 유럽에 살아보면 알겠지만 그곳은 사회보장은 물론 의료와 교육의 측면에서 가난한 사람들도 비교적 살 만한 곳이다. 약 20년 전 가난한 유학생이었던 나는 당시 돈으로 한 학기에 약 2만5000원의 학비만으로 독일대학의 석·박사과정을 공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지방의 한 작은 대학에서 불우한 환경 때문에 올바른 공부경험을 해 본적이 없는 학생들에게 학문의 방법을 가르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그것만이 그 제도에 보답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미국사회의 의료보험제도는 형편없다. 가난한 사람들은 병을 고치기보다 참아야 한다. 하지만 질병의 고통은 인간에게 평등하다. 유학시절 내 아들은 갑작스런 사고로 거의 죽을 뻔 했다. 하지만 가난한 우리는 최고 수준의 국립병원에서 치료를 받아 아들은 지금 훌륭한 시민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다. 특출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노력의 결과를 사회에 환원하고자하는 생각이 투철하다. 사회적 연대의 혜택을 톡톡히 체험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불된 치료비 액수가 너무 작아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나는 독일의 이런 제도를 매우 '좋다'고 생각한다. 이런 좋은 제도에 비하면 미국의 국민적 제도는 매우 나쁘다!

FTA를 거부할 수 없다면 '좋은' FTA를 설계하자

▲ 최근 몇 년간 국가간 자유무역협정(FTA)이 활발하게 체결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최근 몇 년간 국가간 자유무역협정(FTA)이 활발하게 체결되고 있다. FTA는 문자 그대로 국가간 교역의 자유화와 확대를 표방한다. 하지만 FTA는 교역의 자유화 그 자체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한 나라의 산업구조, 산업조직, 작업방식은 물론 제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FTA는 교역보다 오히려 제도의 변화와 더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까지의 FTA 논쟁은 지나치게 교역규모의 측면에 치중하고 있다.

한미 FTA는 국가의 약화와 제도의 공동화를 강하게 요구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것도 우리의 제도를 미국식 제도에 대해 맞추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미국식 제도는 '나쁜' 제도다. 그러한 제도는 인간에게 좋지 않다. 이런 사정 때문에도 우리는 FTA를 특별히 제도적 관점으로부터 조명할 필요가 있다.

국가간 교역이 이루어지는 것은 자본주의 시장에서 자연스런 현상이다. 나아가 교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져 그 규모가 증가하는 것도 거의 법칙적이다. 그것은 자본주의 '이후 단계'에서도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따라서 교역의 자유화를 막기도 힘들 뿐 아니라 막을 필요도 없다. 2012년도 세계무역규모 8위를 차지하는 한국이 그러한 흐름을 거역하는 것은 별 설득력이 없다.

경제활동의 최종 대상은 사람이며, 최종 목적은 사람들의 좋은 삶과 존엄이다. 그런데 대다수 사람을 살리지 못하고 나쁜 삶으로 몰아가며, 궁극적으로 그 존엄을 모욕하는 미국식 제도가가 우리의 좋은 삶을 실제로 위협하고 있다.

하지만 상이한 국민적 제도가 반드시 같아질 필요는 없다. 뿐만 아니라 그것의 경로의존성 때문에 같아지기도 어렵다. '벤치마킹'은 더 큰 조정비용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제도는 인간의 산물이다! '국민적 행위자'들의 문화와 정치행위가 전제되는 한 그들이 미국식 국민제도에 순응하리라는 보장은 없으며 미국의 나쁜 세계화를 기꺼이 받아들일 가능성도 희박하다. 마지막으로 미국식 FTA가 지향하는 '제도적 진공상태'는 제도적 존재로서의 인간본성과도 어긋난다.

교역의 효과는 FTA의 찬성론자와 반대론자들이 주장하듯이 법칙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다. 교역의 자유화로 인해 우리 제도가 미국식 나쁜 제도로 될 수 있지만 유럽의 좋은 제도로 될 수도 있다. 우리에게도 국민건강보험제도와 같은 좋은 제도가 있지 않는가! 그리고 스웨덴, 네덜란드 혹은 독일처럼 개방경제와 좋은 제도가 공존하는 나라들도 많다. 이러한 나라들의 경제는 매우 개방화되어 있다. 하지만 적극적인 교육정책과 직업훈련정책으로 노동시장의 안정을 유지할 뿐 아니라 노동자의 혁신역량도 강화시켜 나가고 있다. 또 복지정책으로 사회안전망을 마련해 주고 있지 않은가. 개방이 필연적으로 국가역할의 약화와 제도의 공동화, 나아가 나쁜 경제로 이어진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개방과 좋은 제도, 좋은 정부 그리고 좋은 경제는 양립할 수도 있다.

이제 무작정 반대하기보다 '좋은' FTA를 생각해 봄이 어떨까? 좋은 FTA! 그것은 FTA를 기반으로 사람들의 행복을 증진하는 좋은 경제로 만들 의지를 우리가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 좋은 FTA는 시민들의 성찰과 국가의 제도를 반드시 필요로 한다. 시민들이 깨어 있지 못하고 국가의 제도적 장치가 훼손될 때 그것은 나쁜 FTA로 진화하여 공동체구성원들에게 나쁜 삶을 얼마든지 강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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