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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AI를 잘 쓰는 아이보다, 멈출 줄 아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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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AI를 잘 쓰는 아이보다, 멈출 줄 아는 아이

'무엇을 만들 수 있는가' 보다 '누구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는 지' 먼저 생각하는 것

[도기봉 칼럼] AI를 잘 쓰는 아이보다, 멈출 줄 아는 아이-성 교육의 날(4일)에 부쳐

▲도기봉(철학박사) 대구청소년성문화센터장ⓒ도기봉 제공

“선생님, 이 사진 진짜예요?”

요즘 청소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이런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얼굴도, 목소리도 너무 자연스러워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만들어진 것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시대다.

지난 7월 국가보안기술연구소는 경찰청·국가정보원·검찰청 등 관계기관과 함께 '2026 국가디지털포렌식백서'를 처음 발간했다. 백서는 지난해 디지털포렌식 분야의 주요 이슈로 ‘AI 기술 확산에 따른 신종 범죄 증가’를 꼽았다. 생성형 AI를 이용한 딥페이크 영상 조작, AI 음성 합성 보이스피싱, 자동화된 피싱과 금융사기 등이 기존 범죄보다 정교하고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중·고등학생의 SNS 사진과 졸업앨범 사진을 이용해 얼굴을 음란물에 합성하고 유포한 딥페이크 성범죄 사례는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아이들이 아무 생각 없이 올린 평범한 사진 한 장이 범죄의 재료가 될 수 있다면, 우리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AI 사용법만 가르치면 될까. 물론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AI 시대에 아이들에게 더 먼저 가르쳐야 할 것은 “할 수 있다고 해서 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기준이다.

친구의 사진을 내려받아 재미로 합성하고, 허락 없이 얼굴을 이용하고, 단체대화방에 다시 공유하는 행동은 아이에게 장난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피해자에게는 자신의 존엄과 일상을 무너뜨리는 폭력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이제 교육은 기술교육에서 판단교육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이걸 만들 수 있나?”보다 “이걸 만들어도 되는가?” “친구에게 보내도 될까?”보다 “그 친구가 동의했을까?”

이 질문을 먼저 할 수 있는 아이를 길러야 한다.

특히 성교육도 달라져야 한다. 이제 성교육은 ‘내 몸을 지키는 교육’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타인의 몸과 사진, 목소리와 이미지를 함부로 다루지 않는 교육​까지 포함해야 한다. 디지털 공간에서도 동의와 경계 존중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가르쳐야 한다.

9월 4일 성교육의 날을 맞아, AI 시대의 성교육이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 다시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AI와 디지털 기술이 일상 깊숙이 들어온 지금, 성교육은 단순히 내 몸을 보호하는 교육을 넘어 타인의 몸과 이미지, 목소리와 경계를 존중하는 교육​이어야 한다. 그리고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만큼이나 사용하지 말아야 할 순간을 판단하는 힘도 길러야 한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의 대응도 중요하다. 피해를 입었다면 혼자 감당하지 말고 증거를 보존하고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불법 합성물을 발견했다면 호기심으로 저장하거나 퍼뜨리는 대신 신고하고 확산을 막아야 한다.

수사기관은 범죄가 발생한 뒤 ‘찾아내는 힘’​을 키운다. 그렇다면 교육은 범죄가 발생하기 전에 ‘멈추는 힘’​을 길러야 한다. 학교와 가정, 지역사회가 아이들에게 세 가지 질문을 가르쳤으면 한다.

“이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상대방은 동의했을까?” “내가 끝까지 책임질 수 있을까?”

AI는 앞으로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게 만들 것이다. 새로운 기술이 나올 때마다 금지 목록을 만들어 외우게 할 수는 없다. 필요한 것은 기술보다 오래가는 판단의 기준이다.

무엇을 할 수 있는가보다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가를 아는 것. 무엇을 만들 수 있는가보다 누구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는 것. 그리고 잘못된 순간에는 스스로 멈추는 것.

AI 시대에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최고의 능력은 어쩌면 가장 첨단의 기술이 아닐지도 모른다. 멈춰야 할 때 멈추는 힘, 타인을 존중하는 힘, 자신의 행동에 책임지는 힘.

AI를 잘 쓰는 아이보다 AI 앞에서 스스로 판단할 줄 아는 아이가 필요한 이유다.

나는 그것이 AI 시대, 우리가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가장 중요한 디지털 시민교육이자 성교육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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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호

대구경북취재본부 김기호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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