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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중같은 자들이 하도 많아서…"

김민웅의 세상읽기 〈182〉

"당백전(當百箋)" 또는 줄여서 "당전(當箋)"은 대원군이 왕권의 강화를 상징적으로 과시하기 위해 경복궁 중건의 재정을 도모하기 위해 만든 동전임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 가치가 동전 하나 당, 백전에 맞먹는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애초에는 대원군의 위세를 업고 꽤나 고가 행세를 했습니다. 그러나 워낙 많이 찍어내다 보니 당연히 인플레이션이 되어 그 가치가 점차 바닥을 치게 되었습니다.

이러다 보니 처음에는 보통 서민들이야 당백전 또는 당전 구경조차 해보지 못했다가, 나중에는 너나 할 것 없이 가지게 된 돈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당전은 급기야 어디서든 흔히 볼 수 있는 시시한 돈으로 취급되었고, 사람들의 입에서는 고품격 "당전"이 아니라 "땡전"으로 천시 격하되는 과정을 겪게 되고 말았습니다.

해서, "땡전 한 푼 없다"는 말은, 바로 이 누구나 가지고 있을 법한 흔하디흔한 당전 하나 손에 없다는 이야기가 되는 겁니다.

신라 때 불가(佛家)에서는 당나라 유학을 다녀오는 것이 대단한 종교적 성취에 속했습니다. 7세기 중반, 원효 스님 역시 의상 대사와 함께 당나라 유학길에 나섰다가 문득,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마음의 영토조차 알지 못하면서 어디를 가서 도를 깨우치겠다는 것인가 하는 물음 앞에서 가던 길을 돌리게 됩니다. 알려진 대로 이후 요석공주와의 사이에서 설총(薛聰)을 낳은 뒤, 파계를 자인하고 승복을 벗고는 민중 속으로 들어가는 선택을 합니다.

한편, 이 시기 당승(唐僧)은 중국의 승려라는 뜻도 되지만, 또한 당나라 유학승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는 바 훗날 일제 당시 동경 유학생을 떠올릴 만 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당승이 되는 것은 그 시절 불가에서 누구나 염원하는 일이었고 또한 사회적으로도 존경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당승도 훗날에는 너무 흔해지거나 또는 너나 할 것 없이 당승이라고 사칭하면서 허풍을 떠는 풍조가 만연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바람에 당승은 "당나라 유학 다녀 온 훌륭한 스님"이 아니라, 그만 졸지에 "땡중"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승려를 뜻하는 "승"이 우리말에서 "중"이 되는 것은 일반화되어 있었는데, 당이라는 말이 이 중과 함께 모멸적으로 땡으로 발음되어 "땡중"이라는 새로운 말이 탄생해버린 것입니다.

그 말 이전에 엉터리 같은 승려들의 존재가 먼저 있었던 것이 분명했고 그것이 본래 "당승"이 가졌던 품격을 손상시킨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결국, 좋은 말도 누가 그 말을 구체적으로 대표하고 있는가에 따라 그 사회적 의미나 시선이 바뀌어버리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짓다"는 "만들다"의 뜻임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눈짓, 손짓, 발짓, 몸짓 같은 말은 모두 그 앞에 붙은 눈이나 손, 또는 발이나 몸으로 만들어 내는 모양새를 일컫는 것을 모르지 않을 것입니다. "짓"은 그로써 이루어지는 행위에 해당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짓"이 같은 행위에 속하는 말인 "질"이 될 때에는 사뭇 그 뜻과 분위기가 달라지고 맙니다. 계집질, 서방질, 발길질, 도둑질 등 모두 욕설과에 해당합니다.

무언가 하고 싶어서 애가 탄다 할 때의 "감질(疳疾)난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질"은 본래 병이라는 뜻입니다. 그 행위가 병들었다는 것입니다.

겉모양은 얼핏 당승인데 실은 땡중 같은 이가 적지 않고, 그 하는 "짓"이 "짓"보다는 "질"자를 붙이기에 똑 맞는 이들 또한 드물지 않으니 풀뿌리 민초들은 그야말로 땡전 한 푼 없는 신세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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