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우리를 죽이지 마라!" 필자 주
벼랑.
여기는 어디지?
별다를 것 없는 이 아침 화장실 낡은 거울 앞에 서서 묻습니다. 나에게, 당신에게 묻습니다. 아직도 출근길 찬바람과 공장기계 쇳덩이에 언 손이 따끔하게 저리고 수 억 번 두드린 자판에 손끝이 아려도 저 벼랑 끝 똑바로 쳐다봐야 합니다. 우리 모두의 위선과 위악에 관해, 그리고 오랜 시간 되뇌어 온 입에 발린 희망이나 연대에 대해, 다시 따져 물어야 합니다. 저토록 위태로운 저기가 어디냐고 악을 쓰며 묻고 또 물어야 합니다. 가파른 언덕길 카트에 실은 욕망과 육신의 안위를 지고 오르면서, 투표함에 쑤셔 넣은 민주주의와 매번 번거로운 연대를 꼼꼼히 적립하지 않았던 그 오만함을 고백해야 합니다. 계곡을 건너며 거센 물살에 한 걸음도 나아가지 않는 전세방 월세방 살림, 꿈길 같은 작은 희망도 없이 쓸려간 저들을 잊었음을 울며불며 실토해야 합니다. 모두들 길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을 내 등과 발꿈치, 그리고 내밀었다가 어느 순간 슬며시 놓아버린 나의 손을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땀에 젖은 작업복, 수채 구멍냄새, 아홉 평 발 디딜 틈 없는 벼랑에서 조차 밀려 떨어지는 저들이 우리의 살과 피, 계급이었음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것도. 그 사이 우리는 사랑을 잃었고, 나는 지금까지 사랑하지 않았음을 양심 선언합니다.
지금 벼랑에 해지고 찬 비바람 붑니다.
나무 하나 없는 저곳에서 낙엽인지 모를 무엇이 자꾸
어둠속에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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