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양극화로 광범한 빈곤층을 형성하여 사회적 갈등과 대립을 분출시키고 자원의 낭비를 초래하여 환경을 급격하게 오염시키면서, 사회적 생태적 지속조건을 위태롭게 만든 자본주의의 폐해를 극복하려는 노력은 인류가 푸른 행성(blue planet)이라고 불리는 지구에서 지질학적 기간만큼 생존을 유지할 수 있는지 여부를 결정하는 근본적 주제이다.
자본제가 야기하는 상기의 병폐를 해결하려는 다양한 노력들을 살펴보기 이전에, 우선 우리 사회 내부에 존재하는 몇 가지 개념적인 혼선에 대해서 먼저 언급하고자 한다.
한국전쟁을 치른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지나친 우익적 반공사고와 이에 기초한 지난 세월의 교육과정으로 대부분의 시민들은 자본주의만이 시장경제를 신봉하고 사회주의는 오로지 계획경제를 추구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잘못된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소비에트의 진행과정을 보면 초기 혁명의 시기에는 레닌을 중심으로 분명하게 시장경제를 도입하고자 노력했으며, 계획경제라는 제도는 스탈린의 독재체재에서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획일적으로 적용되어 왔음을 살펴볼 수 있다. 물론 사회주의와 중앙적 계획경제가 서로 친화성이 강하고 자본주의는 이익실현을 위하여 자유시장적 성향을 매우 선호하는 것도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역사학에 지경학적 조건을 강조했던 페르낭 브로델이나 정의론이라는 탁월한 저서를 통하여 현대 복지체체의 철학적 기초를 제공한 존 롤스 등 공히 세계적인 석학들은 시장경제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모두에게 중립적으로 적용이 가능한 열린 기제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한반도로 시각을 돌리면 남한은 시장의 균형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는 사회가 아니라 기득권과 특혜층의 과다한 지위와 독과점으로 시장이 전혀 제 역할을 못하는 천민적 자본주의 사회로 변질되었으며, 개방과 경제발전의 길로 나서는 북한의 경우에는 향후 추진의 계획 및 과정에서 여건과 상황에 맞는 시장기제를 적시에 적용하는 것이 사활적 주제로 등장하고 있다.
또 한가지 언급하고자 하는 것은 투자와 투기에 관한 것이다. 왕왕히 필자가 만나는 전문가연(然) 하는 많은 분들 중에 투자에는 투기적 성격이 혼재되어 있고, 투기 역시 투자적 기능을 가지고 있어서 상호 교집합적 성격의 투자와 투기를 구별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듯이 투기에 관대한 사고와 무비판적 관행으로 우리사회는 최악의 부동산 투기공화국으로 변질되었고 주변에서 벌어지는 각종 지대추구적 부패 행위에 눈을 감으며 자신도 점차 같은 행위에 젖어 들면서 시민 대부분이 함께 공범자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 한국적 현실이다.
자본의 자기증식, 탐욕적 매카니즘의 눈으로 보면 투기이든 투자이든 어떤 방식과 수단을 통해서라도 이익을 실현하면 그만인 셈이다. 자신의 이익 실현을 위해서는 타자의 고통과 피눈물을 외면하고 오로지 회계학적 수치로서 수익이라는 결과만을 추구하는 행위를 우리는 통칭 신자유주의적 수탈과정이라고 칭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의 시각에서는 투기와 투자를 구별해야 할 하등의 필요와 이유가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에 공동체적 질서와 규범을 중시하는 입장에서 보면 투기와 투자는 명명백백히 서로가 다른 것이다. 투자는 경제 순환적 영역에서 행위를 통하여 추가적인 부가가치를 생산하고자 하는 노력이며 실현된 가치를 기여에 따라 배분하는 윈-원(win-win)의 선순환적 주제인 반면에, 투기는 자신만의 이익을 위하여 타자의 몫을 빼앗는 정글법칙과 같은 반인륜적 반규범적이며, 상생이라는 공동체적 규칙을 어기는 사회적 범죄행위에 해당한다. 이러한 관점에 서면 투기와 불로소득에 의해서 형성된 소득은 사회적 합의와 강제를 통하여 환수하여 공동체 모두를 위한 자원으로 재사용되어야 마땅하다.
가장 먼저 사회주의 이론가들인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조국, 독일 사민당의 지난 140여 년의 궤적을 살펴본다. 때마침 필자와 70년대 민주화 운동과정을 공유했던 전종덕 동문과 독일 훔볼트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김정로 박사가 공저로 엮은 ‘독일사회민주당의 역사’는 매우 소중한 길라잡이 역할을 한다. 1875년 5월 독일노동자협회와 사회민주노동자당이 통합하면서 출범한 사회민주당(SPD)은 강령 중심의 정당이다. 사민당 강령의 변천사는 고타 대회에서 시작하여 수 차례의 수정과 수정을 거쳐 마지막으로 슈뢰더에 의해 주도된 함부르크 대회까지 한세기 반에 걸쳐 시대 상황에 응동하면서 토론과 실천, 전진과 후퇴를 반복해 온 기록들이다.
강령들의 내용에는 흐름의 부침은 있었지만 대체로 ‘공장 안의 민주화’라는 구호와 주요 ‘생산수단의 공유제’라는 사회주의적 주장에서 출발했지만 점차 자유주의에 기초한 시장적 기제를 인정하는 흐름으로 변화하면서 마침내는 중도의 길이라는 명분으로 신자유주의와 타협하여 현재의 모습에 이른다. 초기에는 창당 정신인 사회주의 원칙을 고수한다는 입장을 지켜오다가 히틀러의 시대를 초래하는 비극을 겪었으며, 종전 이후 재건의 과정에서 미국에 의해 주도된 마샬 플랜의 영향과 라인강의 기적이라는 경제적 성과에 따라 1959년 고데스베르크 강령을 통하여 노동자 계급정당을 포기하고 광범한 중산층을 포용하는 시민정당으로 변모하여 집권의 기반을 닦기도 하였고, 브란트의 동방정책을 지지하면서 통일 독일의 기초를 마련하였고 슈미트 집권시기에는 복지체계를 완비하고 기민기사당과 협력을 통하여 노사간 공동결정방식을 광범하게 적용하면서 세계적으로 진보정당의 흐름을 주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90년 동독과 통합으로 인한 부담과 때마침 찾아온 경제적 위기를 돌파하는 과정에서 당내 강경파와 온건파가 갈라섰고, 슈뢰더라는 새로운 새대의 지도자가 등장하여 신중도주의를 선언하며 워싱턴 컨센서스를 선언한 미패권주의와 일정 범위에서 타협하면서 점차적으로 신자유주의를 수용하였다. 슈뢰더는 주지사로 있던 당시 니더작센 지역에 입지한 폭스바겐이 한때 심각한 경영의 위기에서 되살아나는데 크게 기여한 하르츠 노동이사의 기획인 ‘견딜만한 조건’을 독일 전(全) 산업과 사회로 확장하면서 일견 기업이익이 늘어나고 산업이 활력을 더하면서 독일이 세계적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한 모범적 사례로 회자되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복지체계가 약화되고 일하는 가난 계층(working poor)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노동자 계층과 서민 그리고 동독주민들에게 외면 당하면서 최근 몇 개 주선거에서 보듯이 이제 사민당은 제3당으로 전락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다.
필자의 시각에는 하르츠 개혁은 일시적으로 위기에 처한 폭스바겐이라는 특수한 조건의 개별 기업을 회생시키는 데는 매우 훌륭하게 작동하였으나, 슈뢰더는 이를 무리하게 독일사회 전반에 일반적으로 적용하면서 진보성을 담보하고 주도해 왔던 사민당의 역사와 정책을 스스로 배신하는 오류를 범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전횡적 세계지배와 신자유주의의 거대한 흐름 속에 프랑스와 영국 역시 구호와 배경을 달리하면서도 독일의 사민당과 비슷한 경로를 거치면서 진보적 정당들이 활력을 잃고 역사의 현장에서 사라질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 특히 강대국 대열에서 탈락하며 조락의 과정에 들어선 영국의 경우, 블레어 집권 당시 노동당은 마치 대처수상의 노선을 부활시키려는 듯 신자유주의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제조업을 무시하고 엔지니어링을 포함한 서비스업과 금융업 중심으로 경제정책을 전개해 갔다. 그러나 조락의 흐름을 역전시키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에서 무책임한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고자 경제적 어려움의 원인을 유럽연합으로 돌리면서 선동적인 국민투표를 통해 유럽연합의 탈퇴(브렉시트, BREXIT)를 결정했다. 대서양 양안과 산유국 중동지역의 수요에 의해 활발하게 성장해 온 금융업이 경제의 중추 역할을 하여 왔으나 브렉시트가 실제로 이루어지면 해외수요의 대부분이 빠져나가는 위기에 처해질 것으로 전망되면서 영국은 앞날을 보장할 수 없는 진퇴양란의 처지에 빠져 들고 있다.
눈여겨 볼만한 사항은 독일 기민기사 연합의 역사로 전후 경제복구의 과정에서 비록 미국의 마샬플랜의 덕분에 급속한 성장을 이룰 수 있었지만 (신자유주의의 태두로 알려진) 하이에크과 동문수학했지만 그와는 달리 공동체적 경제론을 제시한 오이겐 등의 이론을 받아들여 질서자유주의를 도입하고 시장에서 성취한 성과를 사회적으로 공유하는 사회적 시장경제를 강력하게 추진하면서 라인강의 기적을 이루는 주체가 되었고, 여전히 주요산업의 국유화를 주장하던 사민당과 타협하면서 독일 특유의 노사간 공동결정제도를 함께 도입하였고, 신자유주의를 수용하여 우측으로 한참 이동한 슈뢰더 정권과는 반대의 방향으로, 메르켈 정부는 오히려 기민기사연합의 정책을 좌측으로 이동시키면서 사회경제 운용의 성과로 형성된 자원으로 변방의 가난한 서민들을 끌어안는 포용정책을 강력히 추진하였다. 이 과정에서 기존 중도의 사민당 지지층을 흡수하면서 방향을 상실한 사민당을 대신하여 통일독일의 좌표를 분명하게 제시하여 왔다. 최근의 이민문제로 민족주의 성향의 제3 당들이 부상하고 있지만 기민기사당은 여전히 독일 정치의 주류로서 역할을 다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유럽대륙과는 달리 소비에트와 국경을 접하면서 민족국가로서 위기를 경험한 북유럽 국가들은 일찌감치 자본제와 사회주의 경제를 혼합한 형태로서 독특한 사회경제체제를 발전시켜 왔다. 스웨덴의 경우, 1930년대 사민당이 집권하면서 잘쯔바덴 협약으로 알려진 사회연대임금 도입에 성공하고 ‘국가의 목표는 인민 모두를 위한 집’이라는 정치적 방향을 분명히 하면서 복지국가의 기틀을 잡아 갔고, 걸출한 인물들 이었던 비스포르그와 구스타프 물러 등이 상호 경쟁하며 사회경제정책을 진보적으로 이끌어 왔으며, 뮈르달 부부가 인구문제를 제기하면서 젠더와 산업적 변화에 대응하는 사회공학적 접근이 가능했고, 렌-마이드너 정책을 통하여 혁신정책과 적극적 노동시장 및 평생학습체제가 도입되면서 복지와 산업 분야에서 세계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유지하는 국가로 성장해 왔다. 이러한 북유럽 국가군의 성공을 역동적 노르딕 복지모델이라고 칭하고 있다.
성공요인은 다양하게 논할 수 있을 것이다. 민족적 전승과 역사적 배경, 소비에트 등장이라는 지정학적 위협에 대한 대응, 지식인들이 대거 참여가 가능했던 열린 정치시스템, 자본가와 전문경영인들이 보여준 협조적 사회협약, 변화하는 상황에 대처하는 적절하고 유연한 대응능력, 70년에 걸친 장기간 진보정당의 집권으로 가능했던 사회경제적 정책의 일관성, 시민사회가 정치권에 보여준 높은 신뢰수준 등 많은 긍정적 요소의 결합을 나열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북유럽국가들의 성공이 다른 나라에도 적용할 수 있는 일반적 모델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위에서 언급한 독특한 성공적 요소와 배경을 다른 국가군이 쉽게 갖추기 어렵다는 현실적 여건과 더불어, 이들 규모가 천만을 넘지 않는 인구 소형국가라는 점에서 수천만 수억을 헤아리는 인구의 중대형 나라에도 적용이 가능할는지, 역동적 복지국가를 형성하던 시기는 국민국가 단위의 경제 운용이 가능했던 시기였던 반면에 이미 세계화된 조건이 보편화된 현 시점에서도 이를 실현할 수 있을지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이들 국가군 역시 세계화의 물결과 유럽에 몰아 닥친 이민 문제로 우익적 민족주의가 대두되면서 독일과 프랑스처럼 진보정당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제2차 대전 이후 사회주의 국가를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들은 미국이 설정한 워싱턴 룰에 의해 정치군사적으로 편입되고 1980년 이후 워싱턴 컨센서스로 불리는 자유시장주의와 세계화의 결합으로 형성되는 중력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사회경제적으로도 미국에 의해 일방적인 종속을 강요당하여 왔다. 더구나 소비에트 붕괴 이후에는 제동장치가 없는 상태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전일체제가 더욱 노골적으로 세계를 지배하여 왔다. 그나마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몇 개의 미들파워 국가들이 나름대로 독자적 영역을 형성하고 자본제를 넘어서려는 노력을 펼쳐 왔으나 그 영향은 제한적이고 그나마 현재 심각한 위기의 과정을 겪고 있는 셈이다.
물이 차면 넘치고 보름이 지나면 그믐달로 기울듯이 한때는 이데올로기의 종말을 운위하며 영원히 지속할 것처럼 보였던 미국 중심의 자본제적 전일체제는 1997년 아시아의 경제 위기를 예고편으로 하여 급기야 2008년 월가의 금융위기를 시작으로 유럽 몇 개 국가들을 부도상황으로 몰아가면서 자신의 한계를 드러냈다. 이후 10 년이 넘도록 여전히 세계경제 전반에 대한 해결방향과 미래전망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통화의 양적완화라는 산소호흡기에 의존하여 왔다. 이를 새로운 사태 뉴노멀(New Normal)이라고 명명하면서, 다양한 원인 분석을 내놓지만 여의치 못하다. 일시적이며 예외적 상황으로 보는 블랙스완(black Swan) 이론, 중장기적 조정이 필요하다는 팻테일(fat tail, 통계분포상)이론, 다시 케인즈 이론으로 해결이 가능하다는 신국가개입 이론 등이 등장하고 있지만 모두 확실한 가능성을 보여주지 못하는 상태이다.
미증유의 혼돈과 불가측 시대를 맞이하면서 전후 미국이 중심이 되어 형성된 국제적 기준과 합의는 힘을 잃고 편협한 민족주의가 다시 활개를 치는 즈음해서, 트럼프 미국대통령의 등장으로 군사력에 의존하는 현실주의와 미국우선의 통상주의가 전세계를 휩쓸고 압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미국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기둥을 스스로 흔들어 부수는 형세이다.
이러한 세계사적 위기의 국면에서도 아래처럼 몇 가지 새로운 가능성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우선, 미국 중심의 자본제적 전일체계에서 예외적으로 사회주의 방식으로 살아남은 국가들인 쿠바와 중국의 예를 들어 볼 수 있다. 쿠바는 미국의 턱밑에서 행해진 완벽한 봉쇄와 고립이라는 조건 속에서도 생태적인 유기농업을 도입하여 자급자족적 경제를 유지 발전시켜온 것에 대하여 미국의 통제하에 있는 유엔조차도 가장 모범적인 생태 순환 국가의 모델로 인정하고 있으며, 예방의학을 기본으로 철저하게 주민중심 체계로 전개한 보건의료 분야에서도 가장 보편적이며 효과적인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세계인의 찬사를 받고 있다.
현재적 사회주의 국가 중국은 40년 전부터 시장경제를 도입하여 개혁개방을 실천해온 이래, 농민을 중심으로 8억 명의 인구를 빈곤으로부터 해방시켰고 2020년에는 빈곤지수 제로를 목표로 설정하면서 소강사회로 진입을 공식적으로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세계화가 크게 공헌한 것이 있다면 중국이 WTO체계에 가입하는 것을 허용하면서 경제대국으로 가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PPP 기준으로는 이미 미국을 훌쩍 뛰어넘은 14억 인구대국 중국이 세계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은 20%를 넘어서고 있고, 특히 한중 수교이래 한국경제에도 엄청난 기여를 해온 셈이다.
사회주의 중국의 성공적 비결에는 당연히 등소평이 추구해온 개혁개방 정책을 으뜸으로 뽑지만 동시에 이를 가능하게 한 모택동의 자력갱생의 자주적 원칙 역시 재평가되어야 한다. 만약 모택동 시절 미국의 유혹에 내부적인 준비도 없이 순진하게 자본제적 체제로 편입이 되었다면, 오늘의 중국 모습 대신에 남미의 브라질에 가까운 결과를 보였을지 모를 일이다. 모택동과 등소평은 각자가 처한 시대에서 요구하는 소명에 충실했던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지난 40년간 형성된 중국의 경제시스템을 국가자본주의로 볼 것인가 또는 사회주의 시장경제로 평가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주제이고 필자의 능력을 넘어서는 일이다. 다만 지난 시기에는 자본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출발선에서부터 국가가 주도적으로 자본주의를 도입하여 필요한 자본을 축적해 온 국가자본주의적 성격이 강했다면, 시진핑 집권 이후에는 자본제적 병폐가 도처에서 발생하고 부패가 만연하면서 공산당의 중심역할을 다시 강조하는 사회주의에 방점을 두는 것으로 판단된다. 아무튼 시장경제는 사회주의에게도 중립적으로 적용 가능하다는 브로델과 롤스의 주장이 현실로 입증된 셈이다
또 하나의 유의미한 흐름은 통칭 사회적 경제의 영역으로 불리는 다양한 활동 들이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필자가 2017년 1월에 쓴 ‘사회적 경제에 대해서’라는 칼럼에서 상술한 바 있다 (☞관련기사 : 지금과는 다른 삶, 사회적 경제)
다만 새로운 시도의 흐름들이 종업원 지주회사, 노사경영참여, 사회적 기업, 마을기업, 각종의 협동조합, 그리고 임팩트 금융, 클라우드 편드를 통한 시민자본 등 여러 형태와 성격으로 편재하면서 성격과 방향이 매우 모호해지고 전망이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제3 섹타 경제론은 이러한 사회적 경제 영역의 성격과 방향을 재구성하고 정치적 의지와 정책을 통하여 자본제하에서 상실되었던 인간적 존엄과 가치 사회적 상호성과 관계를 회복하고, 개인과 사회 공히 자유 그리고 해방의 영역으로 나가고자 하는 제안적 노력을 계속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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