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노동시간 단축의 역사는 노동자 투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또한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의 장시간 노동 속에서 노동자들은 건강과 안전이 늘 위협받지만, 노동자들의 투쟁이 없었다면 법정 노동시간은 별로 줄어들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의 노동시간 제도는 1953년에 근로기준법이 만들어지면서 1일 8시간, 주 6일제로 시작해 1989년 주 44시간제, 2004년 주 40시간제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법정 노동시간이 줄어들 때마다 자본은 기업이 다 망할 것처럼 호도했으나 주 35시간제인 프랑스나 독일을 보라.
노동시간을 단축하면 모든 사람의 건강이 개선되고 삶의 질이 향상된다. 사회적으로는 고용이 늘어나고 더 나아가 기업의 생산성도 더 높아질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도 당 대표 시절에 노동시간 단축과 주 4일제 근무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제 병원 노동자의 노동시간 단축을 생각해 보자. 병원은 노동시간 단축이 정말 시급히 필요하다.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곳이기 때문이다. 24시간 환자를 돌봐야 하는 간호사들을 비롯한 병원 노동자들은 장시간, 교대, 야간 근무자가 많고 과로와 소진, 우울증 위험이 높다. 실제로 의료인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병원은 환자 안전과 의료인의 생명이 함께 공존하는 곳이기 때문에 병원이 노동시간 단축의 모범이 되어 사회 전반에 확산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편 보건복지부에서도 병원의 이런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2022년부터 간호사 교대제 개선 시범사업을 시작하였다. 간호사의 근무 환경을 개선하여 이직 방지, 환자 안전 및 간호서비스 질 향상, 지역 격차 완화 등이 목적이다. 9월부터 진행되는 2차 시범사업에는 94개 병원이 참여하고 있지만, 이는 전체 대상 병원의 3% 정도이다. 언 발에 오줌 누기다. 이런 시범사업은 불규칙한 교대근무를 하는 일부 간호사의 병가나 청가를 부분적으로 메우는 도움은 되겠지만 근본적인 해결 방법이 될 수 없다.
이런 시범사업으로 병원은 정부의 인건비 지원을 받을 수 있겠지만, 현장의 간호사들은 또 다른 고충이 생겼다. 인력부족으로 인해 규칙적인 교대 근무를 할 수 없는 조건에서 시범사업을 하게 되면 근무표를 두 달 동안 서로 바꾸지도 못하고 고정하도록 되어 있어서 급한 일이 생겨도 휴가도 받기 어렵다. 정부지원 인력은 병가나 청가 대체만 되고, 지원 인력이 적어서 밤 근무 때는 그마저도 대체하기 어렵다. 간호법이 있어도 간호사에 대한 법적 배치기준은 없는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와 입원 환자 모두 불행해지는 상황이다.
의료연대본부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병원부터 주 4일제 시행 및 인력기준 개선을 요구하며 지속적으로 투쟁하고 있다. 작년부터 중증도를 높이는 상급종합병원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천문학적인 지원금을 주고 있지만 그런 환자를 돌보는 간호인력 기준은 오히려 개악되었다. 수련의들이 1년 6개월 동안 비운 자리를 대신했던 간호사들을 토사구팽하는 병원과 간호인력 정책은 안중에 없는 정부를 상대로 의료연대본부가 파업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 의료연대본부 9.17 공동파업
현재 의료연대본부 산하 강원대병원·경북대병원·서울대병원·충북대병원 등 국립대병원과 서울대병원 비정규직 식당분회는 임금·단체협약 교섭에서 의견 불일치로 노동위원회 조정 절차에 들어간 상태입니다. 조정이 결렬되고 이번 주 각 사업장에서 시행할 쟁의행위 찬반투표가 과반수 이상 찬성으로 가결되면, 오는 17일 "누구나 어디서나 건강할 권리 쟁취"를 기치로 공동파업 대회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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