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 포기?
며칠 전 신문을 보던 중 눈이 번쩍 뜨이는 기사를 접했다. 기획재정부가 그동안 정부가 추진해 온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연내 도입 대신 '근로자 이사회 참관제'를 올해 안에 공공기관 10곳 정도에 시범적으로 도입·운영할 계획이라는 내용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서 공공기관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노동이사제를 도입하기로 하고, 지난해 7월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공기관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 개정안까지 발의했지만, 법안 개정안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경제재정소위원회 문턱조차 넘지 못하는 등 국회 논의가 지지부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대통령이 공약한 노동이사제 도입이 이처럼 지지부진한 데에는 국회 못지않게 정부의 책임도 적지 않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동안 법안 개정안에 대한 국회 논의가 아무런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는데도 정부가 별도의 법 개정안을 내거나 적극적인 입법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법안소위 등에서 적극적으로 관련 논의를 이어가고자 하는 특별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다.
그랬던 정부가 의결권을 가진 '노동이사제' 대신 아무런 의사결정 권한도 없는 '근로자 이사회 참관제'를 들고나온 것은 국회에서의 입법 논의가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있는 답답한 상황에 대한 고육지책이라 할지라도 노동이사제의 취지와 의미를 무색하게 만드는 '개혁의 후퇴'가 아닐 수 없다. 이는 특히 지난 6.13 지방선거 이후 경기도를 비롯한 일부 지방정부 차원에서 산하 공공기관에 노동이사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자칫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퇴행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점에서 큰 우려를 낳고 있다.
먼지만 쌓여가는 사회적가치기본법과 사회적경제기본법 입법안
이 같은 상황은 문재인 정부의 국정 철학과 기조를 이루는 사회적 가치 실현을 위한 법제도 개선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실현에 관한 기본법안(사회적가치기본법)'은 문재인 대통령이 19대 국회의원 시절인 2014년 6월(세월호 참사 2개월 후) 공공기관 운영에 있어서 이윤과 효율이 아니라, '사람의 가치'를 우선시하는 취지에서 최초 입법 발의를 한 바 있다. 그리고 20대 국회 출범 직후인 2016년 8월에 더불어민주당은 포용적 성장과 경제 민주화를 위한 핵심법안으로서 '사회적경제기본법안'과 함께 재차 발의하였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에는 사회적 가치를 국정 기조의 하나로 설정하고, 사회적 가치를 적극 실현하도록 공공기관을 운영한다는 국정운영 계획과 함께, 2017년 10월에는 기존의 입법안을 보완한 새로운 사회적가치기본법 제정안이 더불어민주당과 당시 국민의당 소속 의원 21명에 의해 공동으로 발의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공공기관들로 하여금 인권, 안전, 환경 등 사회적 가치 실현을 선도하도록 하자는 '사회적가치기본법'은 물론이고,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마을기업과 같은 사회적 경제를 육성함으로써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고 상생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사회적경제기본법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심의 한번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보수야당의 이념적 반발과 정치공세로 인한 국회 공전이 1차적 원인이겠지만, 입법 발의를 주도했던 여당은 물론이고 정부조차도 법안 통과를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않는 데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그 결과 사회적 가치 실현을 통한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대한 기대보다는 정부와 여당의 개혁 의지 실종에 대한 실망감만 커져 가는 것 같다.
지속가능경영 5개년 종합시책 수립 제대로 해야
그런 가운데, 지난해 말에 개정된 '산업발전법'에 의해 정부는 5년마다 지속가능경영 종합시책을 수립하여야 하며, 최초의 종합시책을 늦어도 법 공포 후 1년이 되는 올해 12월 12일까지 수립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사실은 2007년 법 개정을 통해 그때부터 정부는 지속가능경영 종합시책을 수립해야 했음에도 10년 동안이나 법을 이행하지 않고 직무유기를 해왔다.
이에 따라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성균관대학교 산학협력단에 의뢰하여 지속가능경영 종합시책 내용 및 수단 개발을 위한 연구 용역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오는 11월 24일까지 완료하기로 되어 있는 지속가능경영 종합시책 수립에 대한 연구용역이 그동안 어떻게 진행되었고 어떤 내용을 담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알려진 것이 거의 없어서 많은 전문가들과 국민들의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은 산업발전법 개정안이 시행된 직후인 지난 연말에 '기업의 지속가능경영 촉진을 위한 정부 5개년 종합시책, 어떻게 수립할 것인가?'라는 제목의 워크숍을 국회CSR정책연구포럼과 공동으로 개최하였다. 국회CSR정책연구포럼 대표인 홍일표 국회의원은 개회사를 통해 "사회적 책임의 기본정신이 바로 이해관계자 소통"이라며 다양한 사회적 책임 전문기관 및 이해관계자와의 지속적인 소통을 통한 "가장 사회적으로 책임 있는 방식"으로 종합시책을 수립해 줄 것을 당부한 바 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지속가능경영 종합시책 수립 작업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으며 어떤 내용으로 준비되고 있는지를 공개함으로써 그러한 우려를 불식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지금부터라도 사회적 책임 관련 전문가들이나 이해관계자들과의 폭넓은 소통과 협의를 통해 제대로 된 종합시책을 수립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포용적 성장을 위한 튼튼한 발판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