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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오바마=낙관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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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오바마=낙관주의자

[최재천의 책갈피] <비커밍>

버락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인 시절, 비밀경호국이 정한 미셸의 암호명은 '르네상스'였다. 하지만, 경호원들이 미셸에게 직접 말을 걸 때면 늘 '여사님(ma'am)'이었다. "여사님이 누구죠? 처음에는 이렇게 되묻고 싶었다. 여사님이란 꼭 나보다 나이가 더 많고 점잖은 핸드백, 편한 신발 차림으로 근처에 앉아 있는 다른 여성을 가리키는 말일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여사님이었다. 여사님이 나였다."

시카고의 가난한 동네 사우스사이드, 부모님이 세 들어 산 이층집에서 오빠와 한방을 쓰며, 공원에서 캐치볼을 하고 자랐던 흑인 소녀의 그 무엇이 그녀를 백악관으로 이끌었을까. ‘낙관주의’다.

"내게 낙관주의는 일종의 신념이자 두려움에 대한 해독제다. 낙관주의는 우리 가족이 살던 작은 집을 지배했다. 낙관주의는 버락이 희망찬 미소를 띠고 내 변호사 사무실에 처음 나타났을 때 그에게 끌린 이유였다. 나중에는 의심과 나약함을 극복하도록 도와주었다."

미셸은 애초에 정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정치의 분열적 속성을 여전히 싫어하며, 그곳이 자신의 세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버락의 1996년 일리노이주 상원의원 선거 출마에 동의했다. 낙관주의였다.

"단 아내로서 경고를 잊지 않았다. '난 자기가 좌절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 당선되고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성과가 나지 않을 수도 있어. 그러면 자기는 미쳐버릴걸.' '그럴지도 모르지.' 버락은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하지만 어쩌면 내가 조금이라도 좋은 일을 해낼 수 있을지 몰라. 또 모르잖아?' '그렇긴 해.' 나도 으쓱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낙관주의를 훼방하는 것은 내 일이 아니었다."

낙관주의는 백악관으로 이어졌다. "퍼스트레이디였을 때 나는 뜻밖의 장소에서 낙관주의를 만났다. 이를테면 월터 리드 육군병원의 병실 문에 동정을 사양한다는 글을 붙여둠으로써 자신이 지닌 강인함과 희망을 모두에게 상기시켰던 상이군인에게서 보았다. … 낙관주의는 모든 아이의 마음에 늘 깃들어 있다. 아이들은 매일 아침 세상의 선함과 가능성의 마법을 믿으면서 깨어난다. 아이들은 냉소적이지 않다. 뼛속까지 신념에 차 있다."

그렇다. 미셸은 일관된 낙관주의자였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낙관주의였다. 독일의 전 수상 콘라트 아데나워가 그랬던가. '정치인은 비관주의자가 되어야 한다'라고. 하지만, 인간은 낙관주의자여야 한다.

▲ <비커밍>(미셸 오바마 지음, 김명남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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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예나 지금이나 독서인을 자처하는 전직 정치인, 현직 변호사(법무법인 헤리티지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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