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 함께 <안철수의 생각, 우리가 원하는 대한민국의 미래 지도>(김영사 펴냄)라는 제목의 대담집을 펴낸 제정임 세명대학교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가 한 말이다.
기자 출신의 제정임 교수가 지난 5월 중순부터 6월 하순까지 약 한 달 반 동안, 총 9차례에 걸쳐 2~3시간씩 안 원장을 인터뷰하면서 깨닫게 된 안철수 원장의 '진짜 면모'는 무엇일까. 제 교수가 쓴 <안철수의 생각> 서문을 통해 그가 가졌던 선입견과 새롭게 발견한 안철수를 들여다 본다.
"타고난 천재? 처음엔 실수 많은 대기만성형이었다"
▲ 제정임 교수 ⓒ연합 |
그런데 안 원장은 "어떤 질문을 던져도 막힘없이, 나의 기대를 넘어서는 이해도를 보여주었고 주요 정치사회적 쟁점에 대해 나름의 판단과 대안을 내놓았다"고 그는 밝혔다.
제 교수는 "특히 복지, 정의, 평화 등 안 원장 자신이 제시한 키워드와 관련된 사회불안의 해소, 경제 민주화와 동반성장, 남북관계의 개선 등에서는 꽤 깊은 성찰이 있었음을 드러냈다"며 "상당한 기간 동안 우리 사회의 주요 현안들에 대해 치열하게 연구하고 고민해 온 것 같았고 폭넓은 경험에다 강연과 저술을 통해 대중과 소통해 온 과정이 그의 사고에 밑거름이 되어준 듯 했다"고 평가했다.
제 교수가 갖고 있던 두 번째 선입견은 "그는 '타고난 천재'이며 처음부터 잘나간 사람이었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제 교수는 "그런데 의외로 '대기만성(大器晩成)'형 인물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얘기를 들어보니 그는 어떤 일이든 처음엔 부진하거나 실수가 많았다고 한다"며 "단거리 경주에서는 한 번도 이긴 적이 없다는데 오래 참고 달려야 하는 장거리에서는 곧잘 1등을 했다고 한다"고 밝혔다. 그는 "온화한 인상 이면에 만만치 않은 근성과 맷집을 가졌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없는 설움' 모르고 살았을 이력서와 달리, '돈 없는 설움'에 공감의 폭 넓었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 '없는 설움'을 모르고 살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깨졌다고 그는 털어 놓았다.
제 교수는 "이력서에 드러난 화려함과 달리 그는 '돈 없고 힘없는 이들의 설움'에 대해 공감의 폭이 넓어 보였다"고 주장했다. "1980년대 후반, 부부가 월급 30만~40만 원 가량의 국립대 조교와 전공의로 일하며" 빠듯한 생활을 했고, "결혼 후에 긴 전세살이를 하며 '집 없는 설움'도 겪었"으며, "회사를 차린 후에는 몇 년간 직원들의 월급을 주기 위해 '어음깡'을 하러 다녀야 했던" 그의 경험을 이같은 평가의 이유로 들었다.
제 교수는 "그가 복지와 정의를 앞세워 우리 사회의 미래상을 그린 것은 '차가운 머리'보다 '뜨거운 가슴'에서 출발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언뜻 우리 사회의 양지만 밟고 살았을 것처럼 보이는 그가 경제 민주화, 권력기관 개혁 등 다양한 쟁점에서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도 '이대로는 안 된다'는 사회 밑바닥의 아우성을 체험으로 들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 선입견은 안 원장이 공부와 일밖에 모르는 건조한 사람일 것이란 생각이었지만 알고 보니 아니었다"고 밝혔다. 안 원장은 '영화광'이며 '야구 마니아'고, '보통 아빠'였으며, '이웃집 남편'이었다는 것이다.
4월엔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더니 6월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제 교수는 본격적인 대담에 들어가기 전인 지난 4월 안 원장과의 첫 만남에서, 또 인터뷰가 끝날 무렵인 6월 하순 경 두 번이나 대선 출마에 대한 안 원장의 결심을 물었다고 밝혔다.
첫 번째 만남에서의 안 원장의 대답은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였고, 두어 달 뒤 안 원장의 답은 "제가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였다.
제 교수는 "인터뷰가 마무리된 이 순간까지도 나는 그가 대선에 출마할지, 하지 않을지 솔직히 알 수 없다"며 "이제 더 많은 사람들이 그와 이야기를 해볼 시간"이라고 했다.
안 원장은 '더 많은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어떤 결론을 내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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