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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여성, 여성을 언제까지 소모품 취급할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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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여성, 여성을 언제까지 소모품 취급할 건가?

[정희준 어퍼컷] 피해자를 다시 피해자로 만든 조국혁신당

지난 4일 강미정 조국혁신당 대변인이 당내 성희롱·성추행 사건 및 직장 내 갑질 사건 처리 방식을 비판하며 탈당 기자회견을 하자 이는 혁신당 내부 문제에서 사회적 논쟁으로 번져 나갔다. 많은 이들이 혁신당의 피해자 배제와 외면, 연이은 성비위 사건에 대한 늑장 대처를 지적한다. 황당하게도 이 와중 2차, 3차 가해가 발생하고 혁신당 지지자들은 "분란을 키운 피해자들"을 비난한다.

혁신당은 세상을 바꾸겠다고 만들어진 정치집단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가 이미 지겹도록 경험한 성비위 문제에 대응하는 방식은 여느 중소기업보다도 못한 수준이었다. 작년 접수된 사건인데 왜 해를 넘기고, 1년이 지나도록 결론을 내지 않았을까. 이 기간 피해자들, 제보자들은 불안에 떨며 숨죽이고 지냈을 것이다. 혹시 지쳐 나가떨어지길 바랐던 것은 아닌가. 조속한 마무리를 외면하고 질질 끌면서 직장 내 갑질까지 더해져 피해자만 늘어갔다. 대부분 젊은 여성들이다. 결국 모두 당을 떠났다.

피해자를 데려와 놓고 다시 피해자로 만들어

강미정이 누구인가. 남편의 마약과 폭력을 바로잡으려 경찰에 신고했지만 시댁이 '검사 가족'이어서인지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고 오히려 결국 남편으로부터 무고로 맞고소를 당했다. 이 과정에서 남편의 매형인 이정섭 검사의 수사 개입 의혹을 제기하며 검찰의 부당한 권력 남용에 맞서 싸웠던 피해자다. 그런데 혁신당은 검찰개혁을 위해 함께 하자며 그를 입당시켜 놓고 그를 또다시 피해자로 만들어버렸다.

그를 탈당 기자회견으로 이끈 것은 무엇이었을까. 실망감? 배신감이다. 두 아이의 어머니로 검사 가족인 시댁과 법적 소송을 이어가면서 정치 경험은 없었지만 당 대변인에 지역위원장까지 맡아 뛰었다. 그럼에도 그에게 돌아온 것은 "믿었던 동지들의 성추행"이었다. 이에 더해 기자회견 이후 혁신당 열성지지자들로부터 그에게 쏟아진 2차 가해는 엄청나다.

그 와중 이규원 사무부총장은 한 유튜브에 출연해 "성희롱이 범죄는 아니다"라는 막말을 했다. 운전 중 그 발언을 들었는데 "이런 말을 왜?"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곧 알 수 있었다. 이게 바로 가해자들 옹호를 위한 논리였음이 분명하다. 참고로 이규원도 검사 출신이다. 성비위 사건을 조사하며 당 지도부는 '규정'만 들여다본 듯하다. 이렇게 해서 조사 및 징계절차가 '피해자 중심주의'가 아닌 '법 중심주의,' 나아가 '가해자 중심주의'로 흘러간 것이다.

우리나라엔 참 이상하고 못된 버릇이 있다. 본질과는 엉뚱한 이름을 갖다 붙이는 것이다. 주로 성인 남성에 의해 미성년 여학생을 대상으로 벌어지는 성매매를 우리는 '원조교제'라는 요상한 이름을 붙여 수십 년째 부르고 있다. 가해자가 남성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 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가해자는 사라지고 피해자 이름만 나부낀다. 주요 언론은 지금도 가해자들의 이름을 적시하지 않는다. 이번 사건은 '김보협·신우석 성추행 사건'으로 불러야 마땅하다.

중년의 남성 검사들과 젊은 여성 수사관들

혼란스러운 와중, 국회에서 펼쳐지는 또다른 풍경이 눈길을 끈다. 지난 5일 열린 검찰개혁 입법청문회에서 건진법사 전성배의 집에서 발견된 관봉권 띠지 및 스티커 분실 사건에 대한 추궁이 이어졌다. 국정농단의 핵심 단서가 될 증거물들이 사라졌는데 검찰은 그동안 직원들이 관봉권 세다가 분실했다고 주장해왔다. 그런데 해당 수사관들은 아예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잡아땐다. 생애 처음 구경한 관봉권이었을 텐데도 아예 기억이 없다는 것이다.

'꼬리 자르기'다. 검찰 윗선의 지시를 감추기 위해 사건을 덮으려고 두 수사관의 실수로 몰고 가려는 듯하다. 법적 처벌이 예상되는 수사관들의 표정엔 혼란과 당혹스러움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럼에도 모르쇠로 일관한다. 이들은 모두 젊은 여성이다. 검사는 모두 중년의 남성들이고. 혁신당을 보나 국회 청문회를 보나 남성과 여성에게 주어진 배역과 역할은 언제나 동일하다. 운명도 그러하다. 여성은 언제든 버릴 수 있는 소모품이다.

권력과 여성. 여성은 언제나 소모품인가. 우리가 목도하는 것은 바로 비겁의 극치다.

▲조국혁신당 강미정 대변인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당내 성비위 의혹과 관련한 탈당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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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준

스포츠와 대중문화 뿐 아니라 세상사에 관심이 많아 정치 주제의 글도 써왔다. 인간의 욕망과 권력이 관찰의 대상이다. 연세대학교 체육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미네소타대에서 스포츠문화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미래는 미디어가 지배할 것이라는 계시를 받아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동아대 체육학과 교수, 부산관광공사 사장을 지냈다. <미국 신보수주의와 대중문화 읽기: 람보에서 마이클 조든까지>, <스포츠코리아판타지>, <어퍼컷>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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