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MB에 본격적으로 선 긋기?
박근혜 후보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100% 대한민국"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통합'을 화두로 던진 직후인 21일 새누리당은 민주당과 국회 개원 협상을 타결지었다. 눈에 띠는 점은 이명박 대통령 내곡동 사저부지 매입 의혹 특검을 수용한 부분이다. 합의문에 따르면 여야는 오는 30일 본회의를 열고 "대통령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 의혹과 관련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을 처리하고, 특별검사 후보자는 민주통합당이 추천하되, 복수로 추천한다"는 데 합의했다.
▲ 전당대회에 참석한 박근혜 후보 ⓒ프레시안(최형락) |
특검 추천을 야당에 맡긴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같은 아이디어는 '내곡동 사저 청문회'를 주장했던 야당을 달래기 위해 새누리당이 먼저 제안한 것이다. 야당에게 칼자루를 쥐어주고 이 대통령의 비위 의혹을 파헤치도록 내버려둔 것과 마찬가지다. 야당과 청와대의 싸움을 부추긴 셈인데, 야당이 자당 성향의 변호사를 추천할 경우 청와대가 임명을 거부하면서 새로운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새누리당은 또 질질 끌던 국무총리실 산하 민간인 불법사찰 및 증거인멸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구성에도 합의했다. 국정조사계획서 역시 오는 30일 처리된다. 대통령 비위 의혹을 전방위로 파헤치도록 두겠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과 박 후보간 갈등 기류가 생긴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박근혜 후보는 지난 17일 대선 경선 TV 토론회에서 "현 정부에 대한 불신도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회전문 인사 등 인사 문제에서 시작됐다"며 "현 정부의 최대 실책은 인사문제"라고 이명박 대통령을 향해 직격탄을 날려 주목을 받았다.
이명박 정부에 대해 직설화법을 동원해 비판한 것은 거의 4년여 만이라는 평가다. 박 후보는 "불행히도 현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만은 소통이 안됐다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같은 발언이 경선에 뛰어든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나왔다고는 하지만, 경선이 시작된 이후 이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비판을 자제해 왔던 기존 태도에 비춰봤을 때 모종의 '심경 변화'가 있던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결국 새누리당이 박근혜 후보 선출을 계기로 청와대와 본격적을 선을 긋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MB와 청와대의 행동이 불편한 친박
시점으로 보면 박 후보의 발언은 박 후보의 측근 현기환 전 의원 공천 헌금 파문이 불거진 이후,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나왔다.
지난 2일 한 언론에 의해 폭로된 공천 헌금 파문이 정치권을 강타했을 때 불똥은 박근혜 후보에게 튀었다. 한 친박 핵심 의원은 "이번 일에 관한 정보가 나온 곳이 청와대 민정수석실로 의심된다는 얘기들이 많다"고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이른바 '청와대 기획설'이 제기됐고, 박근혜 캠프 인사들 상당수가 분개했다는 말도 나왔다. 박 후보에게 청와대가 모종의 '경고'를 던진 것 아니냐는 분석이었다.
지난 10일 전격적으로 이뤄진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도 친박 입장에서는 마냥 좋아할 수 없는 사안이었다. 차기 대통령을 향해 뛰고 있는 후보 입장에서, 이 대통령의 임기말 독도 방문은 차기 정부에 부담을 주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박근혜 후보는 지난 17일 토론회에서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이) 포퓰리즘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도 "동북아가 서로 협력해나가야 할 일이 많은 중대한 이 시기에 영토 분쟁 같은 것으로 협력을 잘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이 상당히 우려스럽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 후보와 가까운 유승민 국회 국방위원장도 국방외교통일 당정간담회에서 "(군의 독도 방어 합동훈련은) 개인적으로 군사훈련까지 하는 방안에 대해 외교안보를 책임지는 장관들께서 조금 신중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고, 친박계 안홍준 외통위원장 역시 "독도를 분쟁지역화하려는 일본의 의도에 우리가 말려들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를 경청할 필요가 있다"고 신중론을 폈다. 비판적 입장에 선 의원들은 모두 박 후보와 가까운 인사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박 후보가 이 대통령의 '고소영'인사에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시점상 후보 확정 직후 새누리당이 내 놓은 첫 '액션'이 이명박 대통령 일가에 대한 수사 용인, 이 대통령 측근들의 불법 사찰 진상조사위 구성이었다는 점도 가벼이 볼 사안은 아니다.
박 후보는 이날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를 찾아 묵념과 함께 헌화를 했다. 전격적으로 이뤄진 이같은 행보 역시 청와대 입장에서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노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간 인사로 야당이 이 대통령을 지목하고 있다는 점은, 박 후보 본인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는 "대통령이 후임 대통령을 만들기는 어렵지만, 대통령이 안 되게 할 수 있다"고 한 김영삼 전 대통령의 발언이 다시 회자되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 2010년 세종시 수정안 논란 당시 박 후보에게 수정안 수용을 요구하며 이같은 말을 친박계 의원들에게 해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미래'를 강조한 박 후보가 '구체제' 뒤안에 선 이 대통령과 관계 설정을 어떻게 하게 될까? 수 많은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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