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는 주꾸미, 가을에는 낙지라는 말이 있다. 여름 산란기를 넘긴 낙지는 가을 들어 살이 오르고 육질이 연해진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이맘때 낙지를 찾는 이유다.
낙지는 예부터 기운을 돋우는 식재료로 여겨졌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는 마른 소에게 낙지 몇 마리를 먹이면 금세 힘을 쓴다는 기록이 전한다.
영양학적 근거도 있다. 낙지는 고단백·저지방 수산물이다. 특히 타우린 함량이 높다. 타우린은 담즙산과 결합해 콜레스테롤 배출을 돕고 간 기능 유지와 피로 회복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낙지에도 콜레스테롤이 들어 있지만 타우린이 함께 들어 있어 혈중 콜레스테롤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다. 철, 아연 등 무기질도 고루 들어 있다.
박도 가을 식재료다. 여름내 넝쿨에서 자란 박은 늦여름부터 가을 사이 거둬들인다. 박은 수분이 95% 안팎이고 열량이 낮다. 칼륨이 풍부해 체내 나트륨 배출을 돕고 식이섬유가 들어 있어 소화에도 부담이 적다. 한방에서는 이뇨 작용을 돕고 몸의 열을 내리는 식재료로 써 왔다. 국물 요리에 박을 넣으면 은은한 단맛이 우러나 간을 세게 하지 않아도 맛이 산다.
두 재료의 궁합도 맞다. 낙지가 단백질과 타우린을 채우고 박은 수분과 칼륨으로 국물의 짠맛 부담을 덜어준다. 여름내 지친 몸을 추스르는 가을 보양식으로 손색이 없는 조합이다.
이 둘을 한 냄비에 넣은 음식이 박속낙지탕이다. 충남 서산·태안 갯마을에서 전해 내려온 향토음식으로 갯벌에서 잡은 낙지와 초가지붕 위에서 거둔 박 속을 함께 끓여 먹던 데서 비롯됐다.
청주 도심을 벗어나 상당구 남일면 쌍수리 공군사관학교 인근에 자리한 '힘찬낙지'는 이름 그대로 낙지 한 가지 재료에 집중하는 낙지요리 전문점이다. 산낙지 연포탕을 비롯해 매운갈낙전골, 산낙지볶음, 산낙지탕탕이, 낙지덮밥 등 메뉴 대부분이 낙지를 주재료로 한다.
낙지는 신선도가 맛을 좌우하는 식재료다. 살아 있는 상태에서 바로 조리해야 살의 탄력과 단맛이 유지된다. 이 집 연포탕은 산낙지를 쓴다. 넓은 전골냄비에 맑은 육수를 붓고 도톰하게 썬 박과 콩나물, 미나리를 둘러 담은 뒤 낙지를 통째로 넣는다.
낙지 요리의 성패는 익힘에 달려 있다. 낙지 살은 근육 단백질과 콜라겐으로 이뤄져 있어 열을 받으면 수축한다. 짧게 익히면 부드럽지만 조금만 오래 끓여도 수분이 빠지며 질겨진다. 집에서 연포탕을 끓이면 낙지가 고무처럼 씹히는 이유다.
이 집은 이 부분을 직원이 직접 챙긴다. 낙지가 알맞게 익는 시점에 맞춰 테이블에서 바로 건져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준다. 손님이 타이밍을 가늠할 필요가 없다. 덕분에 낙지는 질긴 식감 없이 부드러웠고 씹을수록 낙지 본연의 단맛과 바다 향이 살아났다. 낙지를 매일 다루는 전문점이기에 가능한 손길이다.
국물은 맑고 시원하다. 박에서 우러난 단맛에 콩나물의 개운함, 미나리의 향이 더해진다. 국물을 머금은 박은 부드럽게 씹히며 낙지와 다른 식감을 냈다.
밑반찬도 인상에 남았다. 반찬을 모두 직접 만든다고 했다. 돼지감자로 담근 장아찌를 비롯해 두부조림, 애호박나물, 고추잎무침, 꽈리고추찜 등등 가짓수보다 손맛이 느껴지는 찬들이었다. 식당에서 한 끼를 먹었다기보다 누군가의 집에서 차려준 밥상을 받은 느낌에 가까웠다.
제철 재료를 골라 제 맛이 나도록 끓이고 가장 좋은 상태로 손님 앞에 내놓고 곁들이는 반찬을 손수 만든다. 가을 보양식으로 낙지를 떠올린다면 한 번 들러볼 만한 집이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