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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의 자살로 시작된 박근혜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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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의 자살로 시작된 박근혜 시대

[시민정치시평]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박근혜, 최강서와 이운남의 죽음, 1400만 표: 박근혜 당선인은 과반을 넘기는 득표로 제18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문재인 후보는 한국 야당역사에서 기록에 남을 1400만 표를 받았다. 그리고 불과 며칠사이로 한진중공업과 현대차 사내 하청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새누리당으로 대표되는 보수는 불안해하는 국민을 안고 승리했고, 문재인을 후보로 내세운 야권과 시민사회는 보수의 벽을 넘지 못하고 패배했다. 단순히 선거에 진 것이 아니다. 하루하루 삶에 힘겨워 겨우겨우 버티며 살아온 수많은 민초들을 절망시켰고, 패배로 인한 절망은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갔다. 살아 있느니 죽는 것이 낫겠다는 믿음이었으리라. 선거는 다음에도 있고, 또 그 다음에도 있다. 그러니 스스로를 극단으로 몰아갈 이유는 없다. 그러나 누군가는 이 사태에 대한 도덕적, 실질적 책임을 져야한다. 문재인 후보 자신의 지역구에서조차 박근혜 당선인에게 완패했다. 국민을 절망에 몰아넣고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후안무치이다. 후보로부터 선거캠프에 관여했던 사람들은 말할 필요도 없고, 직간접으로 지지했던 지식인, 시민사회 모두가 절망하는 국민 앞에 머리숙여야한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역사의 아이러니다. 수많은 이 땅의 사람들이 무자비한 박정희 독재정권에 대항해 피를 흘리고 죽어갔다. 지금은 그 이름도 희미해졌지만 민주주의의 재단에 바쳐진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은 마침내 직선제 개헌이라는 민주주의의 기초를 닦아 놓았다. 그리고 2012년 12월 19일 유신의 영애, CNN의 보도처럼 무자비한 독재자의 딸, 유신의 실질적 조력자였던 박근혜 후보가 민주적 선거를 통해 대통령이 되었다. 아버지의 적들이, 아버지를 무너뜨리고 만들어 놓은 민주주의가 독재자의 딸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많은 국민들은 무자비한 독재자 박정희의 재림을 원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그러나 유신의 조력자였던 과거에도, 불통의 리더십에도, 세 차례의 텔레비전 토론에서 보여주었던 당황스런 모습에도, 자신의 대선 공약조차 숙지하지 못했던 모습에도, 관권개입 의혹과 불법선거에도 불구하고 국민은 그를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단순히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근래의 보기 드문 높은 선거참여를 통해, 과반수의 지지를 통해 목적의식적으로 그를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도대체 어떤 시대정신이 국민들로 하여금 그를 대통령으로 선택하도록 한 것일까? 세상 물정에 둔감한 나는 아직 그 시대정신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 ⓒ프레시안(최형락)
대통령 선거에 대한 다양한 평가들이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 승리의 결정적 공헌자는 이정희 통합민주당 후보였다는 소리에서부터, 친노와 반노, 비노로 갈려 남의 선거하는 것처럼 방관했던 민주당 의원들의 모습, 보수보다 진보가 더 결집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고, 결국 NLL 문제로 야기된 안보불안이 보수를 결집시켰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떤 논평자는 야당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수도권에서 바람을 일으켜야하는데, 문재인 후보가 수도권에서 바람을 일으키는데 실패한 것을 패배의 원인으로 언급했다. 그런데 언제까지 바람 타령할 것인가? 언제까지 상대방의 실수에 자신의 미래를 기댈 것인가? 언제까지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할 것인가? 그러면 안철수 후보가 야권의 단일 후보였다면 박근혜 후보를 이길 수 있었을까? 이런 말도 안 되는 역사적 가정에 위로 받고 싶은 우리의 마음에는 어떤 시대정신이 자리하고 있던 것일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박근혜는 진보의 적이 아닌 경쟁자였는데도 무자비한 독재자 박정희의 재림을 원하지 않는 우리에게 마음 깊이 남아 있던 것은 "독재자의 딸은 안 된다"는 당위뿐이었는지 모른다. 우리는 시대정신을 잊고 있었다. 아니 처음부터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가 품고 있던 복지국가, 정치쇄신, 경제민주화의 시대정신은 박근혜 후보를 비판하기 위한 장식품이 되었다. 진보가 염원했던 복지국가도, 경제민주화도, 정치쇄신도 국민의 마음속에 시대정신으로 자리하지 못했던 것이다. 새로운 시대로의 변화를 염원하는 시대정신이 사라지자, 안보불안과 경제불안이라는 박근혜의 패러다임이 우리를 뒤덮고 말았다. 안보를 걱정하고, 자녀의 교육비와 취업을 걱정하고, 자신의 노후를 불안해하는 50대들이 유신독재를 뒤로하고, 불안에 떨며 투표장으로 쏟아져 나왔고, 마침내 유신의 영애는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었다.


진보의 패배는 자명하다. 진보는 시대정신을 국민과 교감하지 못했고, 변화의 열망으로 국민들과 하나되지 못했다. 누구나 복지국가, 정치쇄신, 경제민주화가 시대정신이라고 믿었지만, 누구도 복지국가, 정치쇄신, 경제민주화를 선택의 잣대로 삼지 않았고, 민주당에 기대에 손쉽게 승리를 거머쥐려 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다시 시대정신을 부둥켜안고 국민 속으로 가야한다. 때가오면 불어오는 바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권 야당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힘을 조직해야한다. 각자의 일터에서, 각자의 생활터전에서 시민의 힘을 조직해야한다. 그리고 조직된 시민의 이해를 대변하는 새로운 정치질서를 만들어야한다. 우리는 조직된 힘과 이를 대변하는 정당만이 변화를 일구어낸 역사를 알고 있다. 국민을 죽음에 몰아넣은 패배에도 불구하고, 제도권 정당이 새롭게 나지 못한다면 그 당을 버려야한다. 조직된 시민의 힘을 통해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민생이라는 일회성 정치구호가 아니라 복지국가, 정치쇄신, 경제민주화를 시대정신으로 만들어 나가야한다. 18대 대선은 어쩌면 지난 70여 년간 한국사회를 지배해온 독재와 반독재의 프레임, 민주당에 기대어 진보를 이루려고 했던 프레임이 해체되었다고 선언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새로운 프레임은 생활 속의 국민과 온전히 소통하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져야한다. 패배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며, 깊이 반성한다. 그리고 진심을 담아 박근혜 정권 5년 동안 최강서 님과 이운남 님의 죽음이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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