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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검찰 '공정거래조사부'에 초토화된 이유

[분석]업무방해죄 무색한 '국민 배신죄'...김상조호 위기돌파 가능할까

'경제 검찰'로 불리는 공정거래위원회가 검찰의 '공정거래조사부(서울중앙지검 구상엽 부장검사)'에 의해 초토화되고 있다. 시장의 공정경쟁 지킴이를 자처하는 공정위가 직원들의 재취업을 위해서 기업들에게 '불공정거래'를, 그것도 조직적으로 강요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재취업 알선을 위해 압력을 가한 행위는 형법상 '업무방해죄'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는 중범죄다.

관가 일각에서는 금융감독원 등 다른 경제부처에서도 비슷한 관행이 있는데, 왜 검찰이 공정위만 집중적으로 수사하느냐면서 '불공정 수사'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명백하게 문서까지 만들어 스스로 증거를 남긴 공정위의 '불공정 관행'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차갑기만 하다. 명색이 '공정위'가 저지른 불공정 행위이기 때문이다.

국민의 시선이 차가워질 수밖에 없는 더 큰 이유는 세상에 공짜가 없기 때문에 재취업 알선의 대가로 공정위가 재취업 자리를 제공한 기업들에게 직무유기를 해왔다는 의혹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재벌개혁'의 기치를 높이 올린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역대 공정위가 조직적으로 퇴직 간부들의 재취업을 불법 알선해온 관행이 드러나면서 조직의 환골탈태에 고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속고발권, 재취업 대가로 '엿바꿔' 먹었나


공정위가 '경제 검찰'로까지 불리는 이유는 전속고발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담합 등 주요 공정거래법 위반 사건에 대해 검찰의 독점적 특권이라는 기소권마저 제한해 공정위가 검찰에 고발해야만 검찰이 기소할 수 있다. 이 소중한 전속고발권을 국민의 기대와 달리 재취업 알선 따위의 대가로 '엿바꿔 먹었다'는 것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국민에 대해 지은 죄는 업무방해혐의 정도가 아니다.

공정위의 재취업 알선이 얼마나 조직적이었는가는, 같은 시기(2015~2016년) 공정위의 1, 2, 3인자에 해당하는 공정거래위원장, 부위원장, 사무처장을 지낸 전직 고위간부들이 거의 동시에 구속된 것이 보여준다.

공정위가 81년 창설된 이후 37년만에 처음있는 대사건이다. 이들을 모조리 구속시킨 결정적 증거가 된 문서는 공정위가 지난 2009년 작성해 시행해 온 '바람직한 조직문화를 위한 퇴직자 관리 방안'이다.

이 문건에 따르면 공정위는 인사 적체를 해소하기 위해 대기업 20여 곳에 정년을 앞둔 퇴직자들의 재취업을 강요했다. 이 같은 내용은 운영지원과장이 작성해 '사무처장-부위원장-위원장'의 보고계통을 밟아 처리됐다.

검찰은 2015~2016년 공정거래위원장, 부위원장, 사무처장을 지낸 정재찬, 김학현, 신영선 씨를 모조리 구속시켰다. 특히 검찰은 부위원장으로 승진해 지난 1월 퇴임한 신영선 전 부위원장의 구속영장이 한 차례 기각됐는데도, 신 전 부위원장이 직접 보고를 받은 문서를 찾아내 재청구 끝에 지난 9일 구속시켰다.

조직적으로 벌어진 업무방해혐의 보고라인에 분명히 있었던 간부 중 어느 한 명만 구속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은 검찰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서슬퍼런 검찰의 칼끝이라면, 업무방해죄 공소시효 7년 이내에 문제의 보고라인에 있었던 간부들은 모두 사법처리를 피하기 어렵다. 현직 간부들도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 이미 2011년부터 공정거래위원장을 지낸 김동수(2011~2013년), 노대래(2013~2014년) 씨도 피의자로 소환조사를 받아 구속영장이 청구될 위기에 있다.

공직자윤리법에 따르면 4급 이상의 공무원은 퇴직 전 5년 동안 소속했던 부서 또는 기관의 업무와 밀접한 관련성이 있는 곳에 퇴직일로부터 3년간 취업할 수 없다. 공정위는 이 규정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경력세탁도 조직적으로 해주었다.

하지만 검찰은 기업측에서 불필요한 인력이라는 내부 판단에 따라 채용을 거절하려고 해도 공정위 측에서 조직적으로 압박한 것으로 보고 있다.

상당수는 공직자윤리법에 따른 취업심사도 제대로 거치지 않은 불법 재취업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기업에 재취업한 공정위 전직 간부 중 일부는 억대 연봉을 받으면서 출근조차 거의 하지 않아온 것으로 드러났다.

공정위 재취업 알선 문서는 매우 꼼꼼한 체계를 갖추었다. 국장급(2급)은 고문, 과장급(3∼4급)은 임원, 무보직 서기관(4급)은 부장 등 기업의 직급도 지정했다. 고시출신과 비고시 출신이냐에 따라 연봉도 차등 책정했다. 고시(5급) 출신은 2억5000만 원, 비고시(7·9급) 출신은 1억5000만 원이라고 한다.

개혁 대상 기업들에 재취업 구걸?


재취업 알선 대상이 된 대기업들의 명단도 충격적이다. 공정위가 개혁대상이라고 외쳐온 재벌들이기 때문이다. 취업 대상 기업은 삼성·LG·SK·현대기아차 삼성전자, 삼성물산, 삼성카드, SK하이닉스, SK에너지, 기아자동차, 롯데백화점, 현대건설, 현대백화점, 포스코특수강, KT, 한화S&C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이 망라됐다.

일각에서는 '조직적인 관행'이고 재취업 알선으로 개인적인 대가를 챙긴 것이 아닌데 전직 간부들을 모조리 구속하는 것은 너무하다는 동정론도 제기된다.

하지만 이들 간부들은 재취업 알선이 법에 위배된다는 인식 하에 문건이 아니라 구두로 처리되어야 한다는 등 대응 방안도 모색한 정황이 드러났다. 검찰은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에 따른 관피아 대책의 일환으로 "취업 제한 기간을 늘리고 공무원 재임 시 업무와의 관련성 판단 기준 등을 강화하겠다"는 정부 발표가 나오자 '퇴직자들의 기업 재취업 문제는 예민한 문제이니 문서로 남기지 말고 과장이 구두 보고를 하는 방식으로 하자"는 등, 위법성을 의식한 내용이 담긴 문건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상조 공정위원장은 재벌개혁의 상징 부처로서 공정위의 위상이 심각하게 훼손되는 사태에 직면해 내부 윤리 혁신안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공정위 안팎에서는 검찰의 수사가 일단락되는 시점에 김 위원장이 대국민 사과와 함께 현재 작업중인 혁신안을 발표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관가에서는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확실한 후속대책이 나오지 않으면, 김상조 위원장의 개혁 동력이 급격히 떨어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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