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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3300명 서명해도 꿈쩍 않는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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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3300명 서명해도 꿈쩍 않는 그들

[당신들을 위한 강의실은 없다] ⑦ 이화여대 교수 성추행 사건

K교수. 이름 세 글자를 밝힐 수 없어 K라는 이니셜로 대체되었지만 그를 고발하는 sns의 글을 보며 모두가 한 사람을 떠올렸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일이 아니었다. 학교에 입학해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이던 때부터, 가려진 민낯을 드러낼 미투 운동이 꼬리의 꼬리를 물고 이어질 때까지 K교수의 일화는 공공연히 떠돌아다니며 알게 모르게 우리들의 입을 막아왔다.

K교수는 자신의 성범죄를 넘어 '유명한 큐레이터 좀 꼬셔서 좋은 데서 전시도 하고 그래. 내가 여자라면 진짜 성공할 자신 있는데 너희는 왜 그걸 못하니?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 '너희도 배 선생님께 허벅지 좀 내어드려야 인생의 의미를 알 텐데' 등 교육자임을 빙자해 혐오로 가득 한 말들을 내뱉었다. 그는 자신의 언행이 범죄임을 지적하는 학생들에게 오히려 성을 도구화하라고 가르쳤다.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린 끝에 올해 4월 초, 학내 성희롱심의위원회는 그에게 파면을 권고하였다. 그러나 K교수는 파면 권고를 인정하지 않고 재심을 신청하였다. 결국 한 달이 미뤄진 5월에 되어서야 1차 심의와 동일한 성심위의 파면 권고를 받고 교원징계위원회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3월 21일, K교수의 진상조사와 처벌을 촉구한 기자회견이 있고 바로 다음날, 학생들은 K교수를 향한 분노를 가라앉힐 새 없이 음악대학 S교수의 만행을 마주해야했다. 조형예술대학과 음악대학의 연이은 미투 고발에서 목격한 대학과 문화예술계의 폐쇄적, 권력적인 구조는 고발 이후에도 해당 단과 학생들을 선뜻 움직일 수 없게 했다. 하지만 소속 단대에 상관없이 학생들은 자신들의 분노와 연대가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내길 바라며 포스트잇에 시, 글, 그림 등을 적어 K와 S교수의 방문을 가득 채웠다. 미투를 응원하고 함께하고자 자발적으로 모인 포스트잇 공동행동을 시작으로 교수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한 학생총회 안건에 거수한 1500명, 당신과 나를 위해 행진했던 2800개의 보라색 풍선, 3300명의 이름이 모인 서명운동. 우리는 끊임없이 같은 자리에서 "철저한 진상조사와 합당한 처벌"이라는 당연한 목소리를 냈다.


그에 대한 학교의 응답은 어떠했는가. 선배들의 용기로 오랜 시간 자행되어왔던 K교수의 행태가 폭로된 이후 가장 먼저 우리에게 돌아온 것은 교수들의 2차 가해였다. '왜 하필 우리가 먼저냐'라는 발언부터 '이건 개인의 문제다 동조하지 마라' 며 연대하고자 한 학생들에게 가해지는 압박과 심지어 '이런 짧은 치마를 입어서 미투운동이 일어나는 거야' 사건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돌리는 언행까지 있었다. 이런 소수의 교수들도 지금까지 학생들에게 존경받는 평범한 "교수님"이었을 것이다. 이들은 본인의 자각하지 못한 발언들이 학생들에게 피해 사실을 말할 수 없도록 강제하는 사회적 문제로서 작용한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어쩌면 이 사회에 만연한 평범한 교수들이다.

개강과 함께 시작된 미투 운동은 1학기가 끝나도록 파면 '권고'만 내려졌다. 학생회는 징계위원회에 학생 참여를 꾸준히 요구해왔지만 학교는 이를 무시했다. 또한 징계위원회 일시와 장소에 대해서는 대외비라며 알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학생회는 3300명의 '교원징계위원회의 조속한 진행과 K, S 교수 파면 촉구 서명'을 진행했다. 기자회견에서 뜻밖에도 한 기자를 통해 서명에 대한 답을 받을 수 있었다. "학생들의 주장과는 다르게 이미 교원징계위원회는 진행되고 있다" 학생들이 학교에 '그간 계속해서 징계위원회 진행 상황에 대해 요청해왔는데 왜 그 답을 기자를 통해서 알아야 하냐'고 묻자 학교는 '이미 아는 줄 알았다'는 어처구니없는 답변만 내놓았을 뿐이다.

피해 호소인들은 피해 사실을 증명해야하는 부담과 교수의 권력에 미래가 단절될 수 있다는 위험을 감수한 채 세상에 나섰다. 또 다른 피해를 막기 위해, 합당한 처벌을 위해 학생들은 학생총회, 공동행동, 한 장 한 장 소중히 붙여온 포스트잇으로 연대했지만 그들은 아직, 굳건히 남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더 할 수 있을까. 주변 대학교와 연대해 해당 교수들의 처벌과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요구하고 토론회를 열고, 교육부 간담회 등도 찾아가봤다. 하지만 가해자 지목된 교수들의 눈치를 보는 대학와 그 대학의 '자율성'을 존중해주는 교육부 덕분에 우리의 노력은 아무런 성과를 남기지 못했다. (관련기사 바로보기)

학내 성폭력 사건들은 만연했지만 피해자가 합당한 해결을 바라기 힘든 구조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교수들이 권력을 갖는 대학 구조 때문에 가해자는 아무런 징계 없이 사표를 수리해 다른 학교에서 교수직을 이어갈 수 있게 하거나, 감봉 등 경징계에 내려 수업을 계속함에 따라 추가적인 피해를 양산하는 등 합당한 처벌을 받고 있지 않다. 그런데도 이화여대는 계속해서 폐쇄적인 징계위원회 절차를 유지하고 있다. 징계위원회가 언제 어디서 열리는지 학생들에게 알려주지 않고, 징계 내용도 알 수 없고, 학생들은 징계위원회에 참여조차 할 수 없다. 이는 교수 성폭력 사건이 솜방망이 처벌로 그칠 수밖에 없었던 구조적인 원인이다. 지속적인 폭로와 미투에 대한 언론의 관심이 없더라도, 학생들이 해결하기 위해 직접 나서지 않더라도, 성폭력 사건의 철저한 진상조사와 합당한 처벌, 그리고 예방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대학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 K,S 두 교수의 파면을 촉구하는 이화여대 학생들의 집회. ⓒ이화여대 조형예술대 학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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