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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입자 죽음으로 내몬 '디자인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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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입자 죽음으로 내몬 '디자인 서울'

[현장] "겨울철 철거 않겠다더니…오세훈은 양치기 소년"

서울시의 공원 조성 사업으로 철거가 진행 중인 마포구 용강동 시범아파트의 세입자가 목숨을 끊은 일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서울시의 겨울철 철거 조치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오세훈 시장이 동절기 철거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겠다고 밝힌 것과 달리, 올 겨울 시내 곳곳에서 철거 작업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철거 지역 주민들은 "밀어붙이기 식으로 이뤄진 동절기 철거가 한 세입자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며 반발하고 있다.

10일 오전 강제 철거 위기에 내몰린 마포 용강아파트와 종로 옥인아파트 주민들은 서울시청 앞에서 철거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두 아파트는 서울시의 '한강 르네상스 사업'의 일환인 녹지 공원을 조성하기 위해 곧 허물어질 위기다.

▲ 한강 르네상스 사업으로 철거가 진행 중인 서울 용강아파트와 옥인아파트 주민들이 서울시의 동절기 철거 방조를 규탄하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프레시안

"겨울철엔 철거 안한다더니"…사람이 죽어도 강행되는 철거

"너무 억울하다. 너무 억울해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는다. 서울시가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나도 남편을 따라 가려 한다."

자살한 세입자 김모(66) 씨의 부인 이모(64) 씨는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김 씨는 지난 2일 자신의 집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주민들은 고인이 사망 직전에 철거 용역업체 직원과 몸싸움에 휘말렸다고 전했다.

임대 주택을 신청했지만 언제 입주할 수 있을지 기약이 없었고, 이미 지난달 27일부터 철거는 시작됐다. 아랫집과 옆집이 차례로 부수어 지고, 주민들은 매일같이 철거 용역반들과 시비에 휘말렸다. (☞관련 기사: "'겨울철 철거'로 세입자 또 자살)

결국 주거 이전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진행된 철거가 한 세입자를 죽음으로 내몬 것. 서울시의 한강 르네상스 사업에 의해 철거 대상이 된 이 아파트에는 당장 갈 곳이 없는 15가구가 남아 있었다.

용강아파트 세입자모임 대표 박찬일 씨는 "공원 만들겠다고 사람을 죽인 서울시장이 과연 사람이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박 씨는 "한강 르네상스는 사람을 죽이는 공원을 만드는 사업이다. 더 이상 사람을 죽이지 말라"고 호소했다.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도 기자회견에 참석해 "용강아파트 주민의 죽음은 자살이 아니라 서울시에 의한 타살"이라며 "오세훈 시장이 이 죽음에 대해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서울 종로구 옥인아파트 모습. 아직 사람이 살고 있다. ⓒ프레시안 최형락
▲ 8월부터 철거가 진행 중인 옥인아파트 뒤로 서울 도심의 야경이 보인다. ⓒ프레시안 최형락

종로구 옥인아파트 세입자들의 사정도 딱하긴 마찬가지였다. 세입자 김모(46) 씨는 "서울시에 한 달만 기다려달라고 사정했지만, 결국 철거가 시작됐다"며 "공원을 만들지 말라는 게 아니다. 겨울이 지나고, 세입자들도 다 살 곳을 마련한 다음에 철거를 시작하면 안 되는 것인가"라고 하소연했다. 김 씨는 다음 달 상암동의 한 임대 아파트에 입주를 기다리고 있다.

서울시 해명에 주민들 반발…"철거가 없었다고? 오 시장이 직접 와서 확인하라"

서울시는 용강아파트 세입자의 죽음에 대한 언론 보도가 잇따라 나오자 지난 8일 해명 자료를 발표하고 "현재 세입자가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에 대한 철거 행위는 일체 시행하고 있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아직 주민이 남아있는 동은 철거하지 않았기 때문에, '동절기 철거 금지 원칙'을 어긴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서울시의 이 같은 해명에 주민들은 "서울시의 의도적 왜곡"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용강아파트 세입자모임의 박찬일 대표는 "사망자가 살고 있던 용강아파트 5동은 이미 철거가 진행 중"이라며 "유리창 한 장 깬 적 없다는 서울시의 해명은 명백한 거짓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옥인아파트 주민들도 "지난 8월부터 주민들이 살고 있는 동까지 포함해 이미 철거를 진행하고 있다"고 증언했다. 기자회견이 열린 이날 오전에도 철거업체 직원들은 건물 한 동에 대한 철거 작업을 시작했다.

옥인아파트 세입자 김모 씨는 "사람이 남아있는 집을 제외한다고 하지만, 공동 주택에서 바로 옆집과 윗집을 부수는데 이게 철거가 아니고 무엇이냐"며 "유리창이 깨질 때마다 아이가 경기를 일으키고, 주변이 폐허로 변해 항상 불안하다"고 말했다.

▲ 한 용역업체 직원이 옥인아파트 철거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아직 살 곳을 구하지 못한 세입자들이 이곳에 남아있다. ⓒ옥인아파트 주민모임

서울시의 '사람 잡는' 공원 만들기…"이게 오세훈 식 디자인 서울?"

진보신당 마포구당원협의회 정경섭 위원장은 "문제는 이번 용강아파트·옥인아파트 철거의 사업 시행자가 민간 사업자가 아니라 서울시라는 점에 있다"며 "시가 추진하는 사업에서조차 지난해 오세훈 시장이 약속한 동절기 철거 금지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동절기 철거 금지 원칙이 발표된지 한 달 후인 지난해 12월, 서울시는 왕십리 재개발 지역의 동절기 철거가 진행되자 "민간 사업자에 대해서는 이 원칙이 적용되기 힘들다"고 해명한 바 있다.

이날 철거 지역 주민들은 "오세훈 시장이 거짓말을 일삼는 양치기 소년이 아니라면, 당장 동절기 철거 금지를 지시하는 공문을 마포구청과 종로구청에 하달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공원을 만드는 것이 1~2달 늦어진다고 해서 서울시의 품격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며 "우리들의 경고는 오늘이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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