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서던 어느 날 문득 공기가 달라졌음을 느낀다. 아직 아침저녁으로는 차갑지만 낮볕 아래 서면 따스함에 어깨가 절로 펴진다. 매화와 벚꽃의 개화 시기를 알리는 소식이 들려오고 거리의 가로수에는 초록빛 물이 오르기 시작한다. 봄이 오고 있다.
추운 겨울을 보내고 계절의 변화를 가장 먼저 알아채는 감각 기관은 무엇일까? 눈일 수도 있고 피부일 수도 있지만, 우리 조상들은 귀로 봄을 들었다.
꾀꼬리의 첫 울음 소리, 시냇물 흐르는 소리, 봄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소리. 그리고 그 소리들을 음악에 담았다. 오늘은 우리 전통예술 속에 깃든 봄의 감각을 찾아 떠나본다.
꾀꼬리가 춤을 추다, 춘앵전
봄을 노래한 우리 예술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춤을 꼽으라면 단연 춘앵전(春鶯囀)이다. ‘봄날 꾀꼬리가 지저귄다’는 이름 그대로, 이 춤은 봄날 버드나무 가지 사이를 노니는 꾀꼬리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춘앵전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는데, 조선 순조 때 효명세자가 어머니 순원왕후의 사순(四旬, 마흔 살) 잔치를 위해 직접 창작했다는 설이 가장 널리 알려져있다.
효명세자는 어린 나이에 대리청정을 맡아 국정을 이끌면서도 예술에 남다른 조예가 있어 여러 궁중 정재(呈才)를 창작했는데, 춘앵무는 그 가운데서도 빼어난 작품으로 손꼽힌다.
춘앵전은 단 한 명의 무용수가 추는 독무(獨舞)이다. 화문석(花紋席)이라 불리는 작은 돗자리 위에서 춤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루어진다. 돗자리의 크기는 가로세로 약 1미터 남짓. 그 좁은 공간 안에서 무원은 꾀꼬리의 날갯짓, 가지 위에 앉았다 날아오르는 모습, 고개를 갸웃거리며 노래하는 자태를 온몸으로 표현한다.
제약이 예술이 되는 순간이다. 넓은 무대를 활보하는 역동적인 춤과 달리 춘앵무는 절제와 응축의 미학을 보여준다. 한 발을 떼어 내딛는 것조차 조심스럽고 소매를 들어 올리는 손끝에는 수십 가지 감정이 담긴다.
무용수가 입는 의상은 꾀꼬리를 상징하는 노란색 앵삼(鶯衫)에 초록색 하피(霞帔)를 두른 모습-버들잎 사이에 앉은 꾀꼬리의 빛깔 그대로이며, 머리에는 화관을 쓰고 양 손에는 한삼을 끼어 춤을 춘다.
현재 춘앵전의 반주 음악은 「평조회상(平調會相)」 중 상령산, 중령산, 세령산, 염불도드리, 빠른도드리, 타령을 연주한다. 춤의 절정은 '화전태(花前態)'라 불리는 대목이다.
꽃 앞의 아름다운 자태라는 뜻으로, 효명세자가 직접 지은 창사(唱詞)에도 "최애화전태(最愛花前態), 꽃 앞의 자태가 참으로 사랑스러우니"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조선시대 정재의 창사 대부분이 국왕의 공덕을 칭송하거나 장수를 비는 내용인 데 비해, 춘앵전의 창사는 아름다운 사람의 모습을 서정적으로 묘사하고 있어 그 자체로도 특별하다. 음악과 춤, 의상과 노래가 모두 봄을 향해 있다. 춘앵무를 보고 있으면 공연장 안에도 따스한 봄볕이 스며드는 듯하다.
맑고 높은 봄의 소리, 청성곡
춤이 봄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면, 음악은 봄을 청각으로 들려준다.
대금 독주곡 「청성곡(淸聲曲)」은 그 이름처럼 맑고(淸) 높은(聲) 소리로 봄의 정취를 담아낸다. 청성곡은 본래 '청성자진한잎'이라 불리는 곡으로, 가곡 「이수대엽(二數大葉)」에서 파생되었다. 19세기 금보(琴譜)인 『삼죽금보』(1841)에 "소리가 높고 맑기 때문에 청성삭대엽이라 부른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만큼 이 곡은 예부터 맑은 음색으로 사랑받았다.
원래 가곡 반주 음악에서 출발했으나 점차 기악곡으로 변모했고, 조선 말기 이후로는 관악기 연주자들이 즐겨 연주하는 독주곡이 되었다.
청성곡의 매력은 대금 특유의 청아한 음색에 있다. 대금은 맑은 소리를 내는 취구(吹口)와 독특한 떨림을 만들어내는 청공(淸孔)을 가진 악기다.
청공에 붙인 갈대 속청이 떨리면서 만들어내는 소리는 다른 어떤 악기에서도 들을 수 없는 신비로운 울림이다. 청성곡을 연주할 때 대금은 높은 음역을 자유롭게 오가며, 그 소리가 마치 봄바람에 실려 오는 듯 맑고 시원하다.
청성곡의 또 다른 특징은 정해진 장단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호흡으로 연주한다는 점이다. 가곡의 기본 장단인 열여섯 박 구조에서 벗어나 연주자의 숨결에 따라 선율이 길어지기도 하고 짧아지기도 한다. 마치 봄날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듯, 음악이 공기 중에 아른거린다. 겨우내 움츠렸던 만물이 기지개를 켜며 솟아오르는 봄의 생명력, 그 싱그러운 기운이 청성곡의 선율에 담겨 있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풍류방에 모여 거문고와 가야금, 대금과 피리로 음악을 즐겼다. 창 너머로 매화가 피고 버들가지가 흔들리는 봄날, 풍류방에서 청성곡 한 곡조가 흘러나왔을 장면을 상상해본다.
높고 맑은 대금 소리가 봄 공기를 타고 퍼져나가는 그 순간, 음악과 자연이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청성곡은 대금의 대표적인 독주곡으로 정악 연주에서 빠지지 않고 무대에 오른다.
일상에 울려 퍼지던 민중의 봄노래
궁중에 춘앵전이 있고 풍류방에 청성곡이 있었다면, 들판과 마을에는 민요가 있었다. 봄이 오면 농사가 시작되고, 일하는 곳에는 늘 노래가 따랐다. 백성들은 봄의 기쁨을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노래했다.
12가사 중 하나인 「매화가」는 "매화야 옛 등걸에 봄철이 돌아를 온다"로 시작한다. 가사(歌詞)는 시조나 가곡과 함께 양반 사대부들이 즐기던 성악곡으로, 긴 사설을 거문고나 가야금 반주에 맞춰 읊조리듯 부른다.
대부분의 가사가 느긋하고 점잖은 것과 달리, 매화가는 12가사 중 유일하게 빠른 속도로 부르는 곡이다. 겨우내 앙상했던 매화나무 가지에 어느새 꽃망울이 맺히고, 그것을 보며 봄이 왔음을 실감하는 마음-아무리 점잖은 양반이라도 봄을 맞이하는 설렘만큼은 숨기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경기민요 「태평가」에는 "벌나비는 이리저리 펄펄 꽃을 찾아서 날아든다"는 후렴이 붙는다. 민요는 백성들이 일상에서 부르던 노래로 일하면서, 놀면서,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함께했다.
태평가에는 개나리와 진달래가 피고 학과 두루미가 춤추는 봄날의 풍경이 노랫말 곳곳에 펼쳐진다. 본래 1930년대 신민요로 만들어진 곡인데, 경기 명창 이은주가 전통 굿거리장단에 맞춰 부르면서 오늘날의 태평가가 되었다.
흥겨운 장단에 맞춰 이 노래를 부르면 절로 어깨가 들썩이고 서울과 경기 지역 사람들은 태평가를 들으면 덩실덩실 춤을 추곤 했다고 한다.
판소리 단가 「사철가」에는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어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허드라. 나도 어제 청춘일러니 오늘 백발 한심허구나"라는 대목이 나온다.
단가는 판소리 공연 전에 목을 풀며 부르는 짧은 노래로, 소리꾼의 기량을 보여주는 동시에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역할을 한다. 사철가는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을 노래하면서 인생의 무상함을 읊는데, 봄은 해마다 돌아오건만 한번 간 청춘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대목에서 깊은 여운이 남는다.
양반의 가사는 매화 한 송이에서 봄을 감지하고, 백성의 민요는 벌과 나비가 날아드는 들판에서 봄을 만끽하며, 소리꾼의 단가는 꽃이 핀 산을 보며 인생을 돌아본다.
같은 봄이되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고, 그래서 우리 음악은 더욱 풍성하다. 흥미로운 것은 모든 계층에서 나타난 봄노래에 담긴 이중적인 정서다. 꽃이 피어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움은 곧 지나간다.
봄은 오지만 금세 여름이 오고, 꽃은 피지만 곧 진다. 우리 민요는 봄의 기쁨을 노래하면서도 그 안에 무상함을 함께 담았다. 삶의 희노애락을 모두 깊게 나타낸 것이다.
봄, 우리 전통예술로 맞이하기
우리 조상들은 봄을 참으로 다채롭게 노래했다. 궁중에서는 꾀꼬리의 자태를 춤으로 빚어냈고, 풍류방에서는 맑고 높은 대금 가락으로 봄기운을 담았으며, 민중들은 계층과 성별 연령을 가리지 않고 봄을 즐기는 마음을 나눴다. 형식은 달랐지만 마음은 하나였다.
올봄에는 우리 음악으로 계절을 맞이해보면 어떨까. 국립국악원 유튜브 채널에서는 춘앵전의 아름다운 춤사위를 영상으로 감상할 수 있다. 무용수가 화문석 위에서 한삼을 날리며 꾀꼬리의 날갯짓을 표현하는 장면은 봄의 설렘 그 자체다.
청성곡은 대금 독주 음원과 영상으로 찾아볼 수 있는데, 청공의 떨림이 만들어내는 맑은 선율이 봄볕처럼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줄 것이다.
창밖으로 봄볕이 스며들 때 잠시 귀를 기울여보자. 어디선가 꾀꼬리가 울고 바람에 버들가지가 흔들리고, 봄을 노래하는 소리가 들려올 것이다. 그 소리에 우리 마음을 포개어 보면 올봄은 조금 더 특별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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