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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 성공담에서 표절 당한 송대관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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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 성공담에서 표절 당한 송대관을 생각한다

[시민정치시평] 싸이와 송대관, 그리고 대한민국 예술의 양극화

가수 싸이의 빌보드 1위 입성이 또다시 좌절되었다. 5주째 2위에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어 국민적 아쉬움이 커지고 있다. 영국과 호주를 비롯하여 전 세계 음반차트에서 이미 1위를 했지만 아직 미국 공식 집계에서는 최고자리의 등극이 미뤄지는 것 같아 완벽한 그랜드 슬램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듯 보인다.

순식간에 세계 스타가 된 싸이 덕분에 해외음반 순위가 한국 음반 순위보다 더 가깝게 느껴지고, 불가능하게만 보이던 세계 대중음악 시장에 대한 도전이 한걸음 눈앞에 다가온 듯 한 감을 갖게 된다. 그러나 몇 가지 사례를 고려할 때 이러한 상황은 일종의 착시에 불과하다고 생각된다. 무엇보다도 오늘날 한국 예술가들이 처한 곤궁한 삶을 고려해 보면 싸이의 성공담은 이례적인 개인적 성과일 뿐 이것을 우리 시대의 업적으로 일반화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 아닌가 한다.

싸이와 세계 대중 음악계에 대해 말하려면 우선 과거 30년 전에 벌어진 미국 대중음악과 한국 대중음악의 황당한 대면 장면 하나를 환기해 볼 필요가 있다. 사실 싸이를 포함하여 한국 가수의 빌보드차트 도전은 최근의 일처럼 다뤄지지만 이것은 역사적으로 그다지 정확하지 않다. 대한민국 가수의 노래는 이미 30년 전에 빌보드 순위 1위에 오른바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가수가 직접 노래한 것은 아니라 '빙의'를 통해 간접적으로 이뤄낸 업적이지만 자생적인 한국음악이 세계에 통할 수 있다는 것을 최초로 보여준 사례가 일찍부터 존재했다.

1981년 빌보드 차트에 6주간 1위에 오른 제이 게일스 밴드(J Geils Band)의 <센터폴드(Centerfold)>는 앞서 1976년에 발표된 송대관의 <쨍하고 해뜰 날>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단순한 멜로디의 유사점뿐만 아니라 노래의 전체적인 구조까지 유사하기 때문에 당시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제이 게일스 밴드의 <센터폴드>를 듣는 그 순간 송대관의 노래를 즉각적으로 연상할 수밖에 없었다. 당장 미국 가수 측의 표절 여부가 제기되었지만 논란은 그냥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쳐버리고 말았다. 훗날 송대관 씨가 회상한 대로 당시에는 저작권에 대한 인식도 없고 또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라 웃어넘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잘 만든 한국 음악이 세계에 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첫 번째 사례는 지금부터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송대관씨의 1975년 발표곡 <쨍하고 해뜰날>을 흉내낸 곡이 6년 후 미국에서 발표되어 빌보드 차드에서 무려 6주 동안이나 1위를 차지한다. 당시 송대관씨의 노래는 당시 국내에서 선풍적으로 유행했고 이듬해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프레시안
사실 80년대 초의 시대분위기에서는 표절이란 후진국이 선진국을 모방하는 것으로 인식되던 시기였고, 그것의 역방향은 상상할 수 없었던 때였다. 미국 가수가 한국 가수를 흉내 낸다는 것을 좀처럼 상상할 수 없었던 분위기 때문에 이 처럼 중요한 국제적 표절 사건은 혐의는 농후하더라도 설마하면서 잊히게 되었다.

30년 전의 전의 <쨍하고 해뜰 날>과는 달리 <강남 스타일>은 이미 인터넷 매체를 통해 전 세계에 퍼져나갔기 때문에 해외 음반사가 알맹이만을 쉽게 빼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큰 그림 하에서 살펴보면 여전히 싸이의 사례에서도 30년 전에 벌어졌던 우울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분명 싸이의 성공 스토리의 주인공은 싸이 자신이지만, 그의 성공담의 스토리 북은 그의 것만은 아니다. 한국 가수 싸이를 세계적 가수로 만든 것은 스쿠터 브라운(Scooter Braun)이라는 미국의 음반기획자이고 결국 싸이는 그의 그려준 각본에 따라 세계무대에 서고 있다.

미국은 오래 전부터 전 세계 각국의 음악계를 들여다보면서 필요한 음악적 영감을 얻었고 때에 따라서는 음원이나 음악가를 가져다 쓰고 있다. 30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랬던 것이다. 결국 이번 싸이의 경우도 크게 보면 미국 음반 기획자의 안목과 양심이 이뤄낸 성과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싸이를 둘러싼 뒷담화를 접하다보면 한국 예술계의 현주소를 냉철히 되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된다. 방금 말한 대로 제대로 된 가수가 성장하려면 그것을 뒷받침할 국제적 시선의 유능한 기획자가 자리하고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우리 문화예술계의 실정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의 대중음악계에도 대규모 기획사가 자리하고 있지만 오락만 앞세운 얄팍한 상술만이 국내 음악 시장을 오랫동안 지배해 왔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예를 들어 극도의 외모지상주의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평범한 모습의 싸이가 십년씩이나 버텨온 점을 그의 성과 중 하나로 빼놓아서는 안 될 지도 모르겠다.

싸이의 경우를 놓고 봐도 한 명의 예술가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예술가 자신뿐만 아니라 그 주변이 함께 성장해야 한다는 점을 새삼 느끼게 된다. 일단 보기 좋게 봉합되었지만 싸이는 선배 가수 김장훈의 공연 기법과 공연인력을 빼내 구설수에 오른 적이 있다. 보통 사람들은 가수만 훌륭하면 되었지 공연기법이나 그것을 운영하는 전문 인력이 뭐가 중요할까하는 의구심이 들겠지만, 대규모 공연은 뒤에서 벌어지는 수십 수 백 명의 전문 인력의 노하우가 톱니바퀴처럼 결합된 종합예술이라는 것을 고려할 때 공연 기술과 그것을 운용할 인력을 빼앗기는 것은 한 가수에게 대단한 손실이라고 할 수 있다.

음향이나 조명기사같은 공연 스텝을 사이에 놓고 싸이와 김장훈이 벌인 논쟁을 통해 예술가의 창작 주변에서 이들을 지원하는 사람들이 처한 절박한 삶도 세상에 좀 더 분명히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도 가지게 된다. 2009년도 문화관광부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에서 문화예술인의 삶은 사선을 넘고 있다. <2009년 문화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2000명 중 총 37.4%가 월 소득이 없는 것으로 나와 있다[표 참고]. 80% 이상이 소득이 없거나 200만 원 이하이다. 여기서 기획자나 연출가, 시나리오 작가처럼 창작을 지원하는 인력들의 소득은 별도로 연구되지 않았으나 아마도 이들의 삶은 예술가 자신보다 더 어려울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사실 지난 해 초 촉망받던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 씨가 32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불행하게 세상을 마감하게 된 사건도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한국 예술계가 처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 ⓒ프레시안

한편 이 조사에 따르면 예술가들의 삶은 과거에 비해 더 후퇴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2006년도에 비교해 '소득이 없다'는 대답은 10%이상 증가했으며, 100만 원대의 소득도 6% 줄었으며, 200만 원 이상의 소득도 4% 정도 줄었다. 2009년도부터 시작한 세계 경제 위기의 여파에 예술인들의 삶이 더 가혹해졌다는 추측을 내놓을 수 있지만, 현 정부 하에서 예술인의 창작 환경이 더 어려워 진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오는 11월 18일이면 최고은 씨의 죽음이 계기가 되어 발의된 <예술인복지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예술인복지법>은 대한민국 예술인들의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으로 자리 잡기를 기대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예술인들을 더 초라하게 만들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시행령에 따르면 예술가가 되려면 스스로 예술가라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데, 기준도 일방적이다. 그간 알려진 시행령에 따르면 미술의 경우 "최근 5년간 5회 이상의 전시에 참여하거나 1회 이상의 개인전 개최, 혹은 1권 이상 관련 서적을 출간한 사람"이 <예술인복지법>에 수혜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한다. 이러한 양적 평가가 예술을 평가하는데 무슨 기준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 되고, 무엇보다도 전시를 기획하고 평론하는 창작지원 인력들도 저서를 내기 전에는 정식 '예술인'으로 대접받을 수가 없게 된다는 점도 아쉬울 다름이다.

기대했던 4대 보험도 거의 유명무실화되었고, 긴급 지원을 받더라도 그것이 실질적인 지원이 될지 의문시 되고 있다. 최고은 씨 같은 젊은 시나리오 작가의 죽음을 막자고 하면서도 내년도에 반영된 예산은 고작 70억 원으로 일시적 생계난에 빠진 작가 900명에게 세 달간 월 100만원씩 지원한다고 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의 예술인 수는 대략 53만 명이라고 하는데 이중 단 0.1% 정도가 겨우 복지법의 혜택을 받을 수 있을 정도이다. 뿐만 아니라 수혜자는 공공문화시설이나 소외계층에게 재능 나눔을 해야 한다니 순수창작지원이라고 보다는 공공취로 사업정도로 보는 게 좋을 듯싶다.

결론적으로 한국의 예술계의 현 상황을 놓고 싸이 같은 가수가 한국에 있는 것은 여전히 예외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세계화와 국제 금융위기의 여파 덕분에 국내의 자생적 예술인의 창작기반은 날로 더 척박해지고 있고, 이 속에서 궁여지책으로 어렵게 만들어진 <예술인복지법>도 갈 길이 멀게만 보인다. 예술이라는 험난한 길이 '부모 장학금'에 기댈 수 있는 소수에게만 열려 있는 한, 그리고 제대로 된 스타 예술가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기술 인력부터 기획자나 비평가 같은 이론가들도 지속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확고히 생기지 않는 한 우리나라 예술계의 양극화는 쉽사리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예술인복지법>에 따르면 예술인은 "예술 활동을 업(業)으로 하여 국가를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으로 풍요롭게 만드는 데 공헌"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우리 사회가 예술의 공공성을 인정한다면, 이제 그것이 사회경제적으로 되돌아오는 데 까지 시간이 좀 걸린다는 장르적 특성도 이해하면서 예술가들과 그들을 둘러싼 기술지원 인력과 예술이론가들에게 기존과는 다른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보호의 손을 건네줬으면 한다. 싸이의 순박한 외모 덕분에 조금이나마 대중가수의 외모에 대한 편집증적인 결벽증이 조금이나마 누그러진 것처럼, <예술인복지법> 덕분에 예술을 꿈꾸는 사람은 누구나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을 가지고 좀 더 기를 펴고 활동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첨언

나는 평소부터 제이 게일스 밴드의 노래가 송대관의 노래를 표절했다고 생각해 왔으나 이번 글을 쓰면서 내 개인적인 의견을 좀 더 객관화할 필요를 느껴 전문가에게 이 사안을 의뢰하였다. 작곡가 김보현씨는 중대한 표절이라는 답을 보내 왔다. 가수 송대관 씨와 작곡자 신대성(2010년 작고)씨는 <센터폴드> 곡의 원저자에 가까운 대접 받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두 곡을 비교한 작곡가 김보현의 의견은 다음과 같다.

"곡의 도입부는 화성진행뿐만 아니라 리듬과 멜로디 라인도 매우 흡사하다. 음 하나하나를 비교하고 따지자면 다르다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최고음과 최저음이 나오는 타이밍이나 각 멜로디의 4번째 박에서 으뜸음에서 머무르는 점, 그 외에도 두 곡의 도입부 멜로디가 가진 대부분의 특징이 똑같아 J. Geils Band의 'Centerfold'는 송대관의 '쨍하고 해뜰 날'을 표절했다고 말할 수 있다. 더군다나 논란이 된 두 곡의 도입부 멜로디는 송대관의 곡에서는 후렴구에 쓰여 뒤로 갈수록 자주 등장하는 주요멜로디이고, 'Centerfold'의 곡에서는 곡 전체를 아우르는 테마 멜로디인 만큼 이 두 곡의 표절은 중요한 사안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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