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지방선거를 사흘 앞둔 5월 31일 더불어민주당 의원택 전북도지사 후보 선대위와 국민의힘 전북자치도당이 논평을 내고 각을 세웠다.
당시는 이원택 민주당 후보와 김관영 무소속 후보 간 혈투가 최정점에 달한 시점이었다. 같은 달 28일부터 여론조사 공표나 인용 보도가 금지된 기간이어서 깜깜이 속에서 각자의 지지자들이 막판 총력전을 경주했다.
왜 느닷없이 이 후보와 김 후보의 공방에 국민의힘이 끼어들었을까?
이원택 후보 선대위가 논평을 낸 것이 공방의 발단이 됐다. 이 후보 선대위는 이날 "국민의힘 지지층이 김관영 무소속 후보로 이동하는 흐름을 막아야 한다"며 "전북의 고립을 막고 이재명 정부의 국정동력을 사수하기 위해 민주당으로 총집결해 달라"고 주창했다.
그러자 곧바로 국민의힘 전북도당이 이원택 후보를 향해 "허위사실 유포와 네거티브 공세를 즉각 중단하라"고 반박하고 나섰다.
국민의힘 전북도당은 성명을 통해 "국민의힘 지지층이 무소속 김관영 후보로 이동한다는 흐름은 근거 없는 네거티브"라며 "당장 멈추라"고 거칠게 문제를 삼았다.
국민의힘 도당은 "이원택 후보가 김관영 후보에게 밀리는 기색이 역력해지자 이성을 잃고 조작과 선동에 매달리고 있다"며 "민주당 텃밭에서 낙선할까 두려워 정당한 선거운동은 외면한 채 조작 선동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전북도당은 그래도 분이 안 풀렸는지 "양정무 국민의힘 도지사 후보를 중심으로 도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 정당한 선거운동을 펼치고 있다"며 "이원택 후보는 '막대기만도 못하다'는 유권자들의 평가를 듣지 않도록 자중해야 할 것"이라고 목청을 돋웠다.
민주당 양지 텃밭인 전북에서는 '막대기만 꽂아놓아도 당선된다'는 현실을 끄집어 내 이 후보를 힐난한 것이다.
집권여당 후보와 무소속 후보 간 싸움에 제1야당인 국민의힘이 덤으로 공격을 받으니 전북도당 입장에서는 부화가 치밀고 굉장히 억울할 법도 했다.
하지만 이 장면은 비상계엄과 내란 국면 이후 몰락의 길을 걸어온 전북 보수층의 위태로운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어반스케치'로 해석됐다.
현장에서 직접 보고 그리는 스케치의 제목이 '민주당 텃밭 내 국힘의 비극'이라면 부제는 '초토화된 기반, 우왕좌왕하는 지지층' 정도로 달 수 있을까?
6·3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은 맥을 못 추었다.
2024년 12월 비상계엄 선포 이후 '내란당'으로 몰려 지역민들의 비난과 눈총이 심해 표를 달라고 읍소하기조차 쉽지 않은 형국이었다.
'국힘' 간판을 걸고 뛰겠다는 정치적 자원도 많지 않아 전북도지사 후보 1명과 광역 지역구 의원 1명을 포함한 비례 2명, 기초단체장 후보 1명, 지역구 기초의원과 비례 6명 등 총 13명의 후보만 냈을 뿐이다.
4년 전에 14개 시·군 단체장 후보를 내고 지방의회 후보까지 줄줄이 선관에 이름을 올렸던 때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었다.
성적표는 '처참'이란 단어 외에 적절한 어휘가 생각나지 않는다. 제1야당이 광역 비례의원 1석만 거머쥐었으니 그야말로 '국힘 초토화'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기초의원 비례의 경우 정당 지지율에 따라 의석이 배분되지만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에 돌아가며 국민의힘 비례는 단 1석도 손에 쥐지 못하는 심각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다시 전북도지사 선거로 돌아가 보자.
국민의힘 양정무 후보가 6·3 지방선거에서 얻은 표는 3만8100표로 4.1%의 득표율을 발휘하는 데 그쳤다. 내란당의 후폭풍이 민주당 텃밭에서 그만큼 거세게 불었다는 말이다.
통상 전북의 보수층 지지기반은 최소 15%에서 최대 20%라는 게 지역 정치권의 정설이다.
2010년 제5회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계열인 당시 한나라당 전북도지사 후보인 정운천 후보의 득표율은 18.2%를 기록했고 4년 뒤 제6회 선거의 새누리당 박철곤 후보도 17만7000표를 손에 쥐어 20.5%의 득표율을 과시했다.
4년 전인 2022년 제8회 지방선거에 국민의힘 이름을 달고 나선 조배숙 후보의 득표율도 17.9%를 기록하는 등 전북의 보수가 결집할 경우 15~20% 득표는 거뜬했다는 게 그간의 중론이었다.
과거와 비교할 때 올해 6월 지방선거에서 10% 이상 '대거 까먹은 셈'이다.
'집을 떠난' 보수의 표는 과연 어디로 갔을까? 일거에 몰락한 기반을 전북에서 되살릴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 전북 정치권은 "당분간 전북에서 보수 재건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혹자는 "내란의 잔당을 극복하고 과거의 전북 기반을 회복하려면 최소 10년에서 20년은 걸릴 것"이란 극단적 비관론을 내놓고 있다.
진보와 보수의 건강한 견제와 경쟁이 지역정치를 활성화할 수 있겠지만 전북에서 보수가 끼어들 틈은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정운천 전 의원 등 호남의 보수대표로 인정받아온 걸출한 슈퍼스타도 전북 정치를 떠난지 오래이다. 구조적 악순환에 시달리고 있는 전북 국민의힘에 대한 중앙당의 서진 정책도 보이지 않는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선거과정에서 전북을 단 한번도 찾지 않았다.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전북이 급속도로 '사막화'되고 있지만 토질을 개선하려는 물뿌리기조차 시도하지 않는 셈이다.
대신에 국민의힘 전북도당만 고개를 푹 숙였다.
개표 결과 이후 도당은 입장문을 내고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결과를 무겁고 겸허한 마음으로 받아들인다"며 "이번 선거 결과는 국민의힘에 대한 도민들의 엄중한 평가이자 준엄한 질책이라고 생각한다"고 몸을 낮췄다.
전북도당은 "무엇이 부족했는지 깊이 성찰하고 변화와 쇄신의 길로 나아가겠다"며 "그럼에도 도민들꼐서 광역의원 1석을 통해 전북정치의 다양성과 균형이 필요하다는 뜻을 보여주셨다"고 말했다.
말썽은 중앙정치가 부리고 지방 기반이 되레 사과를 해야 하는 전북 국힘의 현실.
뜻있는 인사들은 "중앙당 차원에서 전북을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변한다. 사막에 물도 주고 씨앗도 뿌리는 등 재건의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 할 것이란 주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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