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혜인 의원 성평등가족부장관 지명 논란을 계기로 비례위성정당 문제가 새삼 도마에 올랐다. 비례위성정당은 2020년 선거법 개정으로 도입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해킹'하는 부정 행위였음이 다시 한 번 확인됐다. 그러면서 정치제도 개혁 논의가 오랜만에 재부상했다.
그러나 정치제도를 도대체 어떻게 바꿀지에 관해서는 정돈된 개혁안을 찾아보기 힘들다. 2020년 선거법 개정 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그때는 진보정당을 비롯한 정치개혁운동의 개혁안이 하나로 모였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 그것이었다. 그리고 어쨌든 이런 공통된 요구의 결과로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채택됐다.
비례위성정당을 통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훼손당한 뒤에는 한동안 다들 비례위성정당 방지법 제정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미 두 차례나 비례위성정당이 아무 문제없다는 듯 '활약'을 펼치고 난 지금 상황에서는 비례위성정당을 과연 법률로 금지할 수 있을지에 관해 회의적인 목소리가 많다. 더 나아가서는 비례위성정당 등장을 허용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놓고도 회의론이 제기된다.
그렇다면, 모처럼 도입됐지만 덫에 빠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대체하거나 넘어설 선거제도 개혁 대안은 무엇인가? 정치제도 개혁은 노회찬 의원의 필생의 과제였다. 또한 노회찬 의원은 이미 2010년대 초부터 연동형 비례대표제뿐만 아니라 다른 비례대표제 형태들 역시 한국 정치 현실에 맞춰 선거제도 개혁 대안으로 고민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노회찬, 구영식, <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 비아북, 2014).
그 뜻을 이어 정치개혁운동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노회찬재단은 10월 27일 "덫에 빠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넘어설 선거제도 개혁 대안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제22회 '함께맞는비' 포럼을 개최했다. 발표자로는 서울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밟으며 헌법과 선거제도를 연구하고 있는 조제희 변호사를 초청했고, 토론은 김준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무총장이 맡아주었다.
조제희 변호사는 비례대표제를 둘러싼 한국 사회의 여러 상식을 깨는 물음으로 발표를 시작했다. 예를 들어, 대다수가 '지역구의원'과 '비례대표의원'은 서로 대립하는 개념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그간 소선거구제와 정당명부비례대표제를 혼합해 사용해온(2020년 이전의 병립형이든 이후의 준연동형이든) 결과로 생긴 혼동이다. 많은 나라들에서 지역구마다 한 명이 아닌 여러 명의 국회의원을 뽑으며(대선거구), 이 경우 대개 비례대표제를 사용한다. 이런 나라에서는 지역구의원이 곧 비례대표의원이다.
또한 많은 이들이 비례대표제를 '정치신인, 소수자, 다양한 전문가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한 제도'로 이해한다. 이것 역시 정당명부비례대표제를 소선거구제를 보완하는 제도로 사용해온 한국의 경험에서 나온 오해다. 비례대표제는 투표의 비례성을 확보하는 것이 목적이지, 정치신인이나 전문가, 소수자를 배려하려는 제도가 아니다.
비례대표제에서는 유권자가 후보자를 선택할 수 없다는 통념 또한 잘못이다. 아일랜드에서 실시하는 단기이양식 비례대표제에서는 유권자가 인물에게 투표한다. 단, 복수의 후보를 선택해 순위를 매긴다. 또한 정당명부비례대표제를 실시하면서 (한국과 같은 폐쇄형 명부제가 아니라) 개방형 명부제를 병행하는 나라에서는 유권자가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뿐만 아니라 해당 정당이 제시한 후보들 가운데 한 명을 선택할 수 있다.
조제희 변호사는 비례대표제를 둘러싼 한국 사회의 이런 오해와 무지를 짚으면서, 이것이 그간 정치개혁 담론이 보여준 한계와도 관련 있다고 지적했다. 비례대표의원에 대한 정당투표를 도입한 2001년 헌법재판소 결정이 정당명부비례대표제의 발전에 한 획을 긋기는 했지만, 동시에 역설적으로 비례대표제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을 강화했다는 것이다. 정치개혁운동 역시 이런 고정관념을 제대로 교정하지 못했고, 그래서 이른바 '독일식 비례대표제'(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한 편의적 표현) 수입론에 상상력을 가두고 말았다.
조 변호사는 정치개혁운동 진영 스스로 비례대표제의 의의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양대 정당을 제외한 신진 세력이 유리하도록 만들자거나 소수자를 대표하는 이들이 원내에 진출하게 하자는 것이 비례대표제의 기본 취지가 아니다. 비례대표제를 해야 하는 이유는 오히려 단순하다. 이 제도만이 헌법이 규정한 '평등선거' 원칙을 실현하기 때문이다. 조 변호사는 특히 '투표의 성과가치의 평등'을 언급한 헌법재판소 판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해당 판결문은 이렇게 말한다.
"평등선거의 원칙은 평등의 원칙이 선거제도에 적용된 것으로서 투표의 수적 평등, 즉 복수투표제 등을 부인하고 모든 선거인에게 1인 1표(one man, one vote)를 인정함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투표의 성과가치(成果價値)의 평등, 즉 1표의 투표가치가 대표자 선정이라는 선거의 결과에 대하여 기여한 정도에 있어서도 평등하여야 함(one vote, one value)을 의미한다." (헌법재판소 1995. 12. 27. 선고 95헌마224, 239, 285, 373)
즉, 우리 헌법재판소는 평등선거 원칙을 단순한 1인 1표의 의미를 넘어 투표의 성과가치의 평등으로, 즉 1표의 투표가치가 대표자 선정이라는 선거의 결과에 대하여 기여한 정도에 있어서도 평등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이는 당선자 결정이 비례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뜻이며, 결국 헌법이 정한 평등선거 원칙이 비례적 대표의 원칙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를 함축한다. 조제희 변호사는 이런 점에서 비례적 대표의 원칙이 평등선거 원칙의 본질적 부분이며, 비례성을 갖추지 못한 선거제도는 평등선거 원칙을 위반한다는 점에서 위헌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정리했다.
그간 헌법재판소는 각 지역구의 인구 비례 문제에 한해 이 투표가치 평등 원칙을 적용해왔다. 그러나 사전적으로 지역구별 인구 균형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문제 못지않게, 사후적으로 당선자 결정에서 표의 등가성이 유지되고 있는가 하는 문제 역시 중요하다. 아니, 유권자의 의사 형성과 선거에 미치는 영향으로 볼 때, 후자가 훨씬 더 중대한 문제다. 헌법재판소의 1995년 판결로부터 "헌법상의 평등선거 원칙을 제대로 구현하려면 다수대표제가 아니라 비례대표제를 실시해야 한다"는 정당한 결론을 이끌어내야 한다.
다만 최근 헌법재판소는 현행 비례대표제의 3% 진입장벽 조항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리면서 비례대표제에 관한 진전된 인식을 보여줬다. "3% 저지 조항은 ... 합리적 이유 없이 투표가치를 왜곡하고 선거의 대표성을 훼손하는 것으로서 평등선거원칙에 위배하여 선거권, 피선거권, 평등권을 침해한다."(2020헌마 956, 2026. 1. 29.) 국회는 헌법재판소의 이런 판결에 따라 다음 총선 전까지 비례성을 더욱 강화하는 선거제도를 마련해야 하는 처지다. 양대 정당조차 정치제도 개혁 의제를 마냥 피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문제는 "다시 열린 정치제도 개혁 논의 과정에서 진보정당이나 사회운동이 이제 어떤 대안을 제시할 것인가"이다. 기껏 도입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잡음을 일으키기 전까지, 정치개혁운동의 표준 대안은 연동형 비례대표제였다. 하지만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과연 앞으로도 계속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조제희 변호사는 한국 사회에서 비례대표제의 가장 대표적이거나 이상적인 모델처럼 인식된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실은 (국가 단위에서는) 독일과 뉴질랜드 정도만 시행하는 대단히 예외적인 제도라고 지적했다. 다만, 강고하게 뿌리 내린 소선거구제에 대한 한국 사회의 선호와 조응할 수 있다는 점, 이미 시행되고 있는 소선거구제-전국단위 정당명부비례대표제 병립 모델의 틀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제도 변경을 할 수 있다는 점, 비례대표제에 대한 인식이 일천한 형편에서 정치선진국이자 강대국인 '독일'의 브랜드 효과가 컸던 점 등으로 인해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한국에서 '과대' 평가돼왔다.
조 변호사는 더 나아가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특유의 중대한 결함이 잠복해 있다는 점을 짚었다. 우선,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에서 위성정당 같은 부정 행위가 나타나는 것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제도 자체에 제도 해킹 리스크가 내재해 있다. 양대 정당이 비례위성정당을 통해, 혹은 위성정당 성격의 기존 소수정당을 활용해 '미끼 명부(decoy list)'를 만들고 자당 지지자들에게 (자당이 제출한 후보명부가 아니라) 이 명부에 표를 던지게 하면 결과적으로 양대 정당의 의석이 극대화될 수 있다. 실제로 한국뿐만 아니라 알바니아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
또 다른 결함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논란에서 이미 쟁점이 됐던 초과의석 문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에서 만약 특정 정당이 지역구선거에 압승해버리면, 정당투표에 따른 최종 의석의 비례적 배분을 위해 전체 의석을 늘려야만 한다(초과의석). 독일에서는 이 문제 때문에 연방의회의 총의석이 수시로 변했다. 한국에서 이 문제가 지적될 때마다 정치개혁운동 진영은 현재 인구 대비 국회 의석 수가 다른 나라에 비해 너무 적기 때문에 총의석을 충분히 늘릴 수 있다는 식으로 대응했다. 그러나 한국 시민들은 대체로 국회의원 증가에 부정적이다. 정치개혁운동 진영의 논리와 대중 정서 사이의 이런 충돌은 선거제도 개혁에 강력한 장벽이 돼왔다.
한데 최근 들어 정치개혁운동 쪽 논리가 더 궁색해지게 만드는 변화가 나타났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원산지인 독일에서 초과의석이 더는 발생하지 못하도록 총의석을 630석으로 고정시킨 것이다. 이에 따라 2025년 독일 총선부터는 정당투표 결과에 따른 의석 배정을 초과하는 지역구 당선자를 배출한 정당이 지역구 당선자 일부를 의석에서 배제하기 시작했다. 국회 의석 수 증가는 독일에서도 골칫거리였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정치개혁운동이 굳이 대중 정서와 충돌하면서까지 국회 총의석 확대를 선거제도 개혁의 필수 전제로 내세워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재고해봐야 한다.
그럼 이런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대체할 개혁 방안은 무엇인가? 조제희 변호사는 이제 정치개혁운동이 대선거구 정당명부비례대표제('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여러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이 명칭을 더 선호한다고 조 변호사는 밝혔다)를 대안으로 제시하자고 제안했다. 여러 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대선거구에서 유권자가 정당에 던진 표에 비례해 당선자를 가리는 이 제도는 가장 보편적인 형태의 비례대표제다. 조 변호사는 대선거구 비례대표제와 함께, 유권자가 개별 후보자도 선택할 수 있도록 개방형 명부제를 병행하자고 덧붙였다. 발표자가 정리한 이 제도의 강점은 다음과 같다.
1. 한국 사회의 정치 세계관의 중핵인 소선거구제와 결별함으로써 소선거구적 사고와 인식의 틀을 해체한다.
2. 모든 의원이 지역구의원이자 비례대표의원이 되므로 지역구의원과 비례대표의원의 구별과 위계가 사라진다.
3. 유권자에게 인물 선택권을 보장함으로써 "비례대표의원은 직접 선출된 의원이 아니다"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다.
4. 광역단위가 선거구의 기초가 되고 선거구당 인구 비례에 따라 선출 정원이 배정되므로, 선거구 조정이나 재설정 문제가 생기지 않고 현역 의원들의 기득권도 가급적 보장된다. 이에 따라 현역 의원들의 이해관계에 따른 선거제도 개혁 반대론을 최소화할 수 있다.
5. 현행 의석 정수 300석을 늘리거나 지역구의석을 축소할 필요가 없다.
6. 지역 유권자 입장에서는 자기 지역구 의원이 1명에서 여러 명으로 늘어나는 효과가 있고, 개방형 명부제의 특성상 지역 유권자와 밀착하는 것이 후보 당선에 유리하므로, "비례대표제에서는 의원이 지역구 유권자와 멀어진다"는 흔한 비판에서 벗어난다.
조제희 변호사는 이제까지 국회에 제출됐던 법안 중에서는 지난 21대 국회에서 박주민 의원이 대표발의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이런 대선거구 비례대표제의 방향에 가장 부합한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정치개혁운동이 이미 만신창이로 오염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다시 내세우기보다는 이 법안의 아이디어와 정신을 되살리는 것이 더 현실적이고 바람직하다고 역설했다.
토론에 나선 김준우 사무총장은 발표 내용에 대부분 동의하다고 전제하면서, 지금 무엇보다 문제는 정치개혁운동 내부에 합의된 개혁안이 없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헌법재판소의 3% 진입장벽 위헌 판결 등도 있기 때문에 올해 말부터 내년 초에 이르는 시기에 선거법 개정안이 다시 여럿 제출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그 전까지 정치개혁을 바라는 세력들이 어떻게든 합의된 개혁안을 만들어내야 한다.
김준우 사무총장은 덧붙여, "선거제도의 비례성을 강화하기만 한다면, 국회 의석 수를 줄일 수도 있다"는 입장을 제시하는 것도 생각해볼 만하다고 언급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계속 집착하지 않는다면, 충분히 발상의 전환을 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파격적인 주장이지만, 일단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정치개혁의 상상력을 넓히자는 취지에는 토론회의 다른 참석자들도 전반적으로 공감했다.
한 참석자는 대선거구 비례대표제나 아일랜드식 비례대표제 같은, 한국 사회에는 아직 낯선 선거제도를 더 널리 알리기 위해 이런 제도를 시행하는 나라들의 시민의 목소리를 소개하는 것도 좋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런 나라들의 시민으로부터 이 제도들이 어떻게 자연스러운 정치 문화로 뿌리내리고 있는지 듣는다면, 한국 사회의 정치적 상상력을 넓히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었다.
이날 토론회는 정치개혁운동의 새 대안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찾아 나가는 토론의 첫 시작이었다. 참석자들은 새 합의안을 보다 빠른 속도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점을 확인하며 토론회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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