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지구 휴전이 인질 석방 24시간 만에 곳곳에서 균열을 드러냈다. 사망 인질 반환이 늦어지자 이스라엘은 구호품 반입을 절반으로 깎고 가자지구와 이집트를 잇는 라파 검문소 개방 연기를 위협했다.
전투 중단에도 불구하고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군에 의한 팔레스타인인 사망이 이어지며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도 이스라엘 쪽이 휴전 조건을 위반했다고 비난했다. 하마스 보안군은 무장 해제를 요구 받고 있음에도 가자지구 거리에서 존재감을 과시 중이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무장 해제가 "폭력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14일(이하 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은 자사가 입수하고 유엔(UN)이 확인한 자료에 따르면 이스라엘이 인질 주검 반환이 지연되는 것을 이유로 15일부터 가자지구에 들어가는 구호품을 합의된 분량의 절반으로 제한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통신은 가자지구 반입 물류를 담당하는 이스라엘 국방부 산하 민관협조관(COGAT) 자료에 "하마스가 가자지구에 억류된 인질 주검 석방에 관한 합의를 위반했다. 그 결과 정치 지도부는 인도주의적 합의 관련 여러 제재를 부과하기로 결정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해당 내용이 실행되면 가자지구 반입 물자는 하루에 구호트럭 300대 분량으로 줄게 된다. 전쟁 전에도 가자지구는 하루에 트럭 500~600대 분량의 구호품을 필요로 했다.
가자지구 유엔인도주의업무조정국(UNOCHA) 대변인 올가 체레브코는 "이스라엘 당국으로부터 이러한 통보를 받았다"며 "인질 주검이 송환되고 휴전 이행이 지속되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확인했다.
통신은 이스라엘 당국자 3명을 인용해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남부와 이집트를 잇는 라파 검문소 개방 또한 미룰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유엔아동기금(UNICEF) 대변인 리카르도 피레스는 "라파 검문소 폐쇄가 길어질 수록 가자지구 주민, 특히 남부 피난민들의 고통이 더 길어질 것"이라며 "모든 검문소가 개방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스라엘 위협 뒤 이날 하마스는 인질 주검 4구를 추가로 반환했다. 이스라엘군은 소셜미디어(SNS)에 적십자사를 통해 이들 주검을 돌려받았고 법의학 연구소에서 신원 확인이 진행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마스는 지난 13일 생존 인질 20명을 한꺼번에 석방했지만 사망 인질 주검은 28구 중 4구만 인도했다. 추가 4구 송환에도 여전히 주검 20구가 가자지구에 남아 있는 상황이다. 하마스는 이스라엘군이 지난 2년간 가자지구를 맹폭해 6만7000명 이상이 숨지고 잔해 투성이인 가자지구에서 생존 인질을 찾는 것보다 사망 인질 주검을 수습하는 데 시간이 더 오래 걸릴 것임을 시사해 왔다.
이스라엘 매체 <타임스오브이스라엘>에 따르면 이후 이스라엘군은 주검으로 돌아온 인질 4명 중 3명의 신원만 확인했다. 매체는 나머지 1명이 인질이 아닌 팔레스타인인일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했다.
이스라엘에선 사망 인질 가족들의 원성이 높아지고 있다. 유족들은 트럼프 종전안이 휴전 발효 72시간 내 사망자를 포함한 모든 인질 귀환을 약속한 데 반해 첫 반환된 주검은 4구에 불과해 사망 인질 가족들의 기대에 크게 못 미쳤음에도, 생존 인질 전원 귀환 뒤 인질 송환이 완료됐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박탈감과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생존 인질 전원 송환 뒤 아미르 오하나 이스라엘 의회(크네세트) 의장은 이를 축하하며 인질 가족과의 연대의 상징인 배지를 가슴에서 떼기도 했다.
아들의 주검이 가자지구에 남아 있는 야엘 아다르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정치인들이 인질 송환이 끝난 것처럼 구는 것에 "마음이 무너졌다"며 "국가가 나를 배신했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하마스에 미국 개입 "폭력적" 무장 해제 경고
휴전 다음 단계 이행의 핵심 쟁점인 하마스 무장 해제 관련해서도 트럼프 대통령 등의 강경한 발언이 이어지며 불안감이 높아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14일 백악관에서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과 만나 취재진에 "모두가 그들(하마스)이 무장 해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무장을 해제할 것"이라며 "그들이 무장을 해제하지 않으면 우리가 그들의 무장을 해제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개입하는 무장 해제 방식에 대한 구체적 답변은 피했지만 "이는 빠르게, 아마도 폭력적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같은 날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도 미 CBS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휴전 다음 단계 이행을 위해 "하마스가 무기를 포기"하고 가자지구에서 무기 생산 시설이 사라지고 무기 밀수 또한 근절되는 "비무장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이 조건이 이행되지 않을 경우 "지옥이 터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마스, 폭력단 소탕 등 가자서 존재감 과시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절반을 통제하는 1차 철군선으로 물러난 뒤 하마스 보안군이 폭력단(갱단) 소탕을 내세워 거리에 모습을 드러내며 치안 유지와 무장 해제 요구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온다. 14일 미 CNN 방송에 따르면 가자지구 북부 가자시티에서 하마스 무장 조직원들이 8명을 공개 처형하는 영상이 소셜미디어에 공개됐다.
방송은 공개 처형이 하마스가 치안 유지 세력으로서의 입지를 재확립하기 위한 수단일 수 있다고 추측했다. 하마스 보안군 쪽은 증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가자시티 중심부에서 정밀 작전을 수행해 여러 수배자 및 범죄자를 무력화"했으며 가자시티에 자리를 잡고 "총격, 피난민 살해, 민간인 공격에 가담한 개인 체포 및 소탕을 실시 중"이라고 밝혔다.
전쟁 기간 이스라엘군이 치안을 담당하던 하마스 경찰을 공격하며 가자지구가 치안 공백에 빠진 상황에서 폭력단이 득세해 구호품 약탈 등을 벌인 가운데 주민들은 하마스 보안군 등장에 안도를 표하기도 했다고 <AP> 통신은 전했다. 가자지구 개인 트럭 운전자 조합장인 나헤드 셰헤이버는 통신에 "그 폭력단원들은 (이스라엘) 점령군 보호 아래 구호품을 약탈하고 사람을 죽였다"며 하마스가 이들을 상대로 조치를 취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AP>는 다만 이스라엘 생존 인질이 전원 석방된 시점에서 하마스의 이러한 무력 과시가 휴전에 위협이 될 것을 우려했다.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은 취재진에 14일 하마스가 "매우 나쁜 폭력단을 제거"하고 있다며 현 상황이 "별로 신경쓰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치안 관련 하마스에 "일정 기간 동안 승인을 내줬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스라엘군 공격으로 잇단 가자 주민 사망도…BBC "대통령이 결정하면 평화가 찾아오나"
휴전 발효에도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군 공격에 의한 팔레스타인인 사망도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카타르 알자리자 방송은 가자시티 알아흘리 아랍 병원 소식통을 인용해 14일 이스라엘군이 가자시티 슈자예아에서 팔레스타인인 5명을 죽였다고 보도했다. <로이터>는 가자지구 보건당국을 인용해 남부 칸유니스 인근에서도 이스라엘 공습으로 1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군은 물러나라는 경고를 무시하고 철수선을 넘어 접근한 이들에 발포했다고 설명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이 휴전을 위반했다고 비난했다.
영국 BBC 방송은 "대통령이 결정한다고 해서 평화가 찾아오는 게 아니다"라며 "인질, 수감자, 구금자 귀환의 기쁨과 안도감을 나눈 뒤 불과 24시간 만에 휴전의 균열이 드러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방송은 "휴전은 항상 초기 단계에서 위반되기 마련"이라며 살아남는 휴전은 대개 당사자 간 "엄격한 합의"에 기반하는데 가자 휴전은 그러한 토대를 갖추지 못했다고 우려했다. 이어 "인질 주검이 송환되지 않는다면 이는 이스라엘에서 점점 더 큰 문제가 될 것"이라며 극우 베잘렐 스모트리히 이스라엘 재무장관이 여전히 "군사적 압력이 인질을 돌려 받을 유일한 수단"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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