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마지막 광복절 경축사와 이명박 대통령의 첫 광복절 축사는 한국 현대사에 대한 이해에서 근본적으로 상이한 이념적 스탠스를 보여주고 있다. 2007년 8월 15일, 노무현 대통령은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북녘동포와 7백만 해외동포 여러분"으로 청중을 호명하면서 연설을 시작했다. "62년 전 오늘, 우리 민족은 일본 제국주의의 압제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날 우리는 가슴 벅찬 기쁨으로 서로 얼싸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연설은 대한민국의 사회적 성취에 대한 긍정적 평가로 연결되지만 그럼에도 아직 해결하지 못한 과제 하나가 있음을 환기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반드시 풀어야 할 하나의 큰 숙제가 있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냉전의 굴레를 극복하지 못한 채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 남아 있습니다. 총성은 멎었지만, 아직 평화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 늦기 전에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고 민족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 나가야 합니다." 이제 경축사의 지배적인 논조는 남북 간 평화협력체제 구축을 위한 노력과 전망으로 이어지고 있다. "62년 전, 우리는 분단을 우리 힘으로 막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남북이 함께 협력하고 공동 번영의 길로 나아가는 것은 지금 우리의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이듬해인 2008년 8월 15일,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의 정부 첫해 광복절 경축사를 낭독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재외 동포와 국가유공자, 그리고 내외귀분 여러분!"이라는 청중 호명에 이어 다음의 이야기로 연설을 시작했다. "60년 전 오늘 바로 이 자리에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선포되었습니다." 이어서 경축사는 대한민국 '건국' 60주년이 갖는 긍정적인 가치와 결과를 알리는 데 할애되었다. "저는 오늘 분명히 말하고자 합니다. 대한민국 건국 60년은 '성공의 역사'였습니다. '발전의 역사'였습니다. '기적의 역사'였습니다.", "저는 이 역사가 기록되고 새롭게 이어질 수 있도록 '현대사 박물관'을 짓겠습니다.", "건국 60년 우리는 자유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자유를 위협하는 모든 것들과 당당히 싸워왔습니다."
두 텍스트는 전혀 동일하지 않다. 서로 조응하거나 화해할 수 없는 '역사 해석'의 대립구도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호명이 말해주고 있듯이, 2007년 경축사에서 북녘동포는 광복과 해방의 기쁨을 기꺼이 함께 누려야 할 민족 구성원의 범주에 포함되었다가 다음해에는 그 민족적 자격을 박탈당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8월 15일을 제국주의 식민통치로부터의 해방으로 의미화하고 그 해방 위에서 남과 북이 단일한 근대국가로 수립되는 정치적 과정을 이루지 못한 것을 민족적 비극과 고통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에게서 통일은 민족적 지상과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와 달리, 이명박 대통령은 8월 15일을 제국주의로부터의 해방보다는 대한민국이 수립된 날의 의미로 접근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그가 말하는 8.15는 1945년이 아니라 1948년이다. 경축사의 정식 명칭이 "제63주년 광복절 및 대한민국 건국 60년 경축사"였던 이유는 거기에 있었다. 그는 남북한이 각각 다른 정치체제를 수립해 별개의 국가로 존재하는 것을 민족적 슬픔으로 보기보다는, 통일 민족주의에서는 불완전과 결손을 의미하는 대한민국의 수립을 '성공'과 '발전'과 '기적'과 '자유 수호'라는 정반대의 가치로 해석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이 연설, 그러니까 대한민국 건국 60주년 기념 경축사는 한국의 보수가 추진하게 될 이른바 '건국절' 아이디어에 정확히 잇닿아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계속 이어져온 건국절 제정 운동은 1948년 8월에 출발한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공식적으로 기념하려는 보수의 정치적 욕망을 본질로 한다. 그 건국절 논쟁에 대해 학계와 정치계는 1919년 임시정부를 둘러싼 성격규정을 핵심으로 하는 문제로 접근하고 있지만, 보다 궁극적인 차원은 북한과의 관계에 있다고 봐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연설에 비추어보면, 대한민국의 역사가 자랑스러운 이유는 지난 60년간, 자유를 위협하는 모든 것들과 싸워서 '자유의 가치'를 지켜냈기 때문이다. 그 싸움의 일차적 대상은 의심할 나위 없이 북한이었다. 건국절이란 언어 속에는 북한은 함께 정치공동체를 구성할 파트너가 결코 될 수 없다는,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체제를 근간으로 하는 남한만의 국가를 만드는 것이 정당하다는 인식이 담겨 있다. 그렇게 '건국된' 대한민국은 보수의 집권 아래에서 오랜 시간 악마로 규정되어 온 북한과의 체제경쟁 승리를 지상 목표로 삼아 왔고, 스스로 그 성과를 자랑스럽게 평가해왔다. 건국절은 그러한 역사적 성취 혹은 쟁취의 기념일이다. 그러니까 건국절은 반공주의, 반북주의의 또 다른 이념적 용어인 것이다.
한국의 보수에게 북한은 슈미트(C. Schmitt)가 말한 절멸해야 할 적 그 자체로 존재해왔다. 북한은 민족통일의 파트너십이 아니라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빛나는 대한민국을 위해 패배시켜야 할 적의 운명이었다. 따라서 노무현 대통령이 토로한, 분단이 만들어낸 민족적 슬픔은 한국의 보수에게서는 이입될 정치적 감정이 될 수 없었다. 정치와 외교는 동지와 적의 이분법 위에서 작용하지만 그 적이란 공존해야 할 존재다. 하지만 북한은 그 기준에서 예외였다.
그렇게 보면 한국의 보수가 북한을 상대로 표출한 수많은 화합의 언어들은 사실 공허하거나 모순적이다. 그들은 오랜 시간 통일, 화해, 평화. 공존을 말해왔다. 그 단어들은 북한을 대화와 협상 나아가 함께 살아갈 상대로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북한을 그러한 범주로 받아들이지 않아온 한국의 보수에게서, 한반도의 미래를 이끌 그처럼 아를다운 언어는 사실 아무런 내용이 없는 낱말이다. 우리가 언어를 기표(의미의 형식)와 기의(의미의 내용)의 일치로 볼 수 있다면 북한을 향한 보수의 언어에는 그러한 의미의 대응이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런 의미 없는 기표만이 떠다니거나, 실제적인 의미를 숨긴 거짓된 기표가 운동하고 있는 것이다. 통일대박론과 같은 구호야말로 거짓의 기표, 허구의 기표가 아닐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방문이 결정되고 나서 정부와 여당은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야당들에게 방문을 요청했다. 하지만 보수야당들은 화려한 핑계의 논리를 대면서 거부했다. 그들의 생각은 그럴듯하지만 그건 현재의 상황에 대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관찰과 판단이라기보다는 이미 거대한 대전제로부터 자동적으로 도출된 폭력적 연역법에 불과했다. 그 대전제란 건국절에 깔려 있는 북한에 대한 '절멸주의적 태도'다. 완전히 멸망시켜야 할, 그리하여 대한민국의 위대함을 보여줄 대상이 되어야할 북한과의 열린 대화와 협상이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며칠 전 한 방송에서, 결국 야당은 처음부터 방문의 의지가 없었다고 본다는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의견은 정확한 판단으로 보인다.
가라타니 고진은 <헌법의 무의식>에서 일본인들이 전후헌법 9조의 수정이나 폐기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를 도쿠가와 이에야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평화체제를 향한 일본인들의 정치적 무의식에서 찾고 있다. 그것은 동북아 평화질서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예이지만 정반대로 우리에게는 민족적 적대와 대결을 조장하는 정치적 무의식이 강고하게 남아 있다. 1948년 분단과 전쟁에서 시작해 남북의 화해와 통일의 패러다임이 만들어지는 현재까지 동일한 양상으로 온존하고 있는, 건국절 제정의 욕망으로 드러나고 있는 정치적 무의식이다. 평양공동선언이 발표된 19일에 나온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논평은 그러한 정치적 무의식으로 밖에 해석할 수 없다. 두 야당은 "북한 비핵화의 실질적 진전이 전혀 없는 공허한 성명"(자유한국당), "비핵화를 위한 철저한 실무협상이 되어야 할 남북정상회담이 요란한 행사밖에 보이지 않는 잔치로 변질됐다"(바른미래당)고 비판했다. 그들의 오랜 정치적 무의식은 지난 19일 발표된 '9월 평양공동선언'의 제5조(1-3항)가 구체적인 비핵화의 의지와 절차를 담고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게 하고 있다.
좀 더 솔직해지자. 문재인 정부가 북한과 어떤 노력을 하든, 평화구축을 위한 어떠한 실제적 성과가 산출 되든, 자신들은 북한을 공존해야 할 상대로 인정할 수 없다고 고백하자. 한국의 보수가 솔직해지는 것은, 자신들이 사용하는 정치언어의 기표성과 기의성의 불일치를 방기하지 않는 일이고, 의미 없는 기표가 떠다니는 것을 더 이상 방치하지 않는 일이다. 북한이 고립되거나 붕괴되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화해와 통일을 이야기해서는 안 되고, 오로지 파멸의 대상으로만 북한을 바라보면서 대화와 협상을 외쳐서는 안 된다.
언어공동체에서 오랫동안 살아남으려면 진실의 언어로 존재해야 한다. 내용 없는 공허한 수사, 겉과 속이 완전히 다른 기호는 생존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언어공동체가 사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화해와 협력 그리고 통일의 패러다임을 향해 나아가는 한국의 언어공동체에서 보수의 정치언어들은 그 유용성을 상실해가고 있다. 자신들의 언어가 사라지는 비극적 상황을 피하려면 한국의 보수는 현재의 진실을 마주해야 한다. 자신들을 움직여온 정치적 무의식의 퇴행적 모습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본 칼럼은 민교협의 공식의견이 아님을 밝혀둡니다. 필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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