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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래퍼'가 '성착취 사이트' 따라 앨범 커버 만들어도…전혀 제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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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래퍼'가 '성착취 사이트' 따라 앨범 커버 만들어도…전혀 제재 없었다

[여전한 디지털성폭력④] 성착취물 '무차별 확산'에도 방심위는 기능 정지, 경찰은 인력 축소

2025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랩&힙합 음반상을 수상하며 대중과 평론가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은 래퍼 EK. 그가 지난 1일 발매한 최신 앨범 <YAHO RED>는 다른 의미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성적인 내용의 가사가 다수 담긴 해당 앨범의 이름과 커버가 불법촬영 등 성착취 온상으로 지목된 사이트 '야XXXX'를 따라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해당 앨범의 제작사는 미국 3대 메이저 음반사 중 하나인 워너뮤직. 성인인증 없이 유튜브, 멜론 등의 플랫폼에 일괄적으로 배포됐다. 이를 두고 "내 눈을 의심했다", "이거 멜론 메인 페이지에 뜨는데 괜찮은 것 맞느냐", "앨범 커버 이래도 괜찮나" 등의 우려가 나왔지만 현재까지 어떤 제재도 받은 바 없다.

영상 당 수십~수백만 조회수를 기록하는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 A 씨. 그는 지난달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나도 야X(야XXXX의 약칭) 좋아한다. 여자친구 사귀기 전에 많이 봤다", "아무래도 야X는 남자 애들이 많이 본다" 등 야XXXX를 희화화하는 영상을 올려 2만 개 넘는 좋아요를 받았다.

일부 여성들이 문제를 제기하자 "여자들이 더 더럽다", "여기서 아무리 싸워도 야X는 멈추지 않는다" 등 도리어 여성들을 비난하는 댓글이 여럿 달렸다. 분쟁이 이어지자 결국 A 씨는 생각이 짧았다며 영상을 삭제했다.

▲2025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랩&힙합 음반상을 수상하며 대중과 평론가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은 래퍼 EK. 그가 지난 1일 발매한 최신 앨범 <YAHO RED>는 다른 의미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성적인 내용의 가사가 다수 담긴 해당 앨범의 이름과 커버가 불법촬영 등 성착취 온상으로 지목된 사이트 '야XXXX'를 따라한 것이기 때문이다.ⓒ유튜브 갈무리

대중음악·웃음거리 소재로 쓰일 정도로 대중화된 성착취 사이트…정부는 수수방관·전담인력 축소

앞서 소개한 사례들에서 언급된 야XXXX는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언급됐을 정도로 성착취 사이트의 대표 격으로 알려져 있다. 딥페이크 성착취물, 여자화장실 불법촬영물 유포 등으로 수차례 공론화됐음에도 여전히 8만 개 넘는 음란물을 유포하는 이곳의 월 방문수는 5670만여 명. 지난 9월 기준 한국에서 가장 많이 접속한 웹사이트 15위를 차지할 정도다.(☞관련기사 : 조회수 300만 넘는 불법촬영물 수두룩…국감·수사망 비웃는 성착취 사이트)

여성계는 신속한 접속 차단과 국제수사를 통한 성착취 사이트 근절을 꾸준히 요구해 왔다. 그러나 실제로는 정부와 수사기관이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활동가들이 직접 성착취 사이트를 찾아내 신고하고 제재해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디지털성범죄 근절 활동가들이 모인 '프로젝트 리셋'(이하 리셋)은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야XXXX를 모니터링했다. 그 결과 홈캠 영상, 남성들이 카메라를 설치하는 장면이 나와 비동의 불법촬영물임이 확실한 영상, 클럽과 술집 등 화장실에서 의식 없는 여성을 성폭행하고 불법촬영한 영상, 보복성 불법촬영물 등 2485개의 성착취물을 확보했다.

리셋은 이 중 245건을 방송통신심의위원회(현 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 295건을 경찰에 신고했지만, 사후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리셋은 <프레시안>에 "방심위가 '처리 완료'라고 답한 성착취물이 실제로는 차단 조치되지 않은 점을 확인했다. 경찰 신고 또한 활동가들이 지역 경찰서에 각각 접수했으나 어떤 연락도 없었다"고 전했다.

실제로 성착취물 신고 건수는 증가하고 있으나 이를 삭제할 방심위는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황정아 의원이 방심위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올해 8월까지 방심위가 접수한 디지털성범죄정보 신고는 총 7023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불과 8개월 만에 지난해 전체 건수(6611건)를 넘어선 수치인데, 정작 시정 조치를 의결하는 디지털성범죄심의소위는 류희림 전 방심위원장 사퇴에 따른 정족수 부족을 이유로 지난 6월 4일 이후 단 한 차례도 열리지 않고 있다.

디지털성범죄를 수사할 경찰 인력도 줄었다. 경찰청 수사 인력 현황에 따르면 사이버수사 인력은 2023년 정원 907명, 현원 946명에서 지난해 정원 837명, 현원 931명으로 줄었다. 같은 기간 불법촬영 범죄 검거율은 86%에서 84%로 하락했다.

▲6일 오전 서울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 앞에 딥페이크 예방 관련 포스터가 붙어 있다. 이날 정부는 딥페이크 성범죄 대응을 위한 관계부처 합동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연합뉴스

"국가가 피해자 보호 의지 포기한 것과 다름없어…피해 최소화 방안 시급"

EK와 A씨 사례처럼 대중음악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성착취 사이트가 무차별적으로 소비되는 현상도 결국 정부가 디지털성범죄를 방치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리셋은 <프레시안>에 "소라넷이 폐쇄된 지 약 10년이 흘렀음에도 우리의 디지털 공간은 여전히 안전하지 않다. 이는 탁상공론에 가로막힌 입법들, 피해자의 인권과 살아갈 권리보다 인터넷 사업자, 이용자의 '억울함'을 먼저 생각하는 입법자들, 부족한 예산과 인력에도 최선을 다하는 일부 경찰조차 넘을 수 없는 시스템의 벽, 아무런 효용 없이 최소한의 절차적 의무를 다 하고 '자율규제를 요청했다'만 되풀이하는 방심위와 이젠 회의까지 열지 않는 디지털성범죄심의소위원회, 성착취물 유통과 판/구매는 물론 제작에까지 너그러운 사법부의 잘못"이라고 질타했다.

리셋은 이어 "2026년을 목전에 두고 있는 지금, 여전히 이런 당연한 말을 되풀이해야 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범죄자는 처벌하고, 디지털 성범죄를 남성들의 당연한 욕구와 호기심 혹은 장난이 아닌 심각한 범죄라고 진정히 여긴다면 국가가 이를 보여줄 때"라고 강조했다.

젠더폭력 피해자들을 전담하는 박수진 변호사(법무법인 혜석)는 <프레시안>에 "방심위의 삭제 처리가 지연되면 그 시간 동안 영상은 계속 유포되고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진다. 디지털 성범죄는 시간과의 싸움인데, 오히려 수사 인력을 축소한 것은 국가가 피해자 보호 의지를 포기한 것과 다름 없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디지털성범죄는 한 번 유포되면 완전한 삭제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무한 복제성, 전파가능성 등을 고려하면 초기 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현재 시스템으로는 신고부터 삭제까지의 과정이 여전히 복잡하고 지연하는 경우가 많다"며 "전담 수사 인력 확충과 방심위 심의 절차 간소화, 플랫폼의 선 삭제 후 심의 의무화 등 실질적인 피해 최소화 방안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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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혁

프레시안 박상혁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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