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한 실험이 있다. 코를 막고 사과 한 조각과 양파 한 조각을 씹어 보자. 아삭한 식감과 단맛, 약간의 신맛은 느껴지지만 둘을 구분하기는 어렵다. 코를 떼는 순간 사과와 양파의 정체가 분명해진다. 우리가 '맛있다'고 말할 때 실은 '향이 좋다'고 말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맛의 진짜 주인공은 혀가 아니라 코다.
혀가 감지하는 맛은 다섯 가지뿐이다. 단맛, 짠맛, 신맛, 쓴맛, 그리고 감칠맛. 우리가 흔히 '맛'이라 부르는 풍부하고 복잡한 감각, 곧 풍미(flavor)는 이 다섯 가지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딸기 맛과 포도 맛, 커피 향과 된장 향을 구별하게 해 주는 것은 혀가 아니라 후각이다. 흔히 맛의 8할, 9할이 향이라고들 말한다. 정확한 숫자로 못 박기는 어렵지만 풍미의 대부분이 후각에서 온다는 데에는 과학자들의 견해가 대체로 일치한다.
후각에는 두 갈래 길이 있다. 하나는 코로 직접 냄새를 맡는 길(정비강 후각)이고 다른 하나는 입안의 음식이 목 뒤로 넘어갈 때 향이 코 뒤쪽으로 올라가는 길(후비강 후각)이다. 우리가 음식을 먹으며 느끼는 풍미의 핵심은 바로 이 후비강 후각이다. 신경과학자 고든 셰퍼드는 이 원리를 '뉴로가스트로노미'라는 이름으로 정리하며 풍미가 사실상 뇌가 후각과 미각을 합쳐 만들어 내는 이미지라고 설명했다(Shepherd, 2006). 감기에 걸려 코가 막히면 음식 맛이 밋밋해지는 것도 코로나19로 후각을 잃은 사람들이 '맛을 잃었다'고 호소한 것도 모두 같은 이유다. 미각이 아니라 후각이 멈춘 것이다.
그렇다면 향의 실체는 무엇인가. 음식의 향은 코로 날아드는 수백에서 수천 가지 휘발성 화합물의 조합이다. 커피만 해도 밝혀진 향기 성분이 800가지가 넘는다. 흥미로운 것은 이 향의 상당수가 원재료에 처음부터 있던 것이 아니라 열을 가하는 과정에서 새로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생두에서는 나지 않던 수백 가지 향이 로스팅의 마이야르 반응을 거치며 피어난다. 굽고 볶고 끓이는 조리는 결국 향을 빚는 작업인 셈이다.
이 원리는 요리의 오래된 오해 하나를 바로잡아 준다. 흔히 스테이크를 강한 불에 겉부터 익히는 '씨어링(searing)'이 육즙을 가둬 준다고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19세기의 낡은 가설에서 비롯된 이 통념은 여러 실험에서 반박되었다. 겉을 익힌 고기가 수분을 더 지켜 주지도 않는다. 씨어링의 진짜 목적은 마이야르 반응을 빠르게 일으켜 겉면에 수백 가지 향과 풍미를 만드는 데 있다. 오히려 갈변은 표면의 수분이 날아가면서 일어난다. 고기의 육즙은 겉을 지지는 데서가 아니라 알맞은 속 온도, 그리고 구운 뒤 잠시 두어 육즙을 안정시키는 '레스팅'에서 지켜진다.
향을 살리는 지혜는 부엌 곳곳에 있다. 양파를 오래 볶아 갈색으로 만드는 카라멜라이징, 빵의 노릇한 껍질, 누룽지의 구수함은 모두 갈변 반응이 향을 빚어낸 결과다. 향신료와 허브를 다루는 방식도 과학이다. 향기 성분의 상당수는 기름에 잘 녹기 때문에 마늘이나 고춧가루, 향신료를 기름에 먼저 볶으면 향이 음식 전체로 퍼진다. 반대로 파슬리나 깻잎 같은 연한 허브, 참기름과 후추처럼 향이 쉽게 날아가는 재료는 조리 마지막에 넣어야 향을 지킬 수 있다. 오래 끓이면 애써 넣은 향이 증발해 버리기 때문이다. 같은 재료로도 '언제, 어떻게' 향을 다루느냐에 따라 음식의 완성도가 달라진다.
향은 다른 감각과 하나 더 다른 점이 있다. 기억, 감정과 유난히 가깝게 이어져 있다는 것이다. 후각 신호는 뇌에서 감정과 기억을 담당하는 부위로 곧장 전달된다. 어떤 냄새가 문득 오래전 어느 날의 기억을 통째로 불러오는 경험, 갓 지은 밥 냄새나 특정 커피 향에 마음이 놓이는 순간이 여기서 나온다. 향은 맛을 넘어 기억을 담는 그릇이기도 하다.
이 원리는 식탁에서 쓸모가 있다. 첫째, 향을 잘 쓰면 덜 넣고도 만족할 수 있다. 소금과 설탕을 줄인 음식이 밋밋하게 느껴질 때 허브와 향신료, 발효의 향이 그 빈자리를 채운다. 저염·저당 식단이 향으로 완성된다는 뜻이다. 둘째, 향은 온도에 민감하다. 뜨겁고 갓 조리했을 때 향기 성분이 활발히 날아오르므로 향을 즐기려면 알맞게 따뜻할 때가 좋다. 셋째, 커피와 차, 와인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도 여기서 나온다. 입에 대기 전에 먼저 향을 맡고 온도가 식으며 달라지는 향의 변화를 함께 느끼는 것이다.
잘 먹는다는 것은 잘 맡는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바쁘게 삼키기만 하면 놓치고 잠시 코를 열어 향에 집중하면 익숙한 한 끼도 새롭게 다가온다. 향은 값을 따로 치르지 않고 누릴 수 있는 가장 풍요로운 감각이다. 오늘 마시는 커피 한 잔에서 그 향부터 천천히 맡아 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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