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어깨 아래까지 늘어지던 긴 머리를 짧게 잘랐다. 이왕 짧게 자를 거 아예 투블럭 숏컷으로 자르기로 마음을 먹었다. 짧아진 머리로 미용실을 나오니, 시원하고 산뜻한 느낌이 좋았다.
이튿날 책 구경을 할 겸 동네 서점에 들렀다. 한참 만화책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뒤쪽에서 한 커플이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가까운 거리라 어쩔 수 없이 그들의 대화가 들렸다.
"자기야, 나도 저 여자처럼 투블럭 해 볼까?"
"아냐, 난 여자가 저런 거 싫어."
들으려고 해서 들은 얘기는 아니었지만, 기분이 썩 유쾌하진 않았다. 그가 말한 '여자가 저런 것'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최근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여 자신을 꾸미는 비자발적 행위에서 벗어나는 '탈(脫)코르셋 운동'이 여성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른바 '탈코'는 여성들에게 당연하게 여겨졌던 화장, 치마, 긴 머리 등을 벗어던지는 것이다. 친구들은 짧게 자른 내 머리를 보고 '탈코'한 거냐고 물어보기도 한다. 맞다. 유난히 더웠던 여름 긴 머리는 너무 불편했고, 예뻐 보이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잘라버렸다.
불편했던 긴 머리처럼, 내가 그간 차고 있었던 '코르셋'의 불편함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당연하게 여겼던 나의 '꾸밈노동'이 내가 정말 원했던 것이었는지, 그 꾸밈노동이 나를 얼마나 억압하고 있었는지에 대해 말이다.
삶의 일부였던 코르셋에 대하여
고등학교 때 공부에 집중하겠다고 홧김에 머리카락을 자른 것을 제외하고는 항상 긴 머리였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친구들도 다 긴 머리였고, TV에 나오는 여자 연예인들도 대부분 긴 머리였다. 그러다 보니, '여자라면 보통 머리가 길어야지' 하는 식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옷을 말하자면, 가끔 사복을 입을 때를 빼면 항상 여학생용 교복을 입었다. 교복 치마는 신축성이 없고, 계단을 오르내리기도, 뛰어다니기도 불편했다. 여학생용 블라우스는 몸에 지나치게 딱 맞고 짧아서 활동하기가 힘들었다. 편함을 위해 체육복이나 남학생용 교복을 입는 여학생들은 혼이 났다. 이유는 대부분 '옷차림이 단정하지 못해서'였다.
학창시절 '주니어네이버'에 있던 '슈게임'을 종종 했다. 아바타 스타인 슈가 남자친구인 빈과 데이트를 하기 위해 옷을 고르고 평가 받는 게임, TV 쇼에 나가기 위해 다이어트를 하는 게임 등이 인기를 끌었다.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해 예쁜 아바타 스타 슈를 만들려고 열심히 게임을 했다. 못생기고 뚱뚱하고, 옷을 못 입는 아바타는 낮은 점수를 받았기 때문이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화장을 시작했다. '풀 메이크업'의 단계는 꽤 복잡했다. 얼굴에 컨실러, 파운데이션, 아이라인, 아이섀도, 블러셔까지 얹고 나면 30~40분이 훌쩍 지나는 것은 다반사였다. 대학생이 되었으니, 새 옷도 필요했다. 학생들이 자주 찾는 지하상가에는 테니스 스커트나 청반바지처럼 요즘 유행하는 옷들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었다. 그런 매장에서 파는 옷들은 대부분 '프리 사이즈'라고 했다. 하지만 프리 사이즈라고 했던 옷은 내게 맞지 않았다. 친구들은 이런 예쁜 옷을 입기 위해 다이어트를 결심했다. 결국 나도 살을 빼고 짧은 치마와 바지를 입었다. 교복만큼이나 계단을 올라가는 것도, 밥을 먹는 것도 힘들었다. 사람들은 이런 옷을 입고 정성스레 화장한 여자들을 보고 '예쁘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예쁜 여자'가 되려고 예쁜 옷을 입고, 예쁘게 화장을 했다.
그런데 점점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파운데이션으로 덮인 피부에 빨간 반점이 생겼다. 처음에는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얼굴 전체로 번졌고, 눈꺼풀에는 수포 같은 것이 돋아났다. 몇 차례 화장품을 바꿔 봤지만, 헛수고였다. 피부 상태는 더 악화됐다. 몸을 꽉 조이는 바지를 입었더니, 질염에 걸렸다는 진찰도 받았다. 치료를 위해 병원을 다녔다.
건강 스트레스로 힘들 무렵, 인터넷을 하다가 '탈코르셋'이라는 단어를 접했다. 물론 코르셋이 중세시대 여성들의 체형 보정을 목적으로 한 속옷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현대판 코르셋은 좀 더 확장된 의미로, 여성에게 강요되는 각종 꾸밈노동이다. 탈코르셋은 그 현대판 코르셋을 벗어던지는 것이다. 번뜩 '나도 그동안 코르셋을 차고 있었던 걸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옷장을 둘러봤다. 신축성 없는 짧은 바지와 스키니진, 계단을 오르기 힘든 짧은 치마, 팔을 들 수 없는 오프숄더 티셔츠, 그리고 화장대에는 모공을 막는 각종 색조 화장품이 가득했다. 모두 누군가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어 구매한 것들이다. 하지만 그 많은 옷과 크레파스 같은 화장품이 온몸을 옥죄어 오고 있었다는 걸 깨달은 순간, '예쁘다'는 이유로 입고 했던 것이 결국 현대판 코르셋이었다는 걸 깨달은 순간, 누군가 내게 정말 코르셋을 조여 맨 듯 헛구역질이 났다.
꾸미지 않을 자유
혹자는 애초에 꾸미고 꾸미지 않고는 개인의 선택이 아니냐며 반문할 것이다. 물론이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을 꾸밀 자유가 있다. 누구도 개인의 취향에 대해 옳고 그름의 잣대를 들이댈 수 없다. 그렇지만 나는 되묻고 싶다. 우리의 취향이, 정말로 우리가 온전히 원해서 만들어진 것인지를….
오로지 예뻐지기 위한 화장과 옷, 신발과 머리가 정말 나를 위한 선택이었을까? 수십 번 스스로에게 질문했지만, 답은 '아니다'였다.
대부분의 여성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스스로를 억압하는 것에 얼마나 쉽게 노출되고, 무의식적으로 소비하는지를…. 매일 '아름답고 예쁜' 여성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는 미디어를 접하면서 우리는 그동안 '여성성'을 어떻게 규정해 왔는지….
모든 사람이 머리를 짧게 자르고, 화장품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스스로를 치장하는 데 조금이라도 불편한 사람이라면, 꾸밈노동을 벗어던져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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